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임신인 경우 3초만에 두 줄이 표시됨
제주도를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지난 3월부터 방문하고 싶었으나 코로나 확산 방지에 동참하고자 6월과 9월에 예약해뒀던 제주도행은 모두 취소했다. 하지만 우리 둘 다 제주 금단현상이 너무 심해서 11월 초 제주도 여행은 안전하게 야외 위주로 동선을 짜서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잠옷과 운동복만 챙겨서 제주도 자연탐방 고고!
머체왓숲길, 제주곶자왈도립공원, 제주돌문화공원, 성산해변, 마라해양군립공원 기본적으로 장소별로 두 시간 이상씩은 걸어 다니며 시원하고 멋진 풍경을 즐긴 우리들은 대단하다. 고생했어 예쁜 마누라.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임신 초기라고 일컬어지는 12주 내에 하면 안 되는 무리한 행동(살짝의 음주와 커피 섭취, 극심한 운동(다리가 후들거려서 계단 걷기도 힘들 정도), 하루 8시간 이상 서서 일하기 등) 은 아내가 자의반 타의 반으로 모조리 했다. 도대체 임신 초기 (임신 후 12~16주)까지의 기간은 누가 정의한 것이며 왜 조심하라고 하는 것일까? 일단 학술자료로는 찾지 못했다. 의사나 병원에서의 인터뷰나 소견 등이 검색을 통해 찾아지는 전부이다.(어떤 것이 의미있는 자료인지 판단이 서지 않아서 링크를 첨부하진 않음) 아무래도 연구를 진행하기엔 표본을 구하기도 힘들고 그에 따라 이론으로 자리 잡기 위한 실험도 진행하기 힘들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내가 감히 판단하기엔, 산부인과에서 통계를 내보니 부부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극심한 변화를 겪으며 유산이 되는 확률이 16주 전까지 높게 나타났고 의사들이 자주 그 통계를 인용하면서 구전된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지만 구태여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는 것이 우리 부부의 생각이다. 부부의 원래 생활패턴을 유지하고 상식선상에서 무리하는 행동들 (트램펄린 타기, 계단 100층 왕복, 필름 끊길 때까지 음주 등) 을 덜어내면 그 부부에 맞는 아이가 잉태될 것이라는 개똥철학이다.
여하튼 임신 확인 썰을 풀자면, 제주에서 여행하다가 피로에 지친 우리의 몸을 풀기 위한 반신욕 물을 받던 도중 문득 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임신이다' ㅋㅋㅋㅋㅋ 맥락 없지만 이성과 합리의 수호자인 나는 갑자기 머리에 종이라도 울린 듯 아내에게 소리쳤다. '나가서 임신테스터기를 사보자, 이건 백퍼임신이다.' 과학적인 근거가 있었다. 뭔가 이유 없이 아내가 더 사랑스러워 보였으며 아내의 신체, 감정 변화가 아내를 알고 지낸 4년간 약 40여 회의 생리주기를 경험하며 느낀 그것들과 달랐다. 굉장히 과학적이다. 과학은 관찰과 실험을 통해 체계적으로 기록되는 것이니까.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와 같은 소리를 해대며 날 조롱하며 매우 귀찮아하는 아내를 설득해서 임신테스터기를 샀다. 소변을 받아 검사를 진행했고 결과는?! 빠밤! 임신스, 두줄스! 들렸는가? 남편의 위상이 올라가는 소리가. 테스트기를 사서 두 줄을 보기까지 모질게 비난받던 공학자의 위상이 매우 높게 올라갔다.
자연스럽게 반신욕 물은 하수구에 흘려버렸고, 테스터기를 사서 돌아오는 길에 설레발치면서 사온 논알콜 칭따오(논알콜 중 제일 맛있음, 우리부부는 원래 술을 잘 안마심) 로 우리의 두 줄에 건배. 7:20pm에 결과를 확인했으나 정신 차리고 인증샷을 찍으니 8:01pm이었다. 그 후 두 시간 동안의 토론을 통해 정해진 아이의 태명은 '라임(Lime)'이고 이는 우리가 신혼을 보낸 10여 평 단칸방 빌라의 이름을 본땄다. 우리의 신혼을 상징하며 명백히 생산공정을 담당한 장소이자 발음이 아름다워서 영광스럽게 태명으로 발탁되었다. 듣기만 해도 예쁜 이름 윤라임. 우리가 사랑하는 제주를 더 사랑하게 만들어줬다. 라임이가 태어나기 전 곧 다시 방문하겠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선 차분하고 경건하게 한 번 더 테스트기를 수행하였고 역시나 아주 또렷하고 예쁜 두 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왜 한 번 더 했느냐? 산부인과에서 초음파 진료를 통해 임신 사실을 확인하기 전까지 안전하게 아이가 잘 자라고 있는지도 확인하고 병원에 확신을 가지고 방문하기 위해 하루나 이틀에 한 번씩 테스트기를 사용하면 좋다.
아내와 나는 세상에서 일단 둘만 아는 이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않고 삶에 반영하기 위해서 각자 분주하게 움직였다. 나는 코로나를 핑계로 모든 약속을 취소했으며 아내는 헬창생활을 마무리하고 다니던 직장에서도 휴직을 신청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5주 차 라임이를 확인하고 우리의 삶에 라임이를 들이기 시작했다.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