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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초하 Sep 03. 2023

10년 차라는 족쇄

10년 차 직장인의 좌충우돌 이직 이야기

지금 회사로 이직을 하고 가장 당황스러웠던 사실은, 내가 우리 팀에서 가장 연차가 많고 나이도 많다는 점이었다. 솔직히 이직을 준비했을 때, 나도 적은 나이는 아니니 어느 정도 각오를 한 부분이기는 했다. 하지만 막상 현실로 마주하니 여간 당황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연차도 나이도 적지 않은 편일 것이라 예상하긴 했지만, 내 연차와 나이에 '가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을지는 몰랐다.


이전 회사에서 나는 중간 직급의 중간 연차, 중간 나이의 팀원이었다. 팀장은 나보다 10살 가까이 많은 분이셨고, 내 위로 차장님들도 많았으며 나는 과장으로서 팀의 중간에서 팀장&차장과 사원&대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완충 직급이었다. 더군다나 나는 이전 회사에서 신입사원으로 입사하여 과장까지 진급하고 9년 가까이 일했다. 회사에는 나를 신입사원 때부터 봐왔던 선배들도 많았기 때문에, 내가 과장이어도 "○○가 언제 벌써 과장이 되었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훨씬 많았다. 사실 그래서 나도 내 직급과 연차를 체감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언제나 많은 선배들 밑에서 조언을 구하며 일했다. 누구를 가르치고 리딩하는 것보다, 배우고 따르는 것이 더 익숙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직한 회사에선 상황이 달랐다. 연차로도, 나이로도 팀에서 최고참이었다. 팀장과의 나이 차이도 적었다. 나의 막내 시절을 기억해주는 사람은 이곳에 당연히 없고, 새로운 조직에서 나는 오로지 '10년 차 경력직'일뿐이었다. 팀장은 나에게 언제든지 팀장이 될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해야 하며, 지금의 팀원들을 리딩해서 업무를 이끌 것을 원하였다. 내 코가 석자인 판국에 누가 누굴 리딩하라는 것인지, 이직한 순간부터 10년 차라는 연차가 족쇄가 되어 나를 조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 회사에서 내 연차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소위 "10년 차 짬바"에 부응하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만족스럽지 못한 성과의 연속이 이어질수록 내 자존감은 아래로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잖아요!"라고 외치던 내가 누구보다도 내 나이를 가장 의식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연차도 낮고 나이도 어린 동료들이 나보다 훨씬 높은 업무 퍼포먼스를 보이는 모습을 보며 내 스스로와 비교하고 날 갉아먹었다. 그렇게 점점 조급해졌던 것 같다.


내 스스로 만든 연차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게 꽤나 어렵다. 직급이 없는 회사를 다니더라도 이직한 사람에게 연차는 족쇄가 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직의 황금기는 '대리 말'이고, 이직 생각이 있다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가라는 말을 하나보다. 이직 세계에서의 진리를 직장인 된 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이직하고 나서야 체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얼마나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지금이라도 이직을 했으니 말이다. 더 나이 먹고 이직을 생각했다면 '팀원'으로서의 이직 자체가 어려웠을 것 같기도 하다. 고인물 10년 차 직장인이 고인물의 바깥으로 나와서 느낀 점은, 세상에 생각보다 젊은 조직이 굉장히 많다는 점이다. 나도 모르는 새에 나와 동년배 연차의 친구들은 파트장도 하고 팀장도 하고 있더라. 이걸 이직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나저나 그래서 지금 나는 이 족쇄랑 어떻게 같이 회사를 다니고 있냐면, 내 연차를 증명하겠다는 욕심을 내려놓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욕심을 내려놓으니 족쇄도 저절로 헐거워지고 있다. 아직 완벽히 족쇄를 벗어나진 못했다. 하지만 발목에 단단히 걸려있던 10년짜리 족쇄의 잠금장치가 1mm씩 풀리고 있다. 누가 뭐라 해도 내 페이스대로 일해야지 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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