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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fa Jan 07. 2021

[#6 공남쓰임] 임신중 아내가 아플 때

침착해

임신 10주 차 때 아내가 열이 37.9도까지 올라갈 정도로 아팠었다. 부성애, 모성애, 부부간의 사랑 이 모든 감정을 확인할 수 있는 엄청 소중한 시간이어서 기록하려 한다.


Day 1,

산부인과에서 9주차 정기검진을 받은 날 일이 벌어졌다. 다행히 아내는 입덧이 심하지 않고 지극히 정상적으로 아침저녁으로 메슥거리고 소화/배변 불량만 좀 있다. 불편함이 오래 지속되니 혹시 다른 방도를 찾아보고자 질문을 드렸었다. "아내가 소화/배변 불량이 심한데 이를 완화시켜줄 수 있는 복약 처방을 내려주실 수 있을까요?" 의사 선생님께서는 "복약은 웬만하면 피하는 게 좋습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식사량을 조절하시고 야채 위주로 드시는 등의 식이요법으로 해결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아내와 나는 크게 동의했다. 야채 라이프를 강화하자는 다짐과 함께 이날 점심 연어 샐러드, 오후엔 각자 아메리카노 한 잔씩 연하게 즐기며 동네 산책으로 한 3,000보 남짓, 약 2km 정도, 걸었다. 날이 쌀쌀하긴 했지만 영하의 온도는 아니었고 섭씨 5도 근처였다. 저녁으로는 삼겹살 스테이크 샐러드를 먹었다. 정말 아무 문제 없이 보통의 건강한 하루를 보냈다. 밤 9시가 되었다. 평소에도 이 시간이 되면 가슴이 답답하고 가스가 차며 속이 메슥거린다는 말을 하기 때문에 나는 아내의 양 손바닥과 발바닥을 주물러주며

괜찮아질 거야. 좋은 생각만 해


라고 아내를 위로했지만 평소와 달리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고 점점 더 안 좋아졌다. 결국, 아내는 다음날 아침까지 맑은 위액만 나올 정도로 밤새 10번 이상 토를 했다. 당연히 아내가 토를 할 때마다 옆에서 등을 두드려주고 같이 깨서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들었는데 난 다 함께한 줄 알았는데 한두 번 정도는 내가 깨지 못했다고 한다... 못난남편xx...) 왜 응급실을 가지 않고 미련하게 10번을 토했을까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지만 밤새도록 10번이나 할 줄은 나와 아내 둘 다 예상하지 못했다.


Day 2,

아침 10시경 속비우기를 마지막으로 힘든 몸을 이끌고 바로 산부인과로 갔다. 수액을 한 병 투여한 후 입덧 약 디클렉틴을 2주치 처방받았다. 아침저녁으로 먹는 약이라 저녁까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다행히 수액을 맞은 이후에 속은 괜찮아져서 토는 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오후부터 갑자기 열이 나기 시작했다. 둘 다 열이 난다는 사실에 패닉해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상황 판단이 되지 않았다. 병원을 가자니 어차피 열이 나서 진료거부를 당할 것이고, 코로나 선별 진료소를 가자니 거기에서 코로나가 걸릴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서울에서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발생하고 전국적으로 1,000명 가까운 확진자가 나오던 상황) 정확한 체온을 알기 위해 체온계가 필요했지만 집에 아직 체온계를 구비하지 못했었다. 체온계를 사러 떠나기엔 1) 정밀한 체온계를 파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고(코로나로 매진된 곳이 많았음), 2) 아내를 집에 혼자 두고 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행히 괜찮은 성인용 체온계를 B마트에서 파는 것을 발견했고 1시간 뒤부터 10분에 한 번씩 체온 측정을 할 수 있었다. 처음엔 37도, 조금 있으니 37.4도까지 열이 올라갔다. 지난밤 토를 심하게 해서 볼주변에 모세혈관이 터진 것 같은 자국이 생겼으며 목에 가시가 걸린 듯 깔깔한 느낌이 든다는 이야기까지 아내가 해주어서 체온상승의 원인은 입덧이 아닐 것 같다는 판단을 했다. 아내는 뭐가 됐든 라임이에게 영향이 가기전에 열부터 낮추는 것이 중요하니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서 열을 낮추자고 제안했고 한 시간을 넘게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도 체온이 올라가는 추세만 잡힐 뿐 떨어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더 늦어져서 약국이 문 닫기 전에 일단 타이레놀부터 사 와야겠다는 생각으로 뛰어나갔고 약사와 내과 의사에게 10주 차 임신부에게도 타이레놀은 크게 부담 없지만 굳이 먹는 것을 추천하진 않는다는 조언을 듣고 타이레놀을 구해올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 시기에 그렇게 열이 나면 다음날 꼭 코로나 검사를 받아보라는 조언까지 듣고 어느 것 하나 결정할 수 없는 혼돈에 빠진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아내 또한 물수건으로 몸을 닦는 것이 최선일 것 같다는 판단밖엔 할 수 없었다.


자, 현재 상황은

산부인과의사 : 무슨약이든 복약 추천 안함

약사, 내과의사 : 10주차지만 타이레놀은 먹어도 됨, 그렇지만 추천은 안함, 이 시기에 열나면 코로나 검사 ㄱㄱ

인터넷(맘카페, 블로그), 친구들 : 혼돈의 카오스

둘 다 잠이 부족해서 체력이 떨어짐, 감정은 예민보스, 코로나 상황이라 열나면 병원에 가지도 못함

소지품 : 체온계, 물수건, 타이레놀, 남편xx


밤 10시가 될 때까지 나는 아내의 몸을 물수건으로 닦아주다가 이게 효과가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몽롱한 가수면 상태에 빠졌고 손에 힘은 빠져나가며... 성대가 오작동을 일으켰다.


(정말 귀엽게) 아웅.. 졸리당...


아내는 아프고 불안한 마음을 달래며 평소엔 손도 못델 차가운 물수건으로 몸을 닦는 처치를 하고 있었는데 유일하게 믿는 남편이 저런 소리를 하니 화가 엄청 났다고한다. 그런데 고개돌려 표정을 보니 진짜 다 죽어가는 얼굴에 잠이 가득하고 이틀째 같이 저러고 있는 것이 불쌍하기에 나에게 휴식시간을 허하셨다. 차가운 수건을 한장 더 가지고 오라기에 깨끗이 빨아서 두장을 가져다 드리니 직접 들고 온몸을 구석구석 닦기 시작했다.


수건의 움직임.gif

엄청난 모성애였다... 이미 정신을 놓아버렸던 나는 아내의 저런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고 기괴하기도 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내도 그 상황이 웃겼는지 같이 빵 터졌었다. 그 순간, 참 신기하게 정신이 맑아지며 아들 둘의 엄마, 우리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로 상황을 전해 들은 누나의 쿨한 한마디


약사랑 의사가 약을 일단 줬다며 그걸 왜 참냐 타이레놀 한 알 빨리 먹여라.
니 조카들 봐라 아무 문제 없었다.


우리 둘 다 누군가의 강력한 지지를 필요로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불안감과 패닉은 싹 사라졌고 아내는 바로 타이레놀 한 알을 입에 털어 넣었다. 체온은 안정을 찾아갔고 잠시 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둘 다 잠들 수 있었다.


Day 3,


오빠! 나 완전 말짱해!


토하느라 힘을 줘서 터졌던 볼 주변 모세혈관들 때문에 아내의 얼굴엔 거뭇거뭇 자국이 남아있었지만 체온은 36.8도로 안정을 찾았고 속도 아프지 않다며 춤을 췄다. 진짜 말 그대로 춤을 췄다. 귀여웠다. 힘을 내기 위해 삼계죽을 시켜 먹으며 지난 이틀간의 사건에 대해서 회고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파서 아프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괜찮아질 테니 아픈 것을 조금 참아보자'라는 표현은 '엄살 피우지 말아라' 라는 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얼마나 아픈지 왜 아픈지를 같이 생각하며 공감하는 것이 우선이고 위로는 나중에 하도록 하자. (잘하자 남편)

패닉에 빠지고 신경이 날카로워져도 부부 사이에 유머와 위트를 잊지 말자. 그래도 '아웅... 졸리당...' 은 상처가 되긴 했다. 30시간 밤샘 레이드를 함께했기에 다행히 귀엽게 봐준 것이다. 휴^^;;;

타이레놀을 더 빨리 먹었으면 덜 고생하고 덜 불안해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먹기까지의 다이나믹한 상황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부성애, 모성애, 부부간의 신뢰와 사랑을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전문가인 의사의 말을 듣는 것이 좋긴 하지만 결국 우리가 합의하는 상식적인 처치를 하게 된다.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면 임신 중 증상은 플라세보효과가 가장 효율적인 듯하다... 절대적인 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정확한 상황을 판단하기 위해서 평소 아내를 잘 지켜봐야 한다. 몸이 어떻게 안 좋아졌는지 어떤 경로로 안 좋아지게 된 것인지 상황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아픈 사람은 증상을 잘 말해줄 수 있지만 옆의 사람이 더 정확한 상황 판단을 할 수 있다. 임신부니까 당연히 식습관부터 행동선엔 정해진 루틴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변화가 생기는 포인트는 부부간의 잦은 대화와 관찰로 판단해놓으면 좋을 것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어디서 갑자기 뚝 떨어지는 문제가 아니라면 평상시 생활패턴에서 급작스러운 변화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으니 서로 공유해두면 좋을 듯하다.



아마 돌이켜보면 우리의 불안감 때문에 일이 커 보였지만 사실은 술먹은 다음날 흔히 벌어질 수 있는 위염/식도염이었던 것 같다.


1. 추운 날씨에 차가운 음식을 먹고 급체함

2. 입덧이랑 겹쳐서 폭풍 토를 하게 됨

3. 너무 토를 많이 해서 체력이 떨어지고 위와 식도에 염증이 생기면서 발열


다 게워내고 수액 + 투게더 아이스크림으로 에너지를 보충하니 토가 멈춘 점, 물수건과 타이레놀로 체온을 낮추니 잠을 잘 수 있었고 깨고 나니 식도 이물감 말곤 몸이 회복되었다는 점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었다. 정말 별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참 다행이었다. 둘의 문제가 아닌 라임이를 걱정하며 서로의 몸 상태를 신경 쓰는 소중한 경험이었는데 나중에 아이가 아프면 의사소통도 제대로 되지 않을 테니 더 패닉에 빠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 경험으로 둘 다 확실히 알게 된 점이 있다.


우린 부모가 되어가고 있으며 서로를 참 사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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