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ofa Dec 10. 2020

[#3 공남쓰임, 6~8주 차] 입덧과 심장소리

우리 부부를 사로잡은 160bpm 사운드

산부인과에 가서 처음으로 임신 사실을 확인하고 아내에게 정신적/신체적 변화가 극심하게 생기는 주간이다.

뭔지 모르겠죠? 나도 까만 동그라미가 아이인 줄 알았 ㅋㅋㅋ 중간의 검은 동그라미가 아기집, 아기집을 둘러싸고있는 흰색 원이 자궁이다. 마우스 옆 흰색 가로줄 근처 뭔가가 아이에게 탯줄 생성전에 영양분을 공급해 주는 난황이고 바로 옆 어딘가에 1~3mm 짜리 우리 라임이가 세포로 달려있다고 한다. 솔직히, '아 뭔가 있구나 기쁘다!' 정도이지 약간 '어쩌라고?' 초음파 사진이었다. 처음 까만 동그라미를 보고 라임이인 줄 알고 기뻤던 내가 바보 같음... 


이 사진을 확인하고 나서일까? 그 작은 1mm 짜리 라임이가 만들어내는 변화는 진짜 대단했다. 마치 어딘가 다쳤을 때 하나도 안 아프다가 피가 흐르는 걸 보는 순간부터 극심한 고통이 몰려오듯 아내는 거짓말처럼 입덧을 시작했다. 시작은 미약했다. 살짝 뱃멀미 미식거리는 정도? 그런데 후각이 엄청 발달하더니 집에 있는 모든 디퓨져 향기를 싫어하게 되었고 음식의 향 뿐 아니라 음식 사진을 보는 것도 미식거려서 힘들어하는 상황이 되었다. 미식거리는 속을 잠재우기 위해 약간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드시던 아내는 이내 속을 버리시곤 느끼한 피자 등으로 배를 채우시다 소화불량에 빠져들곤 했다. 매운맛 -> 느끼한 맛-> 신맛 -> 부드러운 맛 -> 매운맛 -> 느끼한 맛의 무한 루프를 돌며 덩달아 나도 미식거리기 시작했다 ㅋㅋㅋ 우리는 그렇게 미식축구 부부가 되어버린...  다행히 아내는 약간의 미식거림을 제외하고는 헛구역질이나 토를 하진 않았다. 하지만 공복이 되면 상황이 심각해져서 다양한 간식을 그때마다 대접할 수 있도록 준비해둘 필요는 있었다. 아침 기상 후, 음식 배달이 오기 전 짜투리 시간에 먹을 수 있는 귤, 쿠키등을 준비해두면 좋다. 세상에서 공복이 제일 위험하다...


2-3주간 옆에서 지켜본 아내의 신체적 변화는 정말 대단했다. 자궁은 아기집을 키우느라 자꾸 아랫배를 자극하고, 포옹을 못 할 정도로 가슴은 계속 아프고, 위장에 가스가 차서 더부룩하고, 갑자기 잠이 쏟아져서 잠들어버리는 등 다양한 변화가 있다. 이 변화를 스스로 어색해하며 가설과 검증을 하며 스스로 받아들이는 과정과 동시에 유일하게 이 사실을 공유할 수 있는 남편에게 알려주는 상황은 꽤나 혼란스러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너무 자세하게 알려주자니 유난 떠는 것 같고, 그렇다고 알려주지 않자니 집에 둘만 있는데 자신의 불편한 몸과 마음 때문에 영문도 모르고 걱정하는 남편을 안심시켜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남편들이 이때 먼저 알아차려서 적절한 순간에 음식도 권하고, 같이 산책도 시키고, 샤워도 함께하며 신체 변화도 알아보는 등 계속해서 주위 환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터넷에서 흔히 확인할 수 있는 사례와는 달리 우리의 경우,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6주 차 때 양가 부모님들께 알리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양가 부모님들이 특히, 장모님께서 든든하게 지원사격을 해주셔서 아내가 몸과 마음을 편하게 가질 수 있었다. 안정기가 지나지 않아서 알리기 조심스러운 부부들이 많겠지만 그 모든 사실조차 가족들은 전적으로 이해를 해줄테니 온 가족의 힘으로 이 힘든 시기를 보내는 것도 개인적인 추천! 이럴 때 부탁하고 들어주고 으쌰 으쌰 가족의 정을 느끼는 것이다.


꽃도 사고 책도 보고 게임도 하고(아내 친구 찬조 출연, 단 한 게임도 져주지 않았다.) 철이른 과일도 먹고 세상 다양한 변화를 겪는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어느덧 8주 차 심장소리를 보는(이게 초음파를 통해 올록볼록 거리는 것을 소리로 변환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보는것이다... 귀대고 신나게 들어봐야 아내의 배에선 아무소리 안들림...) 때가 온다. 1mm 남짓한 세포 덩어리에서 머리와 심장을 가지고 1.5cm까지 무려 1,500% 성장을 하며 사람의 형체를 갖춘 무언가로 변하는 것을 아내와 내가 함께 보고 듣는 그 순간이 바로 8주 차 심장소리를 듣는 순간이다.

설명이 필요 없다. 사진으로도 이미 모든 것이 설명된다. 실제로 움직이는 영상을 보면 머리로 추정되는 오른쪽 동그라미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몸통 부분이 올록볼록 반짝반짝 계속 움직인다 당 160회의 속도로 뿜뿜 생명력을 발휘하고 계신 라임이다.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처음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봤던 동그란 암흑 구체가 인간의 모습을 갖춘 초음파 사진으로 변하는데 2주밖에 걸리지 않았다. 진짜 대단한 변화이다. 그 기간 동안 아내와 내가 겪은 신체적 감정적 변화가 '아 그래서 그랬구나, 저렇게 건강하게 라임이가 노력하느라 그랬구나.' 라는 생각이 들며 저 사진 하나로 모든 게 정리되었던 순간이었다. 입 옆에 뾰루지 하나가 생겨도 일주일간 신경 쓰이고 밥 먹을 때마다 불편한데, 당 160번씩 뿜뿜거리는 라임이가 뱃속에서 자리 잡겠다고 이 순간에도 성장하고 있으니 아내가 받을 정신적 신체적 변화는 사실 더 심하더라도 충분히 이해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6주에 접어든 모든 부부들이여 8주 혹은 9주에 보게 될 심장소리를 생각하며 모든 변화를 감동적으로 이겨내길 바란다.


짧게 작성했지만 초기 2-3주 간의 변화는 진짜 엄청나다. 두려움, 행복함, 신기함 뿐 아니라 신체적 변화에 따른 부부의 생활방식을 강제적으로 변화시켜야 하는 시기이다. 그려러니~ 하고 넘어가기엔 그냥 모든 것이 불편한 시기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말 한마디, 눈빛 한 번으로 부부사이가 더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시기였다. 8주차 심장소리의 감동을 기약하며 더 많이 표현하고, 더 많이 사랑하고,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부부간의 정을 쌓아가길 바란다. 남은 32주는 더 큰 변화들이 있을텐데 기대된다.

이전 02화 [#2 공남쓰임, 5주 차] 두 줄 발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