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ASMR”

케르베로스에게 먹히는 마법의 단어

by 최첨지

H가 가장 케르베로스다울 때는 언제일까. 첨지는 단연코 아침이라 말한다. 어떤 약물도, 심지어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아침. 순수 그 자체의 케르베로스는 가히 명작이다. 새벽녘부터 온 집안을 뛰어다니는 머리 세 개의 실루엣.. 전혀 동선을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 여기저기서 짧고 높게 울려 퍼지는 포효. 우리 집에 정말로 그리스의 옛 전설이 살아 숨 쉬는구나, 첨지는 단지 눈을 떴을 뿐인데 막연히 이것을 감당할 수 없겠다고 느낀다. 오늘은 그냥 집에서 쉴까? 잠시 고민하지만, 그래도 그러면 안 된다. 저 신화 속 인물에게 루틴을 가르쳐야 한다. 정신을 차리고 휴대폰을 보면 시간은 어느새 8시. 자칫하면 지각이다. 순교자의 마음으로 거실에 나선다. 첨지를 발견한 H가 가장 큰 데시벨로 외친다. “엄마!!!! 나 새벽 6시에 일어났다!!!!”


어.. 그래 축하한다.. 하지만 넌 지금 등교를 위한 그 어떤 준비도 하지 않았잖니.. 자, 이제 고개를 돌려 화장실로 향하자꾸나. 보아라, 이것이 칫솔이라는 것이다. 왼손에 들린 것은 치약이란다. 둘을 잘 활용하여 치카치카를 하는 것이 이 순간 너의 임무다. 가능하면 소변도 보고, 세수도 해보렴. 제발 머리는 감지 마라. 샤워도 안 된다. 긴말을 쏟아내고 화장실 문을 나서는 첨지, 아차! 타이머를 놓고 나왔어야 하는데! 10분을 설정한 타이머를 들고 다시 화장실로 향하는 순간, 첨지는 발견한다. 샤워 중인 H를.


어영부영 씻기고, 말리고, 입히고, 먹이고, 약까지 먹였다. 이제 고지가 코 앞이다. 엘리베이터를 잘 타고 내려가서 학교까지 곧장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아직 약효가 돌지 않았다. H는 여전히 케르베로스다. 왼쪽 방향에서 책을 읽는 줄 알았는데, 오른쪽 방향에서 뭔가 쏟아지는 소리가 난다. 가방을 메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탈탈 털고 있는 H. 가방 정리는 어젯밤에 했어야지! 첨지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케르베로스의 반격도 시작이다. 입이 세 개라 사운드가 웅장하다. “엄마는!!! 모르잖아!!! 어제 숙제 있었는데 안 했다고!!! 지금 해야 한다고!!!!”


숙제..? 이미 늦었다. 너의 할 일은 지금부터 등교다. 학교 가는 길에 약효가 들테니, 그때부터 숙제에 대한 고민은 오롯이 너 혼자 안고 가거라. 그리고.. 그리고.. 소리 지르지 마라고 했을텐데!!!!!


첨지는 그동안 무수히 H에게 ‘소리’에 대해 일러왔다. 목청이 세 개인 덕분에 어딜가나 주목받던 H였다. 케르베로스에게 목청을 줄이라는 요청은 하나 마나다. 첨지는 전문가에게 조언을 얻었다. 0부터 5까지 단계별로 소리를 설정해놓으라고 했다. 0단계는 도서관에서 소근대는 소리, 1~2단계는 집에서 일상 대화를 나누는 소리, 3~4단계는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피구할 때 내는 소리, 5단계는 긴급상황 시 구조를 요청하는 큰소리였다. “여긴 집이니까 1단계로 말하자.”고 백 번 정도 말했다. 실패했다. 특히 첨지가 걱정하는 것은 엘리베이터 안이었다. 약효가 없는 아침 시간, 등교와 출근으로 늘 비좁은 그 공간에서 H 혼자 힘을 주어 외치고 있었다. “아~ 학교 가기 싫다!!!!” 첨지는 아파트에서 쥐구멍을 찾았다. 제길, 신축이었다.


그런 첨지에게 희망을 안겨준 것은 뜻밖에 ‘유튜브’였다. 눈도 6개인 케르베로스에게 늘 경계하라 일렀던 그 유튜브. 쓰레기 영상이 잔뜩 모여있는 그곳에는 얼씬도 하지말라 일렀거늘. 늘 유튜브에 빠져있는 건 첨지였고. H도 그런 첨지를 따라 유튜브를 하루에 한 시간씩 꼬박 봐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 그 영상이 있었다. ‘ASMR’


“엄마!!! 내가 말하는 거 잘 들어봐라!!!! ..... H의 ASMR... 시작합니다.... 제가 아침 먹는 소리... 들어보실래요....” 미친... 첨지는 욕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전문가가 하라는 대로 해도 들어먹질 않더니, 유튜버가 나와서 ASMR 한번 해줬다고 케르베로스가 이렇게 조용하게 말한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유튜브는 쓰레기 집합소가 아니다. 지금부터 교습소다. 우리 집 케르베로스가 작게 말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창립자들이여, 어디 계십니까? 제 절 받으셔야죠...


이제 첨지는 길게 말하지 않는다. 아침에 울부짖는 케르베로스를 발견하면 딱 한 마디 한다. “지금부터 ASMR” 마법의 문장에 H는 조용히 등교한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H는 학교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그저 속으로 ‘ASMR 유튜브’를 찍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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