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나를 책임지는 사람은 바로 나
[공유] 10월 16일(수) 연차입니다! (사유 : 그냥 쉼)
- 지현님 잘 쉬다 오세요! 집에서 그냥 쉬는게 최고!
- 크크 네 아무 계획도 없어요. 그냥 뒹굴거리면서 쉬려구요.
예전에는 목적없이 내는 연차를 낭비라 여겼다. 적어도 연차를 낸다면 무조건 여행 계획이 있거나, 아니면 가까운 근교 나들이라도 가서 콧바람을 쐬어주고 오는 것이 연차를 가장 연차답게 보내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이유없이 연차를 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올해를 시작하며 나와 약속한 한 가지가 있다. 특별한 목적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한 달에 한 번은 무조건 연차를 내는 것이었다. 30일 중 딱 1일만 나를 위한 하루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여행 계획이 있다면 여행을 가면 되고, 꼭 여행 계획이 없더라도 일에서 해방된 채 편하게 쉬면 그 자체로 나에게 충전이자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이유 없는 연차는 회사에 연차를 신청하는 순간부터 즐거웠다. 계획이 없으니 아무 제한도 없이 내가 가장 쉬고 싶은 날만 찍으면 되었다. 나는 달력을 펼치고 어떤 날에 쉬었을 때 가장 만족도가 높을지 고민했다. 일이 너무 많지 않아서 연차를 내기 부담 없으면서도, 한 달을 버틸 수 있는 최적의 날에 배치해야 했다. 고민 끝에 나는 마지막주 수요일로 골랐다. 둘째주에 감사하게도 공휴일이 있으니 마지막주에 연차를 내면 이번 달도 무난히 보낼 수 있을 것이라 싶었다.
그리고 나의 판단은 아주 탁월했다. 주 5일을 내리 일하며 몸과 마음이 버거웠던 딱 그 타이밍에 반갑게 연차를 맞이한 것이다. 아무런 계획도, 아무런 목적도 없는 이 연차를 어떻게 보냈을 때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을까? 즐거운 고민은 연차 하루 전 화요일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여전히 특별한 계획은 없는 상태였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시간을 확인해보니 놀랍게도 오전 7시 30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그렇게 힘들어 오전 8시에 겨우 일어나 ‘상대성 미라클모닝’을 외쳤던 내가 연차 당일에는 아침 7시 30분에 눈이 떠지다니.… 내 소중한 연차를 1분 1초라도 낭비할 수 없던 나의 무의식이 나를 일찍 깨웠나 보다. 소풍가는 날 설레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어린이의 마음이라도 된 것일까? 평소라면 ‘조금만 더 자자’며 눈을 감았을 나는 번쩍 눈을 뜨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왕 일찍 눈 떠진 것, 오늘 하루를 일찍 시작해볼 참이었다.
간단하게 준비를 마치고, 노트북과 책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여의도에 좋아하는 북카페로 갈 생각이었다. 아침에 외출 준비를 하다 생각난 곳이었는데, 검색해보니 다행히 아침 일찍부터 영업을 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와 서둘러 지하철역으로 향하던 와중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잠깐의 망설임 끝에 핸드폰을 켜 택시를 불렀다.
'난 시간이 더 귀한 사람이니, 오늘의 연차를 1분 1초라도 아낄 수만 있다면야 이깟 택시비는 큰 비용이 아니지!'
사실은 택시를 타고 싶은 합리화였다. 하지만 돈을 주고 시간을 산 덕분에 지하철로 이동하는 시간보다 30~40분 빠르게 여의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렇게 쓰려고 돈버는 것이다 생각하니 택시비가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택시에서 내려 오늘의 목적지로 향했다. 내가 좋아하는 여의도 북카페, ‘카페꼼마’였다.
주말의 카페꼼마는 항상 사람이 많았다. 내가 좋아하는 창가 테이블 자리나 2층의 큰 테이블 자리도 주말에는 언제나 만석이었다. 하지만 평일 아침의 이곳은 역시나 예상대로 여유롭고 한산했다. 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고 조용히 카페를 둘러보며 오늘의 둥지를 찾았다. 그리고 고민 끝에 2층의 창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주말에는 경쟁률이 치열해서 쉽게 앉기 힘든 곳이었다. 이게 바로 연차 내고 카페에 오는 재미겠지? 바로 나온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과 함께 집에서 가져온 책을 꺼냈다. <퓨쳐셀프>라는 제목의 책인데, 자기계발서 베스트셀러로 서점에서 꽤 오랜 기간 랭크된 책이었다.
평소에 자기계발서적을 잘 읽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 기록과 미라클모닝에 꽂히며 갓생사는 사람들의 인생이 궁금해지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이 추천하는 자기계발서적에도 호기심이 생겼다. 미라클모닝의 창시자 할 엘로드의 <미라클 모닝> 책도 읽었고, 팀 페리스의 <타이탄의 도구들> 책도 읽었다. <퓨쳐셀프>는 세번째로 읽는 자기계발서적이었다.
퓨처셀프의 메시지를 간단히 요약하면 내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때, 그것을 이미 가졌다고 생각하고 현재를 살아간다면 나의 삶도 바뀐다는 내용이다. 미래와 동기화되어 살아가는 현재의 내가 촘촘히 모였을 때, 10년 후의 나는 지금과 180도 달라진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뻔하고 추상적이고, 뜬구름잡는 이야기다. 마인드만 달리 해서 살아가는 것이 내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 원하는 것을 가지지 않았는데 가진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가는게 가능할까? 이런 뻔한 내용의 책이 아직도 잘 팔려서 베스트셀러에 오랜 기간 랭크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보던 책을 덮고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며 창 밖의 사람들을 구경했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가까워진 것인지 길가에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여의도 직장인들은 분주하게 발걸음을 서둘렀다. 아마 점심을 먹으러 가는 것이겠지? 이 일대 점심 먹을만한 곳이 어디가 있을까… 여의도에서 인턴했었던 시절, 점심을 먹으러 분주히 식당을 다녔던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다.
여의도를 올 때마다 생각한다. 난 원래 여의도 금융권 공기업 지망생이었다. 2년간의 도전과 낙방 후 되는대로 취업한게 어쩌다 마케팅의 길로 들어오게 되었다. 각잡힌 정장 차림의 여의도 직장인들과 모자에 백팩을 메고 이 곳에 온 지금의 내 모습은 참 다르다. 그 당시 내가 합격했다면 나도 저런 모습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겠지? 순간의 선택으로 내 인생도 참 내 상상과는 다르게 흘러왔다. 10년 전 내가 이런 모습일지 나는 알았을까?
사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퓨쳐셀프를> 읽고 있던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10년 전 내가 상상했던 내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은 너무나 다르다. 나는 내가 마케터가 될 것이라곤 추호도 생각하지 못했다. 10년 전 내 생각과 지금의 달라진 내 모습을 생각하니, 퓨쳐셀프의 이야기가 아주 뜬구름잡는 이야기는 아닐 것 같기도 하다. 10년 전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 것처럼, 지금의 나와 10년 후의 나도 180도 다를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정말 상상하는 미래를 품으며 산다면, 내 상상보다 더 큰, 상상 밖의 내가 되어 있지 않을까? 적어도 지금의 나는 매일 매일을 열심히 살아가며 멈춰있지 않고 성장 중이니까.
10년 후의 내 모습이 어떻게 달라질지 기대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이날의 연차는 값지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자, 그럼 무얼 이루었다 생각하며 살아가면 좋을까? 이건 다음달 계획없는 연차 때 고민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