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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초하 Sep 05. 2023

피할 수 없는 이직러의 외로움

10년 차 직장인의 이직 4개월 차 후기

벌써 이직한 지 약 4개월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남들은 3개월 정도 지나면 1차적인 안정기를 갖게 된다고 하는데, 나는 이상하게 3개월이 지난 순간부터 미칠듯한 근심, 걱정, 혼란이 나를 괴롭혔다. 아마 상상했던 이직 3개월 차 나의 모습과, 실제 3개월이 지난 내 모습의 갭이 너무나 커서 그랬던 것 같다.


이직한 지 3개월이 지났을 때쯤, 나는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기는커녕 여전히 정신없고, 뭐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마음만 분주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더군다나 나는 '10년 차' 이직러였지만, 두 자릿수 연차가 낯부끄럽게도 여전히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계속 부적응 중인 것만 같은 모습에 갈수록 자책이 심했다. 이렇게 이직 3개월 차의 시간을 보냈었다.


그리고 막 4개월이 지나가는 요즘, 드디어 나는 느껴버리고 말았다.


경력직 이직러의 외로움!



입사 초반에만 하더라도 크게 외로움을 느끼진 못했던 것 같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외로웠지만 예상한 부분이었고, 이미 나에겐 전 직장에 친한 동료들도 충분히 많으니 굳이 새로운 둥지에서 많은 친분관계를 만들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이제 나도 친구가 없어도 개의치 않는 10년 차의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외로움이 말이다. 이직 4개월에 다다르니 확-체감이 되는 것이었다.


너무 일하기 싫어 월요병이 극에 치닫았던 어느 날, 전 직장에서 친하게 지냈던 과장님께 카톡이 왔다. 너무 지겹다고, 월요일 시간이 왜 이렇게 안 가냐는 평범한 카톡이었는데, 갑자기 알 수 없는 외로움이 확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전 회사에서 일상처럼 이야기했던 "일하기 싫다"는 푸념도, 새로 온 회사에서는 맘 놓고 이야기할 만한 동료가 없어 그간 속으로 삭였다는 사실이 꽤나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지금 일하는 회사는 전사 재택근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같은 팀 동료도 얼굴을 본 게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수준이다. 아무래도 업무적인 이야기가 주된 대화고, 맘 편한 스몰토크는 한계가 있었다. 물리적으로 너무나 멀리 떨어진 전 직장 동료분께 온 "일하기 싫다"는 카톡이 너무나 반가웠다. 나 사실 이런 게 그리웠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전 직장에서도 나는 (당연한 소리지만) 정말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출근하는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했고, 월요병이 너무 심각해서 월요일 아침엔 표정이 썩어있는 사람으로도 유명했다. 그런 내가 전 직장에서 어떻게 약 9년의 시간을 버텼는고 하니, 마음 맞는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아침마다 같이 커피 사러 가면서 하루를 시작했던 시간, 너무 일하기 싫을 때 친한 동료분 자리로 놀러 가 업무이야기를 빙자하며 잠깐 수다 떨었던 시간, 답답해서 잠깐 회사 근처 콧바람을 쐬며 땡땡이쳤던 시간 등, 이런 소소한 일상이 나를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이런 원동력이 부재한 지금, 월요병을 회복하는 데에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지옥 같은 월요일을 보내고, 정신없게 화요일, 수요일을 보내다 보면 목요일에 그나마 조금 컨디션 회복이 된다. 주말만 바라보며 금요일을 버티는데, 마침내 온 주말은 야속하게도 너무나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 그리고 또다시 지옥 같은 월요일이 온다. 동료와의 스킨십이 사라지면서, 나의 월요병 회복 탄력성도 현저하게 떨어져 버렸다. 경력직 이직러의 재택근무 환경은,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분명히 있다.




전 직장 동료분 집에 놀러간 날 저녁 만찬


지난 주말에는 전 직장 동료 과장님이 본인 집으로 나를 초대해 주셨다. 함께 친하게 지냈던 후배 동료와 놀러 가서, 순대볶음도 시켜 먹고 새벽 5시까지 밀린 수다를 떨다 정말 오랜만에 뜬눈으로 밤샌 경험을 했다. 최근 회사에서 느꼈던 외로운 감정도 토로하고, 아직도 부적응 중인 것만 같은 고충도 하소연하며 그간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었다.


여전히 나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며 함께 고민하고 걱정해 주는 친한 동료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주말에 받은 에너지가 꽤 단단했던지, 이번주 월요일은 그나마 조금 평이한 월요병을 앓았고, 남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갉아먹던 마음도 조금은 덜해졌다. 이렇게 나의 이직 4개월이 지나고 있는 것 같다.


5개월이 넘어갈 시간에는 새로운 둥지에서도 맘 편히 일하기 싫음을 하소연할 수 있는 동료가 생기지 않을까? 그래도 나는 성격 파탄자는 아니니까!




이직한 지 갓 4개월이 지났던 시점에 썼던 일기입니다.

벌써 이직한 지 9개월이 지났는데요. 지금의 저는 어떤 외로움을 느끼고 있을까요?

이직 9개월 차 후기도 곧 브런치로 써볼 계획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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