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nyasa: 빈야사>
요가 지도자 과정, 빈야사 수업이 끝나기 한 시간 전.
다 같이 둥그렇게 모여 앉아 있던 그 순간이 어쩐지 참 좋았다. 선생님과 학생들이 같은 바닥에 쪼그려 앉아 같은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시간. 누군가는 질문을 던지고, 누군가는 진심을 담아 대답하는 자연스러운 Q&A. 딱딱하지도, 어색하지도 않은, 편안한 시선들.
수업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실은 몸에 전율이 일 정도로 벅찼다. ‘이 순간을 경험하다니, 이거면 됐다!’ 300만 원이라는 거금은 오늘로써 벌써 그 목적을 다했다고 느껴졌다.
지난 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초·중·고, 그리고 대학까지. 뼛속까지 한국인으로서 지난 학창 시절을 돌아봤다. 그때의 나는 늘 입 꾹 다물고 미친 듯이 필기만 하던 학생이었다. 멀찍이 서 있는 선생님의 말씀을 받아 적기 바빴고, 질문은 수업 끝나고 쪼르르 달려가서 따로 해야 했다. 발표는? 꼭 해야만 하는 시간에 억지로 입을 뗐다. 수업 중에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선생님과 토론을 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돌이켜보니, 선생님, 교수님, 상급자와 같은 눈높이에서 앉아 마음 편히 대화해 본 적이 없었다. 늘 위아래가 분명한 구조 속에서만 배워왔으니까. 그래서였을까? 요가 수업에서의 그 둥그런 순간이 유난히 벅차게 다가왔던 건 어쩌면, 내가 늘 바라왔던 장면이었기에.
'내가 서양에서 태어났다면? 더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발표하는 학생이 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물론, 내성적인 성격도 한몫하지만, 내 안의 소극성은 ‘겸손은 미덕’이라는 한국식 교육의 산물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29살이 된 지금도 남들 앞에 서면 목소리가 떨리고, 발표 땐 손에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린다. 요가 첫날 자기소개할 때도 괜히 목이 메었고, 그게 또 부끄러웠다. (참고로, 천하의 셀럽 리아나도 시상식에 갈 때마다 떨린다고 한다. 최근 그런 인터뷰 보면 괜히 위로받았더라.)
요가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만 믿고 지도자 과정을 시작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늘 의문이 맴돌았다. '과연 내가 남들 앞에서 멋있게 수업을 이끌 수 있을까?'
빈야사 수업, 첫 티칭 과제인 수리야 나마스카라 A — 태양경배 자세 시현 시간이 시작되었다. 수없이 연습한 시퀀스였기에 대본 없이도 호흡과 동작이 술술 나왔다. 그런데 막상 내 앞에 동기를 가르치려니 목소리는 딱딱하게 흘러나왔고, 동기의 자세를 손으로 잡아주는 것도 괜히 머뭇거렸다. ’아니, 왜 이래? 집에서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연스럽게 잘했잖아!‘
그리고 동기와 둘이서 나누는 피드백 타임.
나와 마찬가지로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태양경배 자세 수업을 마친 그녀. 그리고 내가 그런 동기를 평가해야 한다니, 괜히 어색함이 몰려왔다. 용기 내어 그녀에게 피드백을 주는 순간,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필기해도 돼요?” 그녀는 서둘러 공책을 펼쳤다. 아, 안도감과 함께, 우리는 매트 위에서 자연스럽게 태양경배 자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자, 이제 둥그렇게 모여 앉아 보세요.”
선생님이 수리야나마스카라 A 수업에 열중해 있는 우리들을 불러 모으셨다.
“티칭 하면서 궁금한 거 있어요? 이쪽 선생님부터 한 분씩 돌아가며 얘기해 볼까요?”
사실, 정말 궁금한 게 있었다. 이때다!
“그냥 수업에서 차투랑가, 업독, 다운독 등 용어 이름만 말하고 넘어가도 되나요? 완전 초보자 수업이면 어떡하죠? 예를 들면… 할머니들만 모여 있는 수업이라던가요?”
나의 질문이 끝나고, 다른 동기들도 차례로 자신만의 궁금증을 꺼냈다.
“다운독 자세에서 호흡 세주는 게 어색해요.”
“제가 짠 시퀀스 말고 학생들이 알아서 움직일 때는 어떡하죠?”
“수업 끝나고 학생이 와서 ‘너무 힘들었어요’라고 하면 뭐라고 해야 하죠?”
모두가 요가에 진심이었고, 선생님은 우리의 눈을 마주치며 정성스럽게 답해주셨다. 빛나는 눈동자, 약간의 순수함 어쩌면 순진함, 하지만 그 안엔 요가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어떠한 편견과 잣대도 들이밀지 않고 있었다. 이 순간은 누가 얼마나 요가 동작을 잘하고 못하는지, 얼마나 용어를 잘 알고 모르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경험들은 종종 마음 깊숙이 박혀, 비슷한 순간이 오면 다시 생생하게 떠오르곤 한다. 마치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 나오는 ‘핵심 기억 구슬’처럼. 이 순간은 그런 구슬 하나가 되어 내 마음에 한가운데 툭, 떨어졌다.
나는 그때 ‘자유’라는 감정을 느꼈다.
그동안 나는 혼자 시간을 보낼 때만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혼자 여행을 가거나, 전시회를 가거나, 영화관에 갈 때만 진정으로 자유롭다고 느꼈다. 어쩌면 ‘자유’를 내 안에서 그렇게 정의 내렸기 때문에, 그런 방식에서만 느껴왔던 게 아닐까?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는 수업시간에도 전율이 이는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니. 29년 산 한국인 인생에서 꽤나 진귀한 경험이었다.
‘학창 시절에 이런 걸 경험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지만, 늦지 않았으니 이제부터라도 이런 순간을 더 자주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이런 순간을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다 같이 이 자유로움을 느껴봤으면.
29년 만에, 드디어 단단히 갇혀 있던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살짝 고개를 내민 기분이다. 아니, 기분이 아니라 진짜, 이제야 비로소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는 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