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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담 Jul 04. 2024

시골생활은 오감을 깨우는 일

시골에서 본전 뽑기

시골에서 알람은 안과 밖에서 울리는 모든 소리다. 자연이 내는 소리를 감각으로 듣고 일어난다. 이런 소리와 부름을 무시하고 늦잠을 자면 몸이 위축되고 행동이 굼뜨게 된다.


시골에서는 눈을 감고 봐야 더 많이 보인다.

시골생활은 우리의 잠자고 있던 감각들을 깨우는 일이다. 살아보니 알게 되고 살다 보니 배우게 됐다.

눈으로 듣고 코로 맛을 느낀다. 귀로 보고 혀로 냄새를 맡는다. 몸은 있는 그대로가 아닌 상황과 변화에 맞춰 감지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감각이 다르게 열렸을 때 시골 생활은 무한의 가치로 다가온다.


직박구리 한 쌍이 알을 낳고 안절부절못하다. 맞춤한 곳에 둥지를 틀었지만 안심할 수 없다. 연약한 생명일수록 종족보존의 의지와 욕망은 강하다. 부화하기까지의 시간은 험난하다. 사방이 적이고 장애물이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부화를 위해 헌신하는 새의 몸부림이 보인다. 새의 움직임에서 상황이 느껴진다. 새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것임을 세찬 장맛비가 내리는 지금, 보고 있다.


바람을 좋아한다. 바람이 불어오면 눈을 감는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의 소리를 듣고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몸 안으로 들어온 바람은 잠자고 있는 세포를 깨운다. 바람의 냄새를 맡으며 바람의 시작과 끝을 감지한다. 바람의 냄새는 많은 사연을 담고 있다. 바람이 전해 오는 이야기를 듣는다. 바람에 묻어오는 사연 따라 마음도 울렁인다. 바람을 한 움큼 움켜쥔다.


눈 감으면 들리는 소리는 한순간도 같지 않다. 숨을 들이쉬면 흙과 나무와 작물이 뿜어내는 각각의 향이 날씨와 시간에 따라 다르게 풍겨온다. 어떤 감각으로 받아들여도 정답은 없다. 다르게 보고 듣고 느끼며 말하는 게 중요하다. 제멋대로 판단하고 생각하며 채워 나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전국이 장마권에 접어들었다. 오늘 아침 알람은 세찬 빗소리다. 시골에서 비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한 해 농사를 좌우하는 힘이 있다. 농부의 하루 일과를 쥐락펴락한다. 지형을 변화시키며 물줄기를 바꿔 놓는다. 빗소리를 들으며 비의 양과 지속을 가늠한다. 비를 예측하려 하늘을 본다. 구름의 무게와 흐름, 색깔과 농도를 살핀다. 오랜 시간 노동으로 이골이 난 농부는 몸의 감각으로 비 소식을 전한다. 시골에서 일기예보는 자연이 보여주는 흐름으로 예측된다.


비에 흠뻑 젖은 개구리울음소리가 들린다. 미쳐 둥지를 찾지 못한 새의 당황한 목소리도 들린다. 비에 젖어 생기를 찾고 존재를 뽐내는 작물은 마냥 싱그럽고 풋풋하다. 비가 갈라놓은 생의 단면들은 제각각의 몫으로 살길을 찾아 나선다. 나는 비를 핑계 삼아 게으름을 피운다. 


시골생활은 발견의 시간들이다. 보이는 소리, 들리는 맛, 향기로운 모습, 느껴지는 풍경을 제대로 맛보는 순간들이 필요하다. 무궁한 시간 속에 무한한 가치와 변화를 알기 위해 오감을 깨워야 한다. 인지하고 자극해야 한다. 오감은 의식하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시골에서는 하루에 몇 분씩 눈을 감고 있어야 한다. 눈을 뜨고 느끼는 오감과 눈을 감고 마주하는 오감의 차이는 비교 불가다.

서 있는 자리에서 보이는 대로가 아닌 깨어 있는 감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우리의 시간은 깊어지고 채워진다.


시골생활에서 본전을 뽑으려면 깨어 있는 오감으로 존재할 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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