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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진 Jul 12. 2022

'정릉동'은 평화로움의 다른 표현

정릉천,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 서울 정릉

대충 쓱 걸으며 지나치는 곳이 아니라 곳곳을 걸을 수 있는 곳이 좋다. 걸음마다 한 번씩 한눈팔 수 있는 곳이 좋다. 그래서 나는 종로구를 좋아한다. 이번에 글을 쓸 곳은 종로구 옆의 성북구에 위치한 정릉동이다. 한 줄로 표현해보자면 정릉은 구석구석 숨어있는 매력을 찾아내 보라고 도전장을 날리는 동네 같았다. 직접 와보지 않는 이상 절대 알 수 없으리라 생각하는 정릉의 매력을 조금이나마 소개해보고자 한다.



정릉천

먼저 정릉천이다. 딱히 정릉천을 가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원래 가려던 미술관이 휴무일이었던 걸 뒤늦게 알아채서 정릉 일대를 걸었던 날이었다. 정릉시장을 지나서 걸으니까 정릉천이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정릉천 주변에서 쉬고 있었다.


내가 정릉천에서 가장 좋았던 건 다양한 동물들을 볼 수 있었던 점이다. 오리부터 물고기 그리고 거북이가 있었다. 서울 안의 작은 개천에서 이렇게 다양한 생물이 살 수 있다는 게 신기했었던 기억이 난다.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평화로운 동네였다.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

내가 한 번 실패했다가 두 번째 시도만에 관람을 성공한 미술관이 바로 최만린미술관이다. <감각의 시어>라는 전시를 봤다. 전시보다는 최만린미술관이라는 공간이 궁금했던 게 더 컸는데 전시도 만족스럽게 관람했다.


미술관은 주택가에 위치해 있다. 알고 보니 이곳은 한국의 대표적인 조각가 최만린이 실제로 30년간 거주했던 정릉 자택을 성북구에서 매입하여 성북구립미술관의 분관으로 조성한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거주했던 자택이라 건물 구조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는데 난 참 이런 아치형 구조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여기는 건물로 들어가기 전에 볼 수 있는 조각가의 정원이다. 야생화와의 조화를 함께 보면 좋다고 추천해주셨다. 그래서 최만린미술관을 더욱 잘 즐기려면 해가 드는 날에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원 구석구석의 풀과 조각들의 그림자가 너무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와서 보는 조각과 연못도 너무 멋지다. 예술가라면 응당 이런 집을 가져야만 할 것만 같은 분위기. 이곳은 없던 영감도 마구 샘솟을 것 같은 공간이었다.


1층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만 좀 적어보자면 조각가 최만린의 작업 공간과


<씨앗은 자란다 느리고 빠르게>라는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실제로 씨앗부터 키워본 결과 씨앗은 진짜 느리고 빠르게 자란다. 나는 그렇게 단순한 이치를 이렇게 간결하고 쉽게 표현해내는 게 신기했다.


1층에서 다 구경하고 사진에 보이는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2층이 나온다.


2층의 방 한 곳은 책상에 방명록과 도록(?)이 있었다.


그리고 옆방에는 건축 관련 전시가 있었다.


이 전시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김준성 건축가의 창원 민주주의 전당 건축물 모델링이다. 초기 모델링을 명함으로 하신 걸 보고 역시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감탄했다.


주택가 한쪽에 자리하고 있는 미술관에서 여러 가지를 느끼고 깨닫고 왔다. 전시를 볼 때 나는 많은 것을 흡수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보고 그날 한 개라도 인상 깊은 작품이 있었다면 만족스러운 관람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날의 전시도 기억에 꼭 남는 작품이 두 가지나 있었을뿐더러 조각가의 정원까지 인상 깊었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에게도 많이 추천했던 기억이 난다.




정릉

항상 가보려다가 못 간 정릉이 정릉동 산책의 마지막 코스이다. 정릉동을 지나쳐 다니면서 한 번도 왜 이 지역이 정릉일까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말 그대로 '정릉'이 있어서 정릉이었다. 친구들이랑 이번 기회에 함께 가보자며 정릉 탐방 약속을 잡았고 내가 한참 네잎클로버 찾기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여서 모임의 목적을 '정릉에서 네잎클로버 찾기'로 설정하고 만났다.


각자 따로 와서 정릉에서 만나는 거였기 때문에 내가 가장 먼저 도착했는데 조선왕릉 세계유산이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뭔가 신성한 느낌을 받은 것 같다.


내가 정릉을 조금 검색해본 결과 이곳은 건축학개론 촬영지로 가장 유명했다. 친구들이 오기 전에 먼저 가볍게 둘러봤는데 어린이집에서 단체로 소풍을 온 아이들이 너무 귀여웠다.


조선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강 씨의 무덤이라고 하는 릉과 그 앞의 정자각을 함께 잘 사진에 담아보고 싶었다. 결과는 역시 너무 잘 찍음!! 날씨가 진짜 좋은 날이어서 그런지 사진이 정말 잘 나왔다. 지금은 저때의 따사로운 봄햇살은 바랄 수 없는 따가운 여름 해의 나날들~


조금 기다리다 보니 친구들이 와서 같이 또 구경을 했다. 정릉의 역사적 의미를 낱낱이 파악하기보다는 정릉이라는 공간이 주는 푸르름과 평화로움을 온몸으로 흡수하며 걸어 다니는 쪽을 택했다. 왜 그동안 여기를 와볼 생각을 안 했지? 라며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했다. 너무 늦게 알게 되어 아쉬운 곳이었다. 자주자주 와볼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길을 따라 쭉 산책을 했다. 카메라로 흔들리는 나무를 영상에 담기도 하고, 참새와 비둘기만 보던 도심 한복판과는 다르게 다양한 새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네잎클로버를 찾으러 왔다는 목적을 잊지 않고 바닥도 유심히 관찰하며 걸었는데 세잎클로버조차 없었다. 그래서 그냥 이런저런 풀들을 구경하며 걸었다.


정릉 산책로를 끝까지 걷지는 않았고 중간에 있는 벤치에서 쉬다가 다시 돌아서 내려갔다. 꽤나 오랜 시간을 벤치에서 쉬면서 살랑살랑거리는 봄바람을 느끼고, 하늘을 바라보며 누웠다. 멋진 영상을 찍자는 원래의 목표도 실패, 네잎클로버를 찾자는 새로운 목표도 실패, 정릉 산책로마저 끝까지 걷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완벽한 하루였다.


계획이 어긋남에서 얻는 새로운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집착을 덜어낼 수 있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최근에 유튜브 영상을 통해 접한 문장이 하나 있는데 "Rejection can be a wonderful strike of luck." 거절이 사실은 엄청난 기회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모든 계획이 어긋나도 마음만은 평화로웠던 동네 정릉동! 마음이 답답할 때면 잠시 고민을 내려두고 정릉동을 한 번 걸어보는 건 어떨까? 다른 동네보다 특히 더 나른하고 느긋한 분위기를 주는 정릉이라는 동네에서 자기만의 평화를 찾아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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