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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샘 Jul 31. 2024

병원동행, 필요하시나요?

누구나 아플 땐 곁에 사람이 필요하다

-너는 간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으면서 왜 일을 안해?

그렇다. 나는 간호학석사에다 대학병원급 종합병원을 두 곳이나 근무한 나름 엘리트 간호사였다. 이후로도 신문사에서 의료관련 일을 했으니 손은 더딜망정 지식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마음먹으면 동네의원, 노인병원, 요양원 등에 이력서를 들이밀 수도 있는데 못했다. 퇴사 후 여러 가지 이유로 생긴 인간관계와 약속들이 걸렸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너무 놀았나? 어쩜 사람이 이렇게 몇 년도 안되어 20년 넘은 습성을 잊어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의 취직을 방해한 것은 자존심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그저 간호노동만 해야하는 현장에 간다는 것이 몹시 걸렸다. 이런 유치한 생각을 눈치챘을까? 가장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있는데도  하지 않고 있는 나를 향한 주위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특히 남편과 친한 지인들. 그럼에도 나는 마이웨이를 외치며 당당히 거부했다.  마치 다른 큰 그림이 있기라도 하듯이. 


-간호사 자격증 있으면 병원동행 아르바이트 한번 해봐. 그건 시급이 좀 높더라~

뭔가를 하고 싶어하는 것을 눈치 챈 지인이 툭 던진 말에 나의 저 밑바닥에 감춰있던 영감이 솟구치는 듯한 에너지을 느꼈다. 

'바로 이거다. 나의 노하우와 사람에 대한 애티튜드(attitude)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병원동행이다' 무릎을 쳤다. 

'아~ 하나님, 드디어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주셨군요'


의사가 만든 병원동행서비스, MD에스코트의 대표문구다. 이 병원동행서비스에 신청서를 냈다. 

회사에선 자격증과 이력서를 요구했고 내부 심사를 거친 후 병원동행 에스코터가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사항에 대한 온라인교육을 받게 했다. 


수업을 듣기 전엔 뻔한 일을 가르지겠지 싶었지만 교육을 받고 보니 뻔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아픈 이를 도와야 하는 일에 있어서 어떤 사소한 일도 가볍게 보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실습, 실제 고객을 대하기 전 가상 고객을 대상으로 실습을 하게 했다. 

'와~ 진짜, 제대로 뭔가를 하는 곳이다. 그래, 이 정도 차별화는 있어야 내가 할만하지 ㅋㅋ' 속으로 감탄을 하며 분당서울대병원에서의 실습을 마쳤다.


대학병원에서의 경력이 있어 병원을 내 집 마당처럼 뛰어다닐 것 같았지만 실상은 달랐다. 가상 고객의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이는데도 횡설수설, 무슨 일이든 처음은 이렇게 긴장을 하나보다.   


대략 난감한 실습을 마치고 드디어 왼쪽의 사진과 같은 엠디에스코터 전자신분증이 나왔다. 


이제 병원동행앱에 동행가능한 날짜와 병원만 정하고 기다리면 된다. 


호기롭게 시작한 병원동행 알바, 정식 등록을 하고도 한 참 동안 연락이 없었다. 처음엔 하루에 수십 번 에스코터 앱을 실행시켰다. 하지만 신입에게 서비스를 의뢰하는 고객이 없었다. 온라인 몰에서 제품 고르듯이 감사리뷰가 많이 달린 에스코터에 우선순위가 밀리는 것이었다. 


0월 0일 00시 00분 
연세대학교 신촌세브란스병원 에스코트요청이 있습니다.  앱내 [에스코트]탭을 확인해주세요

드디어 첫 고객이 내게 배정되었다. 

아내 혼자서 거동을 못하는 남편의 검사와 진료를 감당하기 어려워 에스코트서비스를 신청한 고객이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6시간정도를 함께 했다. 심한 노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침대를 밀어주고 아픈 이의 곁을 지켜주는 것이 다였다. 나이의 힘인지 그래도 부족하나마 병원경력이 있어서인지 주고 받은 몇 마디로 부부의 현실이 고스란히 내 가슴에 와 박혔다. 애써 미소지어주고 가끔 어깨를 다독이며 지나가는 투정을 귀담아 들어주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헤어지는 시간엔 아내분을 꼭 안아주었다. 힘내시라고, 좋은 날이 올거라고 인사를 건네며.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무거웠다. 

누구나 각자 자기의 짐을 지고 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하지만 병원에서 만나는 이의 짐은 때로 가혹하게 느껴진다. 교회를 다니지도, 예수를 믿는 것도 아닌데 유투브로 설교를 듣는다는 젊은 남편의 말이 계속 마음에서 떠나질 않았다. 


이후로는 내시경검사 동행이 많았다. 요즘은 단독으로 하는 내시경검사에는 반드시 보호자동행을 요구한다.

해마다 정기적으로 하는 건강검진차원의 내시경검사에서 의사의 권고에 따라 정기적으로 받는 검사까지. 이 때는 짐을 맡아주고 병원에서 요구할 때 대신 수납을 해주면 된다. 

내시경 검사는 모두가 알 듯이 수면마취를 대부분 한다. 

그래서 중요한 물건을 에스코터에게 맡긴다. 그래서 에스코터의 신뢰성이 중요한 것이다. 누군가에게 신뢰받고 있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검사 후에는 정신이 온전히 돌아올 때까지 함께 있어준다. 


다들 이전 검사에서 이상이 있다하여 검사차원에서 왔거나 지병으로 검사하는 이들이라 맘이 쓰인다. 

그저 에스코터가 아니라 간호사임을 넌지시 알리며 아는 체를 해준다. 어설픈 위로보다는 팩트에 기반한 따스한 지지를 하려고 한다. 


가장 최근엔 올해 90세 어르신의 MRI검사 동행이었다. 

-내가 80살엔 90까지 살 줄 몰랐어

70대에 전 세계를 누비며 자연과 사람을 찍는 취미를 즐겼다는 전직 의대 교수님. 

그녀와 동행하며 내가 에스코터를 한 것이 참 감사했다. 

누군가와 몇 시간을 동행하며 필요를 채워주고 인생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구순기념으로 사진전시회를 꼭 가져보세요. 사진이 너무 힘이 넘쳐요. 

젊은이들 못지 않은 열정으로 험지를 다니며 카메라에 담아온 그녀의 사진은 보는 내내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경도인지장애를 걱정하는 자녀의 이야기가 생각나 내 맘이 급했다. 살아온 생을 꼭 글로 사진으로 정리해보시라고 넌지시 부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브런치에 글을 쓰시라고 할걸 그랬다. 


-병원동행 하고 있어? 어떻게 돈벌이가 되니?

병원동행을 권한 지인의 그 말에 웃음이 나왔다. 실은 나는 돈을 벌고 있지 않았다. 오래된 자가용을 끌고 병원마다 다니며 주차료까지 내니 나는 솔직히 늘 마이너스다. 내시경검사동행은 고작 해봐야 1~2시간, 이럴 땐 자원봉사수준이다. 

그래서 그만둬야지. 이 정도 시급으로 할 일은 아닌데 싶었다. 이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시급이 너무 적다. 


하지만 난 여전히 일정이 빈 날엔 병원동행이 가능함을 올려둔다

왜?

병원동행으로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고 도움이 될 수 있어 좋다.

그것이 돈을 버는 일이라서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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