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히 Jul 03. 2024

“어이, 똥깨~ 이리 와봐”

 - 우리 동네 할아버지

 퇴근 후 저녁을 먹으면 이제부터 우리 집 강아지 산책 시간이다. 산책 나오기 전 집에서 비축해 놓은 힘을 분출하듯 리드줄이 팽팽해질 때까지 언제나 있는 힘껏 발을 내딛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팡이를 짚고 서있는 할아버지가 보였다. 우리 동네 할아버지는 항상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우두커니 서 있다.


 얼굴에 깊게 파인 주름자국과 걸음걸이, 지팡이를 봤을 때 내가 짐작하는 어르신의 나이는 최소 80대 이상일 것이다.


 노화 때문인지 할아버지는 많이 야위셨다. 한 곳에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 대나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릇푸릇한 대나무가 아니라 노란 잎이 듬성듬성 있는 야윈 대나무말이다.


 내가 할아버지를 볼 때는 언제나 무표정이었다. 더 이상 삶에서 희로애락이란 없을 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아마 삼도천에 있는 사람들은 그러한 표정을 하고 있지 않을까?라고도 생각했다.


 이런저런 생각의 파편들이 흩어질 때 저기 멀리서 할아버지의 음성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어이, 똥깨~ 이리 와봐 “


 쉰 목소리로 힘들게 내는 목소리였다. 우리 집 강아지는 자기를 부르는 소리는 또 기가 막히게 안다. 한달음에 할아버지에게 달려가 자기를 만지라며 콧등을 들이밀었다.


 그때부터 주위의 시간은 급격히 느려진다. 나와 강아지가 할아버지 삶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표정변화가 없을 거라 생각했던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한여름의 파도처럼 잔잔한 미소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할아버지는 어린애 같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환하게 웃는 것조차 할아버지의 시간에서는 시간이 꽤 걸리는 것이었다. 그 모습은 나에게 슬로모션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더 기억에 남았다.


 할아버지는 나와의 대화는 하지 않고, 우리 집 강아지를 보며 연신 “똥개야, 똥깨”라고 얘기했다.


 할아버지는 큰 결심을 한들 서서히 허리를 숙이기 시작했다. 지팡이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거친 손으로 마침내 강아지를 한 번 쓰다듬고는 또다시 한마디를 하셨다.


“어이, 똥깨~허허 “






작가의 이전글 동갑인 후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