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에피소드 4

by TeeTee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장거리 통학을 하는 고3 누님이 돌아올 때가 되면 어머님은 늘 마중을 나가보라고 하셨다. 당시에는 핸드폰이 없는 시절이라 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그 시간이 무척이나 싫었다. 그리고, 버스정류장에서 25분의 시골길과 산 능선을 넘어야 하는 여정은 절대 쉽지만 않았다.


살에는 바람이 볼때기를 자극하는 겨울밤은 더더욱 가기 싫었다. 기다리기를 10분…. 20분이 지나도 오지 않고 도착하는 버스 안을 응시하다 보면 몸도 마음도 힘들어지곤 했다. 그래서, 기다림이라면 진저리가 난다.


요즈음은 핸드폰을 가지고 있어 어릴 적 추억으로 지나버렸지만, 그때의 기억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기다림에 대한 트라우마가 존재한다. 물론, 세상이 디지털화되어 감에 따라 대부분의 사람은 대상과 종류를 가리지 않고 기다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게 되었다.


‘1분 컷 성격’, ‘조급러’, ‘알림 중독’, ‘새로고침 인생’ 등은 기다리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성향을 나타내고 있다. 기다림은 대상과 환경에 따라 다양한 양상과 결과를 보인다. 애절함과 걱정으로… 초조함으로… 신경질적 반응으로… 위의 양상들은 결단코 긍정적인 것들이 아니므로 기다림은 유익한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 보면 양상은 부정적일지라도 결과는 긍정적일 때도 많다. 예를 들면, 관심을 보여주지 않던 그가 한결같은 기다림에 감동이 되어 돌아선다든지, 너무 고가에 투자한 자산이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큰 수익을 주는 경우이다.


기다림을 잘하는 사람 중에 긍정적인 성향이 많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하는 기다림은 잠시는 가능하지만 오래 하지는 못한다. 긍정의 생각은 기다리는 중에도 행복을 느끼게 한다. 그러기에 상황으로부터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 있다. 긍정의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사소한 것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사소한 것에 흔들리면 그때마다 생기는 내면의 스크래치는 감정에 염증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육체적 염증은 항생제로 치유가 가능하지만 감정 염증은 회복이 쉽지 않아 기다림을 포기하기가 쉽다.


나의 집안 내력은 걱정을 사랑하는 유전자를 가졌다. 어머님이 그렇고 나도, 여동생도…한두 번 전화를 못 받게 되면 어머님의 걱정 유전자는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잠도 주무시지 못하고 걱정은 지속된다. 나도 그렇다. 걱정 유전자는 기다림을 할 수 없게 하고 환경에 휩쓸려 쉽사리 포기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되는 것이 별로 없다.


기다림의 또 다른 말은 ‘진득함’이다. 요즈음은 ‘진득함’을 훈련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시작 단계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에서 출발하고 있다.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보인다. 생각건대… 기다림을 더 작은 시간으로 나누어보아도 괜찮아 보인다. 그러면, 더 많은 소중한 것들이 보이지 않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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