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안이를 떠올리며
"오늘도 혼자네요"
바람이 불어와도 살에 닿는 느낌이 차갑지 않은 완전한 봄이다. 살랑거리는 바람과 함께 골목을 돌며 말을 건네는 저 아이는 언제부터 인가 우리 집 앞을 지날 때면 잠시 내 앞에 멈춰 섰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은 혼자여도 기분이 좋아"
먼 산은 완전한 초록이 되지 못한 아직 어린잎들이 방정맞게 앞뒤로 흔들리며 커다란 산을 통째로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다.
"추운 겨울에도 똑같이 말했잖아요"
아이는 못마땅한 듯 나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아저씨는 혼자가 좋아요? 그 사람은 혼자서도 여기저기 잘 다녀요. 내가 저번에 슈퍼 앞에서도 보고 저기 멀리서도 봤어요"
나도 혼자 있는 시간이 더 좋을 리 없다. 예전에는 그녀와 산책도 자주 나가고, 종종 여행도 다녔지만 이제는 그녀도, 나도 나이가 들어 우리 둘이 함께 집 밖을 나서는 일이 거의 없다.
"그래도 지금은 우리 생활도 사랑도 안정적이야. 그걸로 만족해. 나는 그녀와 함께라는 것이 정말 행복해"
그녀는 내가 어려서 받았던 상처를 아물게 해준 고마운 사람이다. 혼자 남아 먼 산을 보며 생각할 시간이 많아져도 그녀 덕분에 이제 더 이상 악몽 같던 옛 기억을 복기하지 않는다.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나의 어둠을 빛으로 덮었기에 지금 나에게 남은 기억은 그저 봄날 같은 따스한 기억뿐이다.
"저번에 보니까 그 사람, 어떤 남자랑 같이 지나가던데요!"
아이가 밖에서 본 것들을 내게 말해 줄 때마다 내심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아저씨, 도도한 게 뭔지 알아요?"
잠시 말이 없자 아이는 내게 대뜸 이상한 질문을 했다.
"글쎄, 나는 나이도 많고, 남자라서 그런 거는 잘 모르겠는데, 도도한 게 뭔지 궁금하니?"
내가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자 아이는 마치 자신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도도하면 사람들이 좋아한대요. 근데 나는 이미 도도하게 생겨서 사랑받을 거래요"
도도하다는 게 뭔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아이는 이미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얻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사랑받는 것도 물론 행복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어"
아이는 내 말이 귀에 안 들어오는지 얼굴을 긁으며 딴청을 피우기 시작했다. 우리는 잠시 조용히 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그 바람은 저 멀리 그녀의 발소리를 내게 전해왔다.
"어머, 오늘도 왔네, 치즈야! 우리 집에서 같이 살까?"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덩치 큰 나보다 작고 도도한 아이에게 먼저 눈길을 준다.
"야옹"
아이는 내 앞에서 보란 듯이 그녀의 예쁨을 만끽한다.
"우리 리안이도 집 잘 지키고 있었어?"
나의 머리를 쓰다듬는 찰나의 손길과 그녀의 한마디에 내 안의 서운함이 모두 희석되어 사라졌다.
"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