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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지현 Oct 23. 2024

누구나 자기에게 맞는 때가 있다.

4부. 나를 책임지는 사람은 바로 나

"나 올해 독립하려고."

"뭐? 무슨 갑자기 독립이야!"

"나 혼자 한 번도 살아본 적 없잖아."


내 생일날이었다. 부엌에서 가족들과 저녁 식사중 독립 이야기를 꺼냈다. 오랜 기간 생각만 하고 있던 것을 입 밖으로 내뱉은 건 처음이었다. 갑작스러운 딸의 독립 선언에 아빠는 놀랐는지 갑자기 무슨 독립이냐며 고개를 저었다. 


내 나이 30대 중반, 사실 독립은 진작 했어야 할 나이다. 하지만 그간 생각만 해왔을 뿐, 실천에 옮기진 못했다. 독립이야말로 금전적인 여유가 허락되지 않으면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나만의 공간 안에서 나만의 라이프 스타일로 멋지게 살고 싶어도 돈이 없으면 실천할 수 없다. 독립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나는 반드시 독립을 해야 할 필수 불가결한 이유도 없었다. 첫 직장은 집에서 회사까지 충분히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에 있었고, 이직한 회사는 심지어 재택근무를 했기 때문에 아무렴 이제는 출퇴근할 일 자체도 없었다. 여러모로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이 돈을 모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효율적이었다. 내 상황에 독립을 하는건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하는 일이었다. 그것도 한두푼이 아닌, 아주 많은 비용을 말이다. 


그래서 독립을 하는게 맞는지 고민하는 기간이 길 수밖에 없었다. 독립은 내가 200만원 짜리 자전거를 덜컥 사버리는 수준의 소비가 아니었다. 당장 버는 돈뿐만 아니라 그간 모아온 돈도 투자해야 하는, 엄청난 소비였다. 내가 이 소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지, 그저 단순히 혼자살기의 로망을 실현하기 위한 사치는 아닌 것인지 스스로를 검열하고 또 검열했다. 그리고 긴 검열끝에 마침내 마음을 먹었다. 그럼에도 나는 독립을 해야겠다고. 


사실 결혼이 어울리는 나이에 독립을 생각한 것은, 나에겐 지금 독립이 먼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혼자서도 잘 살 줄 아는 독립된 성인만이 누군가와 함께 살아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겉껍질만 서른 다섯 살인 어린아이나 다름없었다. 


그간의 내 인생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어른 아이‘라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35년을 살았지만 몸뚱아리만 컸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줄 몰랐다. 나는 사춘기도 없이 그저 부모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이자 착한 어른으로 자랐다. 그리고 그게 문제인지도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뒤돌아보니 내가 스스로 이룬 것 하나 없이 내가 내 삶을 살고 있지 못했단 사실을 깨달았다. 지난 35년간 부모님에게 의존하며 내 인생을 겨우 살아온 것이다. 요즘 다 커서도 부모 품에서 나오지 않는 캥거루족이 많다는데, 그게 바로 나였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도 스스로 내 인생을 살아볼 줄 알아야 하고, 독립된 성인으로 독립된 세계를 구축할 줄 알아야 했다. 그러한 인생 경험을 하는데 드는 비용이라면? 많은 돈이 든다 하더라도 결코 아깝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백세시대를 살고 있는 입장에서 앞으로 남은 65년의 인생을 더 멋지게 나답게 살기 위해 투자하는 비용이란 측면에서는 아까운 돈이 아니었다. 독립 비용을 65년으로 감가상각 해본다면 꽤나 효율적인 비용이 나오지 않을까? 


그간 모아왔던 돈에 퇴직금을 더하여 목돈을 마련하고, 월급이 오르며 생긴 금전적 여유로 월세를 내면 나 하나 건사하기 위한 최소 독립 비용은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집 나오는 순간부터 숨만 쉬어도 돈이 펑펑 나간다고 해니,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발생하겠지? 아마 이직 후 그간 나의 경험을 위해 펑펑 썼던 소비 생활도 다시 고삐를 조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독립만큼 나를 성장시키고 내 세계를 확장할 수 있을만한 경험은 없기 때문에, 거지처럼 살게 되더라도 괜찮았다. 돈은 또 열심히 벌면 되니까! 


사실 나의 갑작스러운 독립 선언 이후 부모님의 걱정과 회유는 계속 되었다. 뭣하러 나가서 고생을 하냐, 쓸데없이 돈은 왜 낭비를 하냐, 다 늙은 부모님 두고 혼자 나가서 사는게 좋냐 등등 나를 회유하기 위한 각종 잔소리를 시전하셨다. 특히 엄마 아빠 두고 너 혼자 나가 살다가 엄마 아빠가 갑자기 아프면 어떡하냐는, 착한 딸 마음 약하게 만들기 딱 좋은 멘트는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오히려 부모님이 건강하신 지금이 내가 가장 마음 편하게 나와 살 수 있는 타이밍이기 때문이었다. 나이 들어가는 부모님의 모습을 계속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약해져 더 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우리 모두 건강할 때, 건강하게 떨어져 사는 것이 건강한 패밀리쉽을 위한 길이었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늦은 독립을 준비중이다. 독립을 통해 한층 더 성장할 나의 미래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독립으로 무궁무진하게 확장될 나의 세계, 나만의 공간에서 하루 하루 무섭게 성장할 나의 매일이 기대된다. 아직 이 나이에 독립 운운하는 내 모습이 부끄러운 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우리 나라에는 나이와 어울리는 삶의 궤적이 있다. 삼십대 중반은 결혼이 더 어울리는 나이다. 그래서 나의 삼십대 중반은 세상이 권장하는 속도에서 두세발자국 동떨어져 느리게 가고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때가 있다. 한 살 한 살 더 먹어갈수록 나이가 주는 강박에 사로잡히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회사에서는 나이가 많고 연차가 많다는 이유로 팀장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아직은 나와 맞지 않는 옷이라 생각하여 용기내어 거절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내 인생도 세상이 요구하는 30대 중반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지 않고 있다. 나는 나만의 속도로 살고 있고, 나만의 방식대로 내 인생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 나이에 독립을 운운하는게 부끄럽고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누구에게나 자기에게 맞는 때가 있다’는 생각을 떠올린다. 세상의 방식이 아닌, 나만의 방식으로 내 인생을 잘 만들어가고 싶다. 나는 나를 행복하게 할 의무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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