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불길한 기운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
참으로 평범한 날이었다. 어느 때와 같이 일을 하고, 밥을 먹고, 회의를 했다. 유독 회의가 많았던 날, 그날의 마지막 회의가 끝나려는 찰나, 갑자기 팀장님이 불길한 멘트를 날렸다.
"혹시 팀장해 볼 생각 있어요?"
".......네?"
아니 팀장님. 갑자기 저보고 팀장이라뇨. 저는 지금 제 앞가림도 하기 힘든걸요?
이직 한 번 했을 뿐인데, 갑자기 팀 내 최고참이 되었다. 늙은이 취급받는 것도 서러운 마당에 회사가 이제는 나를 팀장 감투까지 씌우려고 한다.
- 저는 아직 팀장할 생각이 없어요. 저는 그냥 개미처럼 일하며 잔잔하게 살고 싶은 한낯 미생일 뿐이에요.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입 밖으로 고스란히 내뱉지는 못했다. 직장 생활 9년인데,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며 살 수는 없다는 것 정도는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난 나의 워라밸을 지킬 의무가 있다. 팀장이 되면서 무너질 나의 작고 소중한 일상을 그저 눈뜨고 지켜볼 수는 없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이 위기를 모면해야했다.
"죄송합니다. 전 팀장은 못할 것 같아요."
그렇게 조심스럽게 거절하고, 또 거절하니 어느새 나는 회사에서 “팀장 시키면 당장이라도 그만 둘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라고 거절할 때마다 마음이 편한건 아니었다. ‘내가 무책임한 사람일까’, ‘회사에 폐를 끼치고 있는걸까’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내 마음은 지하 심층수까지 파고 내려갔다. 하지만 “니가 감당 가능한 것만 받아라!”고 울부짖는 내 안의 진심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내 일도 잘하고, 내 인생도 잘 살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는걸까?
인터넷에서 ‘팀장’을 검색하면 ‘팀장의 리더십’, ‘팀장을 위한 바이블’ 등 훌륭한 팀장이 되기 위한 글들만 많았지 ‘팀장 하기 싫은 사람’의 이야기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다. 나 역시 팀장 제안을 받고 스트레스 받았던 때, ‘팀장 제안 거절’ 등으로 백날 검색을 해봤지만 나오는 내용이 하나도 없었다. 생각해보니 그런 글을 쓰기도 쉽지 않을 것 같긴 하다. 회사가 시키는걸 안하겠다고 고집부리는 것인데 어디가서 자랑할 만한 이야긴 아니니 말이다. 더군다나 개인의 성장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위로 올라가기는 커녕 올라가는 것을 거부하고 현재에 만족하고 싶다는 사람의 이야기가 환영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팀장 제안을 거절하면서도, 이렇게 해도 괜찮은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 힘들었다. 팀장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회사와 동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 같아 괴로웠다. 하지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안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고 싶었다. 이것이 나의 이기심은 아닌지 하루에도 열두번씩 나를 괴롭히며 자기 검열을 했다. 그리고 그 불편한 감정을 꾸역 꾸역 소화하기 위해 시작했던 기록이 모여 여기까지 왔다.
이 책에는 원치 않는 팀장 제안을 거절하면서 일과 나 사이에서 건강한 중심을 잡고자 노력하는 9년차 직장인의 고민이 담겨있다. 자랑스러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 글을 보는 분들이 ‘이런 사람도 있구나’ 정도로만 이해해줘도 감사할 것 같다.
그러니까 각설하고… 제가 팀장하기 싫은 이유는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