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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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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 Mar 20. 2019

< 나의 보리 >

epi. 32 모두가 존귀한





봄기운이 완연한 주말.


오랜만에 대기상태가 '양호'를 나타냈고, 왠지 모르게 조금 신이 났다.

오후의 길을 나의 보리와 동행하기로 한다.

지난가을 공사 중이었던

집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산책로가 어느새 새로운 모습으로 자릴 지키고 있었다.

깨끗하게 깔끔하게 단장된 산책로에 기분이 좋아, 우리 주위로 경쾌함이 떠도는 듯하다..



새잎이 준비 중인 나무들. 새싹이 드문드문 보이긴 하나 갈색으로 보이는 풀밭.

몇 날 며칠을 얼어있던 것 같은 벤치. 엉덩이로 전해오는 각목의 차가움.

그렇다.

아직, 추위에 익숙하다.

그러해도

우리 주의에 둥둥 떠도는 경쾌함은 사라지지 않아 약간의 싸늘함은 상쾌함 정도로 느껴지는 그런 주말의 오후였다.



주말의 산책로는 평일에 비해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나의 보리와 나는 한동안 사람 구경을 하기로 한다.

얼마간 앉아있었더니 벤치는 내 엉덩이 때문에 따뜻해졌다.


이 사람 저 사람, 중간중간 내 눈에 주기적으로 보이던

러닝 중이던 아저씨.

몇 바퀴채. 몇 번이고 눈이 마주쳤다.


눈인사를 하려 싱긋 웃는데

아저씨 왈.

"아이고

개가 뚱뚱하니 베겟자루같네..등위에서 화투 쳐도 되겄어~ㅉ"


우리 주위를 떠돌던 경쾌한 기운은 마치 바람 앞의 비눗방울과 같이 팡팡 터지고,

왓?!!!!

베개.... 화투? 왓~?!


다시 러닝의 세계로 몰입한 그.

우씨..

뚱뚱한 거 안다 뭐~그래도 많이 빠진 거다뭐.....



물론 뚱뚱한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생전 모르는 사람에게 외모를 디스 당해본 적 있는가.

화가 나지만 화내면, 화냄으로써 더 지는 것 같은 기분에, 몹쓸 주인이 된 것 같은 기분..

에이! 악의 없는 말이었는데 뭘 그런 말에 신경 써,

금방 털어 버리고

그 기운으로 다시 걸어보기로 한다.

몇 바퀴 걸었더니 기분이 다시 상쾌해진 것 같다. 아까만 못하지만.

_난 뒤끝이 길어.

그렇게 0.2% 정도의 몹쓸 기분을 안고 산책하는 와중에.

설마..

<와다다다다다다> 효과음이 있다면 그 소리가 보이는 것만 같이.

저 멀리서 꼬마 하나가 와다다다다 뛰어오는 중.

설마..


아니 방향이 우린데?

...

어서 대비를 해야 해!!_순간 나의 세포가 소릴 질렀다.

얍!!!!


나의 보리의 목줄을 재빠르게 짧게 잡는 사이..

러블리 핑크 꼬마는

어디서 가지고 왔는지 대충 알겠을 낙엽과 돌멩이를

마치 어느 곳 파티의 반짝이 가루 던지듯 나의 보리를 향해 던졌다.


놀래기도 놀랬거니와 눈 깜짝할 사이에 돌까지 맞게 된 나의 보리는 심기가 '몹시' 불편해졌고.

나의 보리 입장에서 부적절할 때.

정말 예상했던 그대로의 장면이 순식간에 펼쳐졌다.

그리고 그다음 장면 또한 역시 예상한 장면으로 이어졌다.


으르렁 소리에 울먹이는 핑크 꼬마.


꼬마가 생각했던 멍멍이의 반응이 아니었으리라.

개의 으르렁 거리는 모습과 소리에 놀랐으리라.

보통은 놀람과 서운함에 이렇게 울기 마련이다.


해서 나는 산책 중에 노인들과 아이들 앞을, 옆을 지나갈 때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인데....

(이런 류의 이야기는 나 스스로 변명이 길다.)

이렇게, 나도 놀랄 정도로 갑자기 튀어나온 경우를 제외하곤..

친구야 많이 놀랐지~

나의 보리도 놀라서 그랬을 거야~나쁜 친구가 아니야~괜찮아 아무것도 위험하지 않아~괜찮아~~

멍멍이가 좋아서 온 건데 놀랐겠구나~~~~

자~괜찮아 봐~이젠 으르렁 안거리고 다시 사랑스러운 모습이지?~



라고 많은 말이 떠올랐지만

당황스러워 미안해 미안해만 반복하는 나였다.


사실 퓨어한 미안한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가 놀래서 우는 그 마음엔 다른 종류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니까 그럴 수 있다. 아이니까 낙엽과 돌멩이를 파티용 반짝이처럼 뿌릴 수 있다.

분명 나의 보리가 반가워서 멍멍이가 좋아서 달려왔을 텐데.

아이의 마음에 어찌 됐건 으르렁으로 답한 꼴이니 그 자체만으론 안쓰럽고 많이 미안했다.


그런 마음을 담은'미안해'


핑크 꼬마의 엄마가 저 뒤에서 허둥지둥 뛰어온다

그동안 어디 있었는지.

꽥!꽥! 꽥!!! 꽥~꽥~!! 꾁!!

(are you a duck?)


아이의 우는 모습만(이미 그친 상태) 눈에 들어온 핑크 꼬마의 어린 보호자는

다짜고짜 화를 퍼부었고,

계속되는 화와 화를 퍼부었다.


졸지에 애견인의 대표가 되어 모든 애견인을 욕 먹이는 꼴이 되었다.

멍~

아 뭐지.이 기분

똥물을 뒤집어쓴 기분인데..


악마의 사령들이 내 머리 위에서 똥 비닐 흔들고 있는 기분이 드는걸.



유유히

봄날을 즐기고 있는 비둘기들.

똥 비닐을 뒤집어쓴 나와.

비둘기를 향해 달려가고 싶지만 내 다리안에 조신히 앉아있던 나의 보리.



<사정이 있을 텐데요.>


모든 사정을 무시한 일방적인 화는 어떤 모습인가.

남을 향한 비난의 말을 농담 식으로 하는 그 무신경함은 공기 중에 어떻게 작용할까.


이걸 쓰고 있는 나 본인도 엄청난 무신경함과 일방적임이 몸에 배어있다.

이 글 역시 내 마음 위주로 썼으므로 왜곡되었을지도.

내앞에서 소릴질러대던 오리같던 그 어린 보호자도 분명 사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부드럽지 못하고 예민한 개도 있답니다_그렇다고 그 모든 개가 사람을 물거나 못되게 굴지 않아요.>

나도 부드럽지 못하고 아주 예민한 사람으로.


떠들기 좋아하는 개도 있고.

고독을 즐기는 개도 있을지도 몰라.

이 초록별 지구에 사는 모두가 각자의 성격이 있다.


나는 오늘 내 실수를 인정한다.

한 아이에게 멍멍이에 대한 엉뚱한 공포심을 심어줬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 어린 보호자는 귀하고 사랑스런 아이인 만큼,아이를 안고 가기 전에 제대로,

나와 다르게 생긴 귀한 생명에 대한 사랑의 표현 방법을 가르쳐야했다.



돌을 던지는 건 누구에게나 위험하잖아?







_짜증나던 귀가길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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