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버리고 싶은 집착은 무엇인가요

<Shauca: 사우차> 마음 한 켠 묻어둔 나를 깨운 일주일

by 초하

요가 지도자 과정 수업 첫날, 과제가 주어졌다.


요가의 여덟 단계 중 첫 번째 ‘야마(yama: 도덕적 규칙)’, 두 번째 ‘니야마(niyama: 일상생활의 규율)’의 뜻과 산스크리트어 단어들을 입에 붙도록 달달 외우고 있던 우리에게,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니야마의 첫 번째 규율인 ‘사우차(shauca: 순수함, 깨끗함)’의 실천 주제를 정하세요. 선정 이유와 함께 일주일간 실천하고, 다음 시간에 후기를 나눕니다.”


주제 선정이라. 내 삶에서 가장 벗어나고 싶은, 벗어나서 진짜 ‘깨끗해지고 싶은’ 건 뭘까.


몇 가지가 떠올랐다.

가장 먼저 생각난 건 ‘비건’. 대학생 때부터 꿈꿨지만, 직장인이 된 이후 고기 먹는 삶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특히 운동하고 난 저녁엔 삼겹살이 눈앞에서 춤췄다. 완전 비건은 무리라도, 일주일 페스코 베지테리언(고기 대신 생선은 먹는 채식)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두 번째는 잠들기 전 유튜브 끊기. 자기 전에 영상 보다가 스르르 잠드는 습관을 고쳐볼까 했다.

조금 더 쉽게는 ‘미국 주식창 들여다보지 않기’ 같은 것도 후보에 올렸다.

아침 공복 커피 끊기도 떠올랐다.


근데, 어쩐지 다 무섭다.

일주일 뿐인데도 벌써부터 두려움이 확 몰려왔다.


운동하고 나면 고기가 미친 듯이 땡기는데, 안 먹을 수 있을까?

주식하는 사람이 주식창을 안 보면 안 되지 않나?

혼자 사는데 유튜브 끊으면, 그 적막을 어떻게 견디지?

아침에 커피 안 마시면, 그냥 회사에서 기절할 텐데?


그리고 문득, 고치고 싶은 습관이 하나 떠올랐다.

주말에 집에서 빈둥대며 인스타 릴스와 유튜브 쇼츠, 외국 연예계 뉴스를 몇 시간씩 뒤지는 나. (본인은 외국 영화와 외국 가수를 덕질하고 있다.)

대중교통에서도, 침대에서도 그랬다.

더 문제는, 그러고 나서 늘 나 자신을 한심해했다는 것.

아이패드엔 읽다 만 이북이 수두룩하게 쌓여있는데, 쇼츠만 보며 주말을 허비하는 내가 너무 싫었다.


그래서 첫 번째 사우차는 ‘숏폼 끊기’로 정했다.

조금은 어설프게 정한 나의 첫 사우차. 솔직히,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인스타도 자주 하는 편은 아니고, 숏폼 대신 긴 영상이나 영화는 봐도 괜찮으니까. 쨌든 그 시간에 밀린 책이나 읽자고 스스로 다짐했다.


조금은 쉬운 길을 택하고 싶었다.

크게 불편하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성과는 낼 수 있는 거.


그렇게 월화수목금, 예상대로 나는 쇼츠 대신 긴 유튜브 영상 혹은 쇼핑앱으로 시간을 채웠다.

책은 역시 안 읽혔다.

목요일이 되자 슬슬 양심이 찔려, 읽다 만 이북을 억지로 펼쳤지만 끝내진 못했다.


금요일, 선생님께 ’ 속세와 멀어지는 기분이에요’라고 말하긴 했지만, 고백컨데 그 정도의 극적인 고립감은 없었다.


한 주 동안 좋아하는 쇼츠 크리에이터의 고양이 영상을 못 본 건 좀 아쉬웠지만, 삶이 드라마틱하게 깨끗해지는 기분은 전혀 없었다. 내 삶은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그렇게 첫 주 과제 회고 시간,

선생님은 우리를 앉혀 놓고 지난주와 달리 사우차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설명하셨다.


“니야마는요, 주제를 선정하고, 실제로 실행하고, 그 후 반추하는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특히 주제를 정할 땐, 반드시 실험과 시행착오를 거쳐야 해요.

어떤 분은 ‘배달음식 끊기’를 사우차로 정하셨는데, 막상 일주일 내내 야근하느라 배달음식 먹을 일이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경우, 과연 제대로 된 주제를 고른 걸까요? “


그리고 덧붙이셨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우차에는 큰 결심과 큰 불편함이 따라와야 한다는 거예요.

속세와 조금 멀어지는 게 외롭고 불편하게 느껴진다 해도, 그 불편함은 견디고 감수해야죠. 그게 사우차예요.”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은 걸로 사우차 과제를 한 거였다.

작은 결심, 아주 작은 불편함만 감수하는 수준으로.


“사우차에 가까워지면, 그 반대되는 걸 자연스럽게 알아차리게 돼요.”


선생님의 이 말이 콕 박혔다.


‘숏폼만 안 보면 되지’라는 가벼운 결심으로, 난 여전히 핸드폰을 끼고 살았다.

그렇게 눈앞이 뿌옇게 흐려진 채, 내가 벗어나고 싶던 ‘중독’ 속에 푹 잠겨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같은 과제를 한 주 더 받았다.

선생님은 첫 주의 시행착오까지 우리의 몫으로 남겨두셨던 거다.


다시 주제를 정하며, 이번엔 더 크게 결심했다.

인터넷 자체를 끊기로.

대중교통에서, 퇴근 후, 주말 내내 쇼핑 앱, 커뮤니티, 유튜브, 인스타, 카톡, OTT 전부 금지.

업무 아니면 인터넷도 카톡도 되도록 안 하기. 대신 전화하기.


“집착하는 행위를 안 할 때 느낌이 어떤지 살펴보세요. 집착을 대신할 대체행위를 찾아보고, 그것이 실제로 만족감을 주는지도 기록하고요.”


나는 책을 읽고, 요가 수업 내용을 복습하고, 요가 수련을 더 열심히 하기로 했다.


물론 첫날부터 쉽지 않았다.

유튜브 대신 카톡을 들락거리고, 습관처럼 인스타와 네이버를 켰다가 허겁지겁 닫았다.

영화 예매, 책 구매, 여행 숙소 예약, 심지어 지도 검색조차 멈칫했다. ‘이것도 하면 안 되나?’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첫 번째 과제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이전 ’ 숏폼 보지 않기‘ 주제와 다르게, 나는 나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 의식적으로 돌아보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큰 불편함이 동반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과정 자체가 새로웠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글을 읽는 대신 글을 쓰고 있었다.


아쉬탕가 요가를 끝내고 돌아온 저녁, 수업 과제 중 하나인 ’ 요가 수련 일지‘를 쓰다가,

더 깊이 파고들고 싶은 감정과 생각을 메모장에 쏟아내기 시작했다.

매일 유튜브를 보던 그 시간에, 나는 새벽까지 글을 쓰고 또 썼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원래 글 쓰는 걸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10대 후반, 20대 초반 매일 블로그에 비밀글로 내 마음속 이야기를 쏟아내던 그때처럼.


직장인이 된 후로는 이상하리만큼 글이 안 써져서 ’ 책을 덜 읽어서 머리가 백지가 됐나 ‘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바깥의 너무 많은 정보와 자극에 휩쓸려서, 정작 내 안의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 없었던 거다.


몇 년간 한심하다고 자책만 하던 내가, 단 일주일 만에 이렇게 바뀌다니.

이건 새로운 나를 찾은 게 아니라, 마음의 방 한 구석 오래 숨어있던 나를 다시 꺼내 본 기분이었다.


그렇게 사우차는 끝났지만,

나는 계속해서 새로운 습관을 들이는 중이다.

여전히 카톡도 보고, 필요한 앱도 쓰지만,

적어도 이젠 ‘의식적으로’ 내 시간을 바라보며, 중독적인 습관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리고 그 덕분에,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던 브런치 작가도 덜컥 한 번에 통과해 버렸다.

시작이 이렇게 좋으니, 이 습관을 놓칠 수 있으랴.


‘내가 실천하고 싶은 사우차는 뭘까?’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잠깐이라도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면, 그리고 단 일주일 만이라도 실천해 보고, 불편하지만 삶에서 작은 변화라도 느낀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글의 역할은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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