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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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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 Feb 11. 2019

< 나의 보리 >

epi. 27 나 홀로 집에





나는 밖에 나가는 일 보다 

집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월등히 많은 사람이지만.


요즘 들어 회의가 많아지는 바람에

오전부터 집을 비우는 일이 종종 생기고 있다.

그 말은.

나의 보리는 

본의 아니게 저 홀로 집을 지키는 날이 예전보다 많아졌다는 것이다.





나의 보리를 뒤로 하고 현관문을 나설 때면..

음..

뭐랄까..

난 아이가 없지만, 

아침에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는 엄마들의 마음이 이런 종류의 마음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곤 한다.


아주 중요한 무언가가 날 따라오지 못하고 외딴곳에 갇혀있는 답답한 느낌도 들고,

내 뒤에서 우는 소리도 가끔 들리는 거 같기도 하고,,

그렇게 마음이 찡~~ 한 상태로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의 보리는 

내가 나가고, 현관문이 닫히면.


내 발자국 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기다렸다는듯

"드디어 나갔구나..

주인 여자가 당최 밖엘 나가 질 않으니, 아주 죽겠구먼,

여러 번 오는 기회가 아니니 얼른 시작해 보실까."

결심한 듯. 그대로

일어나


나의 보리만의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먼저 

부엌으로 가서 

물을 끓이고

제 맘대로 냉장고를 열고는 

간식으로 맨날 줘서 꼴도 보기 싫은 맛도 없는 양배추 위에 침 한번 뱉고,

평소 엄청 먹고 싶으나 주인 여자는 절대 주지 않는 각종 소세지를 찾는다.



'제가 커피를 참 좋아하는데요.'


인간은 커피를 인간만 좋아한다고 생각한다며

그것은 아주 큰 오산이지,,

커피 한 사발을 제 밥그릇에 따른다.


한잔 쭉 드링킹 하고 나서.


과자 한 봉지를 들고 거실로 나온다.

아부지가 늘 앉는 자세로 앉아서 티브이를 켠다.

과자 한 봉지 정도 없어져도

주인 여자와 그의 동생은 간식이 없어지면 서로를 의심하기 때문에 괜찮다.


그러다 밖에 들려오는 작은 소리, 큰소리에 맞춰

누구 눈치 볼 것 없이 

한곡 시~원하게 씽어쏭~


이얏호~

'누나(주인 여자) 침대에 올라가야지~'


매트리스 위에서

점핑 점핑하다가

너무 신나서 그만 저도 모르는 사이에

쉬야를 하고는 

나는 모르오~

나는 모르는 일이요~

내 책도 보고 벽에 걸린 그림도 감상하다가


창밖을 보며

아까 먹다 남은 

과자를 마저 씹을지도 모른다.



...

는 그런 _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마음을 가볍게 만든 뒤


세상 편해진 마음으로

나는 버스를 타고 회의를 하고,

나간 김에 친구도 만나고

커피도 마시고, 은행 볼일도 보고

내 볼일을 모두 천천히 본 뒤 

어둑어둑해져서 귀가했다.


'찰칵'


문 열고 들어온 집안은 조용__.

아직 가족중 누구도 귀가하지 않았나 보다..

온 가족이 다 늦은 날.


보통은 온 가족의 제각각 다른 발자국 소리를 알아듣고 

문 열기 전부터 현관 앞에서 팔짝팔짝 뛰고 꼬리를 흔들 나의 보리가 보이지 않았다.


"보리야~ 누나 왔어~"


아차차,,,

아침에 나갈 때, 나는 해가 진 뒤에 들어올지 몰랐다..

해서 스탠드를 하나도 켜놓고 나가지 않았다..


온 집안이 한밤중처럼 깜깜했다...

내 마음에 

소리도 빛도 없는 깜깜한 미안함이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보글보글 목구멍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보리야~~~ 누나 왔어~~"


나의 보리는 안방에 깔아놓은 이불 위에서 

온종일 자고 있었던 듯싶다.


하루 종일 잠을 너무 자서 잠에 취해

눈꺼풀까지 부은 얼굴로 

이불 위에 앉아있는 나의 보리를 보니,

"미안해~~"


집을 나설 때 내 마음 편하려고 했던 상상 속의,,,

상상 속에선 누구 눈치 안 보고 

하루 종일 저 혼자 신나게 놀았던 상상 속 보리와 너무도 달라,

온종일 잠만 잤을 

진짜 나의 보리가 바보같이 보였다.




실제는 그랬을 것이다.


내가 현관문을 나서고 나면

나의 보리는

그저

뒤돌아서서는 


몸을 따뜻하게 해 줄 이불을 찾아

아무도 없는 안방에 들어와

내가,.. 가족 중 누군가 올 때까지 

깜깜한 집에서 

잠을 잤던 것.



그날 나의 보리의 하루는 

쭉 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온 집안에 불을 켜고 티비를 켜놓고

샤워를 하고 나와 

소파에 나의 보리와 함께 앉았다.

다시 초롱초롱해진 두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나의 보리의 눈에서는

"어디 나갔다 왔어? 언제?"라고 

아예 하루가 없었던 듯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해맑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데



나는 나의 보리를 안아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사랑한다.


많이.











_어둠 속에서 밥은 다 먹었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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