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자기소개 시간>
요가 지도자 과정 첫 시간,
짧게 진행된 자기소개만으로는 그들이 왜 이곳에 왔는지,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 알 길이 없었다. 사실, 들었다 해도 기억나지 않는다. 수줍음을 타는 나는 늘 내가 어떻게 말했는지만 신경 쓰느라 바쁘니까. (그래도 요가 지도자 과정을 하면서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몇몇 동기들이 대충 말한 나이와 직업 정도만 어렴풋이 기억하는 수준. 이름조차 아직 다 외우지 못했다.
10명 남짓한 수강생(이자 나의 동기들)의 몸은 저마다 달랐다.
나는 몸이 유연하고, 근력도 어느 정도 있는 편이라 꽤 어려운 요가 동작들도 그럭저럭 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자신 있게 지도자 과정을 신청했다.
지도자 과정을 신청한 가장 큰 이유는 요가를 좀 더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어서였다. 그동안은 유튜브 영상만 보고 따라 했지, 요가 자세의 산스크리트어 명칭이나 역사, 신체 해부학 같은 건 전혀 몰랐다. 그러니까 몸은 풀려 있는데, 머리는 텅 비어 있는 상태랄까.
(물론 강사가 되어 친구나 지인들에게 가르치고, 나중에는 수강생들에게 제대로 요가를 지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꿈도 있었다.)
지도자 과정에서 선생님이 동작을 산스크리트어로 말하면 순간 당황하지만, 설명을 들으면 금방 따라 했다. 동기들이 뻗어버릴 정도로 힘들어할 때도 나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억지로 힘든 척하고 싶지도 않아서 쉬는 시간엔 그냥 매트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전에 북적이는 요가 수업을 들으러 갔을 땐 몇몇 수강생들의 실력에 놀라 자극을 받았는데, 지도자 과정에서는 정반대였다.
오는 길에 남자친구와 통화를 했다.
“오빠, 요가 수업에는 진짜 실력자들이 많은데, 지도자 과정에는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 난 별로 힘들지도 않은데 다들 눈 풀리고 녹초가 돼 있더라고.”
실제로 지도자 과정에는 몸이 심각할 정도로 뻣뻣한 동기도 있었다. 전굴 자세에서 겨우 발끝을 잡고 허리가 둥글게 말리고, 다운독을 할 때는 손이 땅에 닿지 않아 블록 위에 손을 올린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녀는 하타 요가 수업을 세 번 들어본 게 전부였고, 이 과정이 인생 네 번째 요가 수업이라고 했다. 수리야나마스카라조차 어색해서 10번 하는 데 한 시간이 걸린다고도 했다.
’그런데 왜 지도자 과정을 신청한 거지?‘
’등록비만 300만 원인데, 돈이 아깝지 않나?‘
’요가도 잘 모르고, 몸도 안 따라주는데, 수업을 제대로 따라갈 수 있을까?‘
’어쨌든 자격증은 따겠지? 그럼 요가를 가르칠 수도 있는 거잖아?‘
온갖 의문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지도자 과정에 오려면 적어도 바카사나나 핀차마유라사나 정도는 가뿐하게 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나는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집에서 끙끙거리며 어려운 자세를 연습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백벤딩조차 제대로 못하는 동기들의 모습이 낯설었고, 이 과정 자체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었다.
그러다 문득 수영이 떠올랐다. 내가 사랑하는 또 다른 운동, 하지만 접영만큼은 할 때마다 몸과 마음이 모두 불편했다. 내가 가장 못하는 수영 영법이었기 때문이다.
지도자 과정 수업이 끝나고 저녁, 남자친구와 밥을 먹으며 또 이야기를 나눴다.
“몸이 뻣뻣한 분들은 대체 왜 지도자 과정을 신청했을까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제일 힘든 건 본인일 것 같아. 못 따라와서 끙끙대는 건 결국 본인이잖아. 알다시피 난 접영을 못하잖아? 근데 내 앞에서 10명이 멋지게 접영 하며 나아간다고 생각해 봐. 나는 뒤에서 되지도 않는 발짓으로 따라가야 하는 거야. 얼마나 자괴감이 들겠어.”
그리고 다음 날 수업 시간.
수업 끝나기 전, 다 함께 모여 앉은 Q&A 시간에 그녀가 갑자기 말했다.
“다른 분들은 강사가 되려고 하겠지만, 저는 그냥 제 몸이 궁금해서 이 과정을 신청했어요.”
그제야 그녀가 첫 자기소개 시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전 그냥 똑바로 앉아만 있어도 허리가 아픈데, 대체 내 몸이 왜 이러는 걸까 궁금했어요.”
나는 그녀의 동기를 몰랐다.
겉으로만 보고, 내 기준으로, 내 상황에 빗대어 멋대로 판단해 버린 것이다. 그녀의 감정, 바람, 목적을 한 번도 깊이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녀는 요가를 대단히 잘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멋진 요가 강사가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건 어쩌면 나의 목표였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그녀에게 투영하고, 기준을 들이밀고, 멋대로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살면서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의 선택과 행동을 두고 멋대로 해석하고 단정 지어왔을까.
그들의 진짜 동기와 목적은 알지도 못하면서, 아니, 알려고조차 하지 않으면서.
‘그런 직장을 들어갔다면 당연히 이 정도 돈은 모았겠지.’
’그럼 나중엔 이 정도 집을 살 생각이겠지?‘
‘그런데 그냥 퇴사한다고?’
’돈도 없다고?‘
‘집도 없다고?’
나는 내 선택이 남들에게 쉽게 해석되고 판단되는 것이 싫다고 하면서도, 같은 방식으로 남을 평가해 왔다. 한국 사회가 나를 옥죄는 것 같다고 불평하면서도, 정작 나도 똑같이 가시 돋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흘려보내려 한다. 내가 바다에서 수영할 때, 내 몸을 감싸는 물살과 코끝에 스치는 공기를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듯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본인만의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선택하고 행동하며, 각자의 인생을 채워가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나 또한.
내가 한 선택과 결과들은 남들이 알 수 없는 나만의 이유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누군가 내 선택을 두고 의아해한다면?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체 왜?’ 하고 묻는다면?
그건 그들의 판단 오류일 뿐, 내 잘못이 아니다.
그 순간, 내가 느껴야 할 감정의 종류는 수치심이 아니다.
과거의 선택들, 그리고 앞으로의 선택들에 대한 부끄러움을 조금은 내려놓게 된다.
“너 왜 그랬어?”
“그냥, 내 마음이야. 네가 알지 못하는 내 마음 말이야.”
이제는 이렇게 대답할 용기가 조금은 생겼다.
내가 남을 멋대로 판단하지 않기로 결심한 덕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