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출 수 없는 비밀을 내 손으로 [초단편 15]
또다시 바이러스가 창궐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경험해 본 우리들은 이전과는 달리 큰 공포감에 휩쓸리진 않았다. 오히려 지루한 일상에 매일 확인할 뉴스거리가 생김을 즐기기까지 한다. 생필품으로 자리를 잡은 마스크는 여유로웠고, 시민들도 정부의 방침에 비교적 잘 따르는 듯했다. 이미 코로나 팬데믹 이후 바뀐 일상에서 조금 갑갑한 정도였고 앞으로 다가올 예상 가능한 경제적인 타격에 골머리를 앓을 뿐이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됨에 따라 10인 이상의 모임은 취소될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동창회가 열린다고 하여 몇 달 전부터 기대를 했었는데 불발이라니 이날을 위해 준비해 둔 옷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남자친구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는 나의 동창회 참석에 불만이 가득했었다. 몇 달을 가지 말라고 화도 내고 짜증도 내고 삐치는 둥 고집을 부렸었다. 나를 믿지 못하는 것이냐고 애먼 짓 하고 오는 것 아니다, 초등학교 베프였던 OO이가 참석 한다 해서 가는 거다, 연락하겠다 해도 막무가내였던 그였다. 취소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못 마땅했던 나와는 달리 여유로워진 남자친구는 나를 달래주기 시작했다. 우리 그날 맛있는 것 먹자, 배달 풀 코스로 즐기며 쌓아둔 영화나 보자.
카톡. 나의 기분을 풀어주던 남자친구가 자리를 잠깐 비웠을 때 카톡이 울렸다. 등록되지 않은 프로필이었다. 누구지? 이름으로 설정되지 않은 카톡 대화방을 열었다. 초등학교 동창의 연락이었다.
'안녕? 나, 오바람이야. 이번에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쉽게 동창회가 취소되어서 OO 이한테 네 번호 물어보고 연락한다. 잘 지냈니?'
남자친구가 그렇게 경계하던 동창 나의 첫사랑, 오바람의 카톡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자리를 비운 남자친구의 눈치를 보고 답을 했다. '안녕, 잘 지내고 있지! 넌?' 안부가 오고 가며 우리는 짧게 대화를 하다 어쩌다 보니 취소된 동창회 날 따로 만나기로 약속을 잡게 되었다. 나는 아무 일도 아닌 척 남자친구에게 그날 함께 하지 못함을 전했다. 초등학교 때 친했던 여자들 몇 명만 따로 만나기로 했어. 진짜야.
오랜만에 본 첫사랑과의 만남은 설레었다. 성인이 된 이후 만난 그는 더욱 매력적이었고 여자를 다정하게 리드하는 모습이 지금의 남자친구에게서 볼 수 없는 모습이어서 첫 연애 때의 두근거림이 다가와 황홀한 시간을 보냈었다. 잠깐의 일탈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와서는 남자친구에게 조금 더 잘해주었다. 그러고 며칠 후―
카톡. 자기야, 그날 동창들이랑 카페에서 만났다가 L 레스토랑으로 갔다 하지 않았어? 거기 확진자 나왔다고 하는데 날짜랑 동선이 자기랑 좀 겹치는 것 같아. 여기 확진자 동선 확인 해봐.
*** OOO구 13번 확진자 동선
0월 00일 ① L 커피숍
② I 레스토랑
③ E 모텔
이번 글감주제는 지난 일요일에 예고했던 대로 「윤리적 딜레마」를 가지고 초단편소설을 써보았다. 나의 또 다른 브런치북 연재 중인 『집책광공 사유독서』의 세 번째 책 김연수 X 히라노 게이치로 작가의 크로스 시리즈 《근접한 세계》를 읽고 두 작가 사이에 나 또한 참여해 본다. 이 글은 교보문고에서 진행하는 이벤트 '써드림 첨삭소 김연수 작가 편'에도 제출한 글이다. 과연 내 글이 뽑힐지 기대해 본다.
글감 주제 「윤리적 딜레마」로 어떤 내용을 쓰면 좋을지 고민을 하다 갑자기 코로나 확진자 동선이 생각이 났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써보기로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린 적도 없고, 주변에 확진자 동선이 퍼진 사례도 없었기에 자세한 묘사는 쓸 수 없었지만 나의 글은 초단편소설이니까 생략법과 빠른 전개로 숏폼의 한 형태의 숏글에 맞춰 글을 쓰게 되었다. 이럴 때 바람피우다 딱 걸린 주인공이 나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책을 읽고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쓴 글은 생각처럼 멋진 결과물로 나오지는 않으나 그건 당연한 것이다. 책은 프로 작가의 글이고, 나는 아마추어 작가의 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쓰기의 끈을 놓지 않고 계속 써보고 새로운 도전도 해보며 프로 작가 선배님들께 배워서 나의 것으로 만들어 나가면 어느 순간은 나만의 멋진 글이 완성될 것이다. 나는 그런 글쓰기를 지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