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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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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 Nov 05. 2018

<나의 보리>

epi 21_마법의 사과상자.





지난주에

사과박스 하나가 도착했다.


무엇이 그리도 가득 들었는지

이미 이 사과박스의 포장상태는 빵빵했다.




외가, 친가..대부분의 친척들이 모두 지방 각지에 살기에 

때마다 그들에게서 농산물들이 솔찬히 배달되 오곤 한다.

그중에서도

외할미는 때마다 항상 "무언가들을' 보내주신다.





오픈~


박스를 열자마자 삭~풍기던 할미네 냉장고 냄새..

그 안에는..

우아~~

이게 다 뭐야~~

테트리스 조각들을 아주 잘 끼워 맞추듯, 빼곡하게 꽉~차있던 외할미의 사과박스.


우아...


나의 보리와 나는 부엌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서 본격적으로 상자 펴보기를 시작한다.


"우앗~!!!! 보리야, 이거 바바! 너의 엉덩이를 꼭 닮은 대왕 고구마야~~~~"


"...ㅁㅊ....."


바스락바스락

주섬주섬.



"우아~~~!!! 보리야 이거 바바~~~!! 왠지 너랑 표정이 닮지 않았니...? (혼자 신나서)

이 대왕 호박 여기여기 모양이  눈이랑 코가 있는 거 같아~~~"


"........"



바스락바스락

주섬주섬..


"우악~~!!!!! 보리야!!!!!

요번엔 대추야~~~~~

세상에 

너무나 귀엽지 않아?~~~ 향기도 엄~청좋아~~~~~~어렸을때 너 대추 통째로 먹다가 목에 걸려서 숨못쉬고 

큰일 날뻔했잖아~~~ 내가 입으로 손 넣어서 씨앗 빼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어~~..."


"......"


박스 오픈하고 나서 

나는 신이 나서 혼자 떠들고 웃고 혼자 얘기하고 웃고,나의 보리에게 끝없이 대화를 시도한다.



"........"

허나,

나의 보리는 나의 이 기쁨 섞인 일인극 따위는 아랑곳 않고

자기 볼일이 있는 곳으로,

 상자로 어슬렁어슬렁 다가가



에잇.

자기 몸 사이즈만 한 그 큰 배추를 야무지게 꼬집어 뜯어먹기 시작한다...

아그작 아그작~~


!!!!!!!!

'누나 마이쎠!! 마이쎠~'


.......

흙도 털지 않은 ,이 생 배추를,,, 이렇게 맛있는 소리를 내며 씹어먹는 너에게 나는 아연실색.



'하아~ 과연 나의 보리올소이다.~'


너는 아그작 아그작~


나는 주섬주섬,바스락 바스락.



그러다가 

상자 안에 든 것을 거의 다 꺼내어 볼 때쯤.


앗!!! 

이것은!!!!


이것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외할미 표 찐빵'!!

끼아~~~~~


어릴 때부터 외할미는 이거며 저거며 먹을 것을 다 만들어 주셨고.

나는 외할미 표 음식은 반찬이며 김치며 다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할미가 만드신 빵 과 떡을 특히나 좋아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바로 요 찐빵.


"보리야!!!!! 이게 뭔지 알아??! 이거 이거.. 이거  진~~짜 맛있는 거야~"


(아그작 아그작 ,,, 배추 씹는 소리가 그렇게 맛있을 수 없다...)



너는 배추 먹으니까

이건 나만 먹어야지

몇 개 없잖아


하고 욕심을 부려본다..


잠이깨고 눈이 번쩍 뜨이는 맛.






가을 한가운데서 보내온 

이 사과 상자에는 

할머니의 가을 무리가 가득 담겨있다.


나참..

매년 매계절마다 할미한테 쭉 당연하게 받고 있지만.

조금 나이가 들고 보니말이다..

감사한 마음 위에 조금은 다른 마음이 겹쳐 든다.

음... 그 '조금은'을 지금으로썬 잘 설명할 수 없지만....

먹다가 기어코 썩어버려 버린 과거 사과박스에서..

하나도 버리지 말고 하나하나 야무지게 꼭꼭 씹어먹어야지..사과박스로 바뀐,,,느낌적 느낌이랄까...



나의보리 엉덩이를 닮은 고구마는 매일 아침마다 쪄먹고 있고,

찐빵은 택배 받던날, 진즉에 다 먹어버렸고,

대추는 작업하면서 하나씩 간식으로 먹고 있다.

배추는 겉잎은 나의보리가 먹었고, 속은 쌈을 싸 먹자.

살짝 군둑내 나는 할미 표 간장은 이 음식 저 음식에 너무나도 잘 먹고 있다.

그리고 

저 눈코입 달린 대왕 호박은....

그래  오늘 저녁에 호박 수프로 만들어먹어야지~








_ 할미덕에 저는 풍요로운 가을을 지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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