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FP
MBTI를 한번쯤 관심가져봤다면 위 성향이 어떨지 짐작이 갈 것이다.
어디서든 무엇이든 해야만이 성취감이 올라오는 유형이다. 채찍질하면 뒷걸음치고 박수치면 날아가는 성격이다. 내가 그렇다는 것이지 모든 ENFP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성향으로 사방팔방 뛰어다니다가 타의에 의해 집안에 갇히는 건 성에 안찼다. 이런 맘 상태로 주변을 둘러보니 다양한 일과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포진해있었다. 그렇게 집순이체질이 아닌데도 직장다닐 때는 일과 집외에 고정적으로 발을 디디는 곳은 교회밖에 없었다. 자아개발을 앞세워 나 좋다고 그럴싸한 취미생활이나 동호회활동을 하기엔 워킹맘의 시간은 빠듯했다.
실직이 기회인가?
드디어 살며 한번쯤은 해봐야지 싶었던 취미반에 발을 뒤뎠다.
그림, 글쓰기, 도예, 공예...... 모두가 선망하는 취미들이었다. 하지만 수업이 시작되자 얼마못되어 흥미는 떨어지고 불온한 생각이 속을 뒤집어놓았다.
'저들은 언제 저렇게 자기만의 성을 구축했을까?' 강사라는 타이틀을 앞세워 강의를 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나와 그들의 삶을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맘에 무슨 수업이 제대로 되었겠나. 새로운 취미활동은 갑작스러운 실직으로 우울감에 쩔은 나를 더 못나 보이게 했다.
자원봉사.
타고난 성향때문에 오래 우울감에 빠져있지도 못하던 나는 드디어 오랜 시간 의미있게 할 분야를 발견했다.
간호에 대한 지식, 오랜 직장생활에서의 노하우, 또래보다 빠른 IT활용능력, 안정적인 대인관계스킬....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을 쏟아부을 곳으로 자원봉사가 가장 적합하다고 결론내렸다.
학교, 지역사회, 공공기관, 사회복지기관 등 자원봉사를 구하는 곳에 신청서를 냈다. 아마 아주 많은 곳에서 나와 같은 인재를 필요로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이가 없다. 세상엔 나와 같은,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자원봉사에겐 그렇게 탁월한 능력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처음엔 생각지 못했다. 그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던진 자원봉사 출사표는 기대에 못미친 활동으로 김이 샜다.
걸으면서 쓰레기 줍기, 불우이웃을 위한 반찬만들기, 복지관에서 식사준비하고 대접하기, 어머니방범활동, 학교독서활동인도하기..... 그저 도우려는 마음이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학교에서 하는 독서활동인도는 보람있었다. 까만 아이들 눈동자를 바라보며 그들의 눈높이에서 책이야기를 나눌 때면 마치 내가 독서선생이 된 기분이었다. 내가 찾던 자원봉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이들이 졸업하며 그것도 끝이 났다.
자원봉사가 나를 의미있게 해주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건 봉사하러간 장소에서 친구를 만나면서 깨달았다.그곳은 그녀의 직장이었다. 뒤늦게 상담학 공부를 해서 공공기관에 취직을 한 이였다. 그녀의 일도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었다. 봉사하러왔다며 어설프게 인사를 건넸지만 몹시 어색했다. 난 그제서야 알았다.
'아~ 나는 봉사가 주가 아니라 일이 주인 사람이구나'
봉사를 일로 하는 것과 봉사를 일이 아닌 순수한 봉사로 하는 것은 내겐 완전히 다른 의미였다. 나는 칭찬을 매개로 하염없이 누군가가 부르면 달려가는 유형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철저히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인간이었다. 그래서 자원봉사가 아닌 근로를 해야하는 것이었다.
동네에 광고가 붙었다. 공공근로가 아니라 재산을 따지지 않고 환경지킴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뽑는다고. 최저시급을 준댄다. '아~ 드디어 돈을 버는 일을 해보는구나!' 아침에 2시간 동네를 돌며 환경지킴이 활동을 하면된다하여 덜컥 질렀다. 자원봉사라면 안했을 것이다. 그렇게 안해도 알아서 할거니깐! 그런데 돈을 준다고 하니 앞도 뒤도 재지 않고 신청했다.
요즘은 매일 아침 9시에 검은 봉지에 집게를 들고 동네 한바퀴를 돈다.
이웃들은 묻는다. 자원봉사하냐고? 처음엔 긴 설명하기 성가스러워 씩 웃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지만 이젠 일한다고 당당히 말한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자원봉사로 동네 청소하는 것과 근로활동으로 동네 청소하는 것은 무슨 차이가 있냐구?
당연 차이가 있다.
난 내가 받은 보수에 최대한 부응해주려고 애쓴다.
아무것도 받은 것 없지만 내 맘에 부응해 일을 하던 자원봉사때와는 마음가짐이 다르다.
10여년을 산 동네지만 가본 곳보다 안가본 곳이 더 많다는 것을 요즘에야 알았다. 구석구석 숨겨진 쓰레기가 그렇게 많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다. 죽어가는 나무, 쓰러진 꽃들이 눈에 밟히는 것도 신기할 정도다. 동네 산책하는 사람, 개들이 다 눈에 들어온다.
고작 최저시급을 받는 일이지만 나에게 근로활동은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 동네를 더 사랑하고 사람을 더 챙기게 하는 이상한 나라로 인도했다.
자원봉사보다 최저시급이라도 근로활동하는 내가 행복하다.
물론 자원봉사도 즐겁다. 내가 건강해서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복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