안도 타다오의 뮤지엄산과 건축학개론 촬영지 구둔역
오랜만에 서울 근교로 여행을 다녀왔다. 2022년 상반기에는 이곳저곳 국내 여행을 많이 다니는 것이 목표인데 지금까지 잘 이뤄나가고 있는 거 같다. 비교적 최근에 국내 여행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더 미리 다녔다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다녀온 곳은 동생이 예전부터 가고 싶어 했던 뮤지엄산이라는 미술관이다. 뮤지엄산을 가기로 정한 후에 두 번째 코스로 어디를 들를까 하다가 건축학개론 촬영지라길래 가보고 싶었던 양평 구둔역(폐역)에 다녀오기로 했다. 방탄소년단도 이곳에서 촬영을 했었던 적이 있어 아미역이라고 불리기도 한단다.
미술관이 오픈하는 10시에 맞춰 도착했다. 오픈 시간에 맞춰 도착하면 사람이 거의 없기 마련인데 뮤지엄산은 유명해서 그런지 이미 몇 팀이 도착해 있었다.
티켓을 끊고 입장하는데 가장 먼저 기념품샵을 지나게 된다. 이곳은 기념품샵으로 가는 길인데 둥그런 길이 멋있어서 찍었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지은 곳이라던데 앞으로 만날 뮤지엄산의 건축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여주었다. 왠지 벽면의 재질은 아모레퍼시픽 본사 벽면이 떠올랐다. 실제로 만져보기도 했는데 아모레퍼시픽 본사 벽면의 촉감과 비슷했다.
이곳은 플라워가든이다. 들어가니까 보이는 조각상 하나. 사람들은 박물관 초입이라 설렁설렁 걸어서 지나가곤 했다. 원래는 붉은 패랭이 꽃이 가득한 곳이라고 한다.
플라워가든을 지나기 전에는 이렇게 조각상이 모여 있는 곳도 있었다. 여러 작품이 있었지만 나는 <폭포>와 <빨래하는 여인> 이 두 작품이 가장 좋았다. 특히 <폭포>는 물이 흐르는 게 신기했다.
조각 공원에서 나와서 다시 플라워 가든을 걸었다. 워낙에 밝은 날을 좋아하는지라 해가 없어서 아쉬웠지만 그만큼 구름이 멋있는 날이었다.
플라워가든에서 워터가든으로 넘어가는 길에 나오는 자작나무 숲이다. 화담숲에서 자작나무 숲을 본 기억이 났다. 날이 어두운 게 오히려 자작나무 숲 하고는 더 잘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워터가든 근처에 다다랐다. 3월 말이라 그런지 꽃이 하나둘 피고 있었다.
아치웨이가 보였다. 뮤지엄산의 랜드마크이며 알렉산더 리버만의 작품이라고 한다. 하늘도 흰빛의, 회색빛의 구름으로 뒤덮여 있어서 그런지 강렬한 붉은빛의 작품이 더욱 돋보였던 날이었다. 너무너무 멋있었다. 심지어 사진에도 정말 멋있게 나왔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에 이곳의 사진을 찍어서 올렸는데 친구가 드라마 <마인>에 나온 곳이라고 알려주었다. 검색해 보니 촬영지로 많이 쓰인 곳인 것 같았다.
뮤지엄산이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설계했다기에 건축에 대해 많은 기대를 품고 갔다. 이 장면만 봐도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안도 타다오가 도시의 번잡함으로부터 벗어난 아름다운 산과 자연으로 둘러 쌓인 아늑함’이라는 인상을 받았다는데 실제로 미술관 주변의 자연도, 미술관 안의 자연도 미술관과 잘 어울리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워터가든은 아치웨이를 빼고 봐도 멋있었다. 사진을 찍는데 하늘과 물이 데칼코마니처럼 나왔다. 동생도, 아빠도 이곳을 참 마음에 들어 한 것 같았다.
그다음에 뮤지엄 본관에 들어왔다. 복도에서조차도 건축의 매력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가서 첫 번째로 본 전시는 <옴니버스 OMNIVERSE>라는 전시였다. 어떤 전시가 진행되는지 모르고 와서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웬걸 전시도 정말 마음에 들었다. 가장 처음으로 마음에 든 작품은 김수 작가의 작품이었다. '삶에서 밀려나버린 형용사들을 수립하는 시간'이라는 문장이 담긴 작품이 좋았다. 원래 전시를 볼 때 하나만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어도 성공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날은 성공에 해당하는 날이었다.
그리고 이 작품도 마음에 들었다. 왠지 바로 보면 신라시대가 떠오르는 작품이다.
그리고 두 번째 전시 <한국미술의 산책 VII: 구상회화>라는 전시를 봤다.
미술을 잘 몰라도 이름은 많이 들어봤던 박수근, 이중섭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이 작품들을 보면서 값이 좀 나가는 뮤지엄산의 티켓값을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처음 들어본 작가였는데 이쾌대 작가의 작품과 이대원 작가의 작품이 좋았다. 특히 이대원 작가의 <국화>라는 작품은 의자 위에 화분이 있고 꽃이 쏟아져내리는 구도라서 더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나는 처음 보는 구도의 꽃 그림이었다.
그리고 윤중식 작가의 <뜨거운 태양>은 진한 색감이라 눈길을 사로잡았다. 뮌헨 미술관에서나 봤던 유럽 미술 작품들이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밖으로 나오니 '스톤 가든'을 마주했다. 스톤가든은 신라고분을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9개의 부드러운 곡선의 스톤마운드를 따라 걸으면 다양한 조각 작품과 나무, 꽃들을 구경할 수 있다. 생김새가 특이했던 화살나무와 바위틈에서 생명을 피워내던 풀, 그리고 매실나무 봉오리까지! 지금은 매실나무 꽃도 거의 다 진 상황이었지만 이때는 곧 피우려고 준비하던 중이었다.
그리고 이곳은 카페로 가는 길이다. 계단식으로 되어 있는 이곳도 건축의 매력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카페테라스도 멋있었다. 흐린 날이라 아쉬웠는데 오히려 구름이 물에 비치는 장면을 찍을 수 있어서 나름의 멋이 가득했던 거 같다.
그리고 삼각형 모양으로 뚫려있는 곳에도 가봤다. 돌이 바닥을 덮고 있는 곳이라 방석이 구비되어 있었다. 그래서 방석을 꺼내 앉아서 하늘을 볼 수도 있었다. 파피루스 정원도 있고, 종이 박물관도 좋았지만 뮤지엄산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고 다음 코스로 이동해볼까 한다.
원주 뮤지엄산 관람을 마치고 구둔역으로 향했다. 나름 핫한 곳이었음에도 평일이기도 하고, 맑은 날도 아니었기 때문에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도 방탄소년단이 온 곳이라고 하니까 사진을 따라서 찍으려고 했는데 미묘하게 달랐다. 앞에서 찍은 게 아니라 뒤에서 찍은 거였다. 그래서 역사 내부를 거쳐서 반대쪽으로 넘어갔다.
반대쪽에서 찍은 구둔역! 방탄소년단이 이곳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구둔역’이라는 이름을 ‘아미역’으로 바꾸고 촬영했다고 한다. 1940년에 영업을 시작하여 2012년에 폐역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 구둔역은 ‘양평 구 구둔역’이라는 이름으로 등록문화재 제296호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단연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구둔역에 있던 향나무이다. 얼마 전 제주도 여행을 통해 소나무와 비슷한 향나무를 나름대로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향나무의 매력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소나무와는 은근히 다른 매력이 있다.
내가 파악한 향나무의 특징은 두세 가지 정도가 있다. 먼저 첫째로 향나무는 가지가 되게 여러 개 뻗어 있다. 여러 가지의 얇은 가지가 있는데 소나무랑 비슷하게 생겼다면 어라랏 이 친구 향나무? 의심해보곤 한다. 또 두 번째로는 몽글몽글하게 뭉쳐있는 느낌이다. 향나무를 보면서 털실이 뭉쳐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마지막으론 가지가 얇고 잎이 털실뭉치 같이 생겼기 때문에 느끼는 특징인데 나무가 흔들릴 때 하늘하늘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구둔역에서 향나무를 보고 향나무 투어도 생각 중이다.
그리고 구둔역 앞 기찻길이 바로 영화 <건축학개론>을 찍은 곳이다.
아빠와 둘이서 수지와 이제훈이 건축학개론을 찍은 것처럼 사진을 찍었다.
더 이상 열차는 다니지 않지만 곳곳에 그때의 추억이 묻어 있는 게 재밌었다. 역명 표지판이 남아 있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역과 철길, 향나무가 끝이기 때문에 구둔역은 다른 코스에 끼워 오는 정도로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그런 의미에서 ‘뮤지엄산 - 구둔역’ 루트 대 추천!
우리나라는 다니면 다닐수록 멋있는 곳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운전을 못하는 나 혼자서는 서울 안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에 얼른 운전을 배우고 싶어 진다. 근데 한편으로는 운전을 못하기 때문에 아빠랑, 엄마랑 가족들이랑 많이 놀러 다니는 것은 오히려 좋은 점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도 더욱 많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