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뀔 수 없는,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억 [초단편 17]
드디어 손에 넣었다. 많은 희생과 비난을 감수하고 내 일생을 모두 갈아 넣은 이것을 마침내 탄생시켰다. 이것은 성공하든 실패하든 단 한 번 밖에 사용할 수 없다. 고농축 에너지원을 버틸 수 있는 출력 장치도 딱 한 명, 편도로 밖에 사용할 수 없는 에너지도 더는 구할 수 없는 자원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미 시간대와 장소는 설정해 뒀다. 모두의 염원을 담은 일생일대의 기회이지만 나는 나의 개인적인 목적으로 몰래 설정을 바꿔치기해 버렸다. 인류의 존망은 모르겠다. 난 그저 단 한 사람을 위해서 내 인생을 바쳤으니까.
여기인가. 젊은 날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내가 살던 때와는 많이 다른 모습의 거리는 낯설었다. 그러나 차츰 익숙해졌다. 혹시 모르기에 사전에 많은 조사를 해왔었다. 어색하게나마 기억을 더듬어서 목표물 근처로 이동할 수 있었다. 저기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두 사람이 보인다. 난 제한 시간 안에 저 두 사람의 만남을 저지해야 한다.
"저, 저기! 죄송한데 제가 급해서 그런데 길 좀 물어봐도 괜찮겠습니까?"
"네? 아, 제가 지금 약속이 있어서요."
"진짜, 진짜 제가 급해서요? 네? 인생일대의 일인데 늦으면 저 진짜 죽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급하게 끼어들어 붙잡는 데 성공했다. 우리의 대화가 들리지 않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는 벽에 기대어 시계만 바라보고 있다. 나는 몸을 틀어 그를 가리고 물었다. 여기를 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가야 하죠? 아, 조금 복잡한데... 저 죄송하지만 제가 길치이기도 한데 조금만 데려다주시면 안 되실까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임을 알기에 나는 밀어붙였다. 그렇게 점점 멀어지고 있다. 거리가 많이 떨어졌을 때 나는 생리적인 급한 신호의 낌새를 내비치며 내 물건을 맡기곤 사정을 했다. 제가 지금 화장실이 급해서요, 죄송한데 이것 좀 들고 기다려주시겠습니까?
그 사람을 세워두고 나는 달렸다. 늦어진 약속에 짜증을 내며 기다리고 있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말했다.
"OO 씨 맞으시죠? 오늘 소개받기로 한 OO입니다. 단독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제가 사실 남자친구가 있어요. 헤어졌다가 이번에 다시 잘해보기로 해서 죄송하지만 이번 소개는 없던 일로 부탁드립니다."
"네? 뭐라고요? 참나, 어이가 없네. 안 그래도 약속 시간도 한참 늦는 사람과는 잘해볼 생각이 없네요! 누군 만날 사람이 없는 줄 아나... 참나..."
구시렁대며 그는 떠나갔다. 크게 접점이 없는 두 사람은 이 정도면 된다. 그리고 또 다른 내가 선택한 완벽한 그에게 보내 둘을 이어주면 나의 할 일은 끝이다. 그 사람이 지금 기다리는 그곳에서 진정한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이것 봐, 지금 내 몸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게 그 증거이지 않은가. 이번엔 꼭 행복하시길...
***
갓 태어난 아기를 보는 산모의 눈에서는 환희의 눈물이 흘렀다. 점멸해 가는 기억 한 조각을 부여잡고 이 순간만큼을 간절히 오래도록 기다려온 그녀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웃었다. 아주 소중한 것을 잃었었다, 아주 소중한 것을 다시 찾았다. 뻥 뚫렸던 공허했던 그녀가 가득 찼다. 그녀는 아기를 향해 이마를 맞추며 속삭인다.
"찾았다, 나의 보물..."
타임루프물 소설을 한 번 써보고 싶었다. 드라마 《어쩌다 마주친 그대》 단편소설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웹툰 《레코닝》 등 타임루프 소재가 들어간 작품을 좋아한다. 이번 모임의 글감 「보물찾기」로 어떤 글을 써볼까 하다 생각난 캐릭터가 있었다. 초반 이 캐릭터의 등장까지만 봤던 네이버 19금 웹툰 미티 작가의 《한번 더 해요》 속 인물이다. 두 주인공들과 똑같이 기억을 가진채 과거로 돌아왔던 이 캐릭터는 처음에는 기뻐했으나 점차 자신의 아이가 보고 싶고 그리운 엄마의 마음이 작품 속 주인공들 이야기보다 뇌리에 더욱 강력하게 남았다. 나는 그 인물의 처절함을 생각하며 이 이야기를 써보았다. 나의 이야기 속 진 주인공은 그 사람, 산모 그녀이다.
칼 세이건은 저서 《코스모스》를 통해 '미래는 이미 현재의 인과 관계 안에 내포되어 있으며, 우주의 질서 속에서 사건의 선후는 뒤바뀌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나는 결국은 바뀌지 않을 과거이자 미래를 만들어 보았다. 하지만 그 속에 존재하는 과정에서는 인물들끼리의 유대를 더욱 끈끈하게 만든다. 결코 바뀌는 것은 있다. 이해와 사랑의 깊이이다.
글을 쓸 때 나는 작가의 의도, 생각할 수 있는 여운을 남기는 과정을 즐긴다. 의도와 목적을 가진 글쓰기를 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그것이 전달되기를 바라는 글쓰기를 이어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