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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보리

< 나의 보리 >

epi. 30 말하는 엉덩이

by choi Boram





늦은 밤부터 머리가 심하게 아파 밤새 잠을 자지 못하다 새벽에 잠깐 잠이 들었다.


_

내 머릿속에는 물뱀이 산다.


이 물뱀의 정체는 아주 고질적인 편두통.

14살 때부터 이제껏 쭉 나를 괴롭혀온, 아주 고약한 녀석으로


혹자는 세상이 깨지는 것 같다고 하기도 하고,

이글거리는 무언가가 눈앞에 보이는 것 같다고 하기도 한다.

증상은 다양하게 표현되어진다.

나를 퍽퍽 쉽게도 쓰러뜨리는 이런 유의 고통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게 익숙한것으로..

이 물뱀은 슥! 하고 나타나 영원히 지속될 거 같은 고통으로 쾅!하고 나를 쓰러뜨려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지만

보통 6~8시간 정도 견디면 쿨하게 없어져서

언제 아팠냐는 듯

나는 괜찮아지곤 한다.


_어쨌든.

메슥거리고 뜯겨져 나갈거 같은 늦은 밤중을 견뎌

새벽 즈음에 잠시 잠이 들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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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즈음에 나는 다시 잠에서 깼다.

시야에 들어온 아주 익숙한 오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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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문질문질 해도 질리지 않는 덩어리에

좋은 아침이라고 말하고 있는 궁둥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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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법 굿모닝 할 수 있을 듯하다.


같이 살며 각자 다른 아침을. 다른 삶을 살며 매일 함께 사는 우리 가족은.

아버지와 동생은 아주 이른 아침 출근하기 때문에

우리 집은 이른 새벽 밥 냄새로 가득했다.


갓 지어진 밥 냄새와 너의 엉덩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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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더 잘 수 있을 거 같아. 이 모든 게 너무 안심돼.


불안과 조급이라는 단 하나의 담요를 요리 덮고 조리 덮고 뒤집어 덮고 하며 지내는 나에게

안심이란 단어는 참으로 부질없이 느껴지지만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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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 이제 살겠다~나 이제 정말 괜찮아진 거 같아.'

나의 보리가 내 팔에 턱을 걸쳤을 때 나는 내 뇌에 말을 걸어 본다.


집 밖에서 아마도 일찍 출근하는 다른 이웃들이 출근하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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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첩하고 용맹한 나의 보리는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는다.

나의 보리 무게로 삐리 삐리 저리기 시작한 나의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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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바로 자신의 용맹함을 뽐낼 때.

표적은 아주 작은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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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하기까지한 그 소리에

뒷다리는 힘 있게 쭉 뻗어 온 엉덩이가 이미 그는 화났음을,전투할수있음을 말해준다.

엉덩이에서 눈코 입이 보이는 것 같은 기분. 느낌적인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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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보리 엉덩이를 달래 본다.

"괜찮아~~ 아이고 아침부터 씩씩하기도 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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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수긍.



출근 준비를 마친 동생이 집을 나서기 전, 나의 보리에게 인사하러 내 방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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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새 잠이 들었던지

동생의 손길에 나의 보리는 많이 놀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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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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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알겠다.


정답!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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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잠깐 들어와 있는 동안

나는 동생의 아무 의미없는 부러움을 사고 싶어서 자는 척을 했다.

나의 동생은 나는 거들떠도 안 보고 나갔고.

에헴~

'잘 다녀와 동생~오늘 하루 수고해~'

마음속으로 말해본다.



자! 우리도 일어나서 아침 먹자.

오늘 아침은 든든하게 먹는 편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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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보리의 배꼽시계는 나의 반복적인 행동에 반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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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를 춤추게 한다.

그래~맞아~ 아침밥은 좋은 거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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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좋구나.

오늘은 많이 든든하게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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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하게~


해피함이 느껴지는 엉덩이를 보며

나도 쌀밥을 먹는다.




_안 아플 수 없어 괴로운 상황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면..

안아픈 날을 몇 배로 더 더 많이 좋아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게 참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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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무엇이 똑같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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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같은 엉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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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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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내눈엔







_너는 귀여운 핑크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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