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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택배로 왔다

by 최담

전화가 왔다. "이것저것 좀 싸서 보냈다. 근디 묵을만한 것이 있을랑가 모르것다." 다음날, 택배가 도착했다. 묵직하다. 꽁꽁 싸맨 마음이 배달됐다. 언제부턴가 고향에서 온 택배 박스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챙겨둔 것이 더 있었는디 깜빡하고 못 넣었다'며 또 전화하신다. 마음만큼 많이 보내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다. 꾹꾹 눌러 겹겹이 쌓인 사랑과 안부가 담긴 포장을 뜯는다. 정겨운 고향의 산과 들이 들어있다. 논과 밭과 나무도 담겨 있다. 빈틈 사이로 바람을 타고 다정한 내음이 묻어왔다.

배추김치를 꺼내 본다. 마을 회관 앞 양지바른 밭에서 자란 배추다. 적당한 크기로 맞춤한 곳에 자리한 배추밭은 야무지고 기름진 땅이다. 굽은 손과 휘어진 허리를 부여잡고 길러낸 배추 한 포기 한 포기가 오뉴월 뙤약볕 아래 따서 말리고 빻아 놓았던 고춧가루 양념에 버무려졌다. 김치 한 가닥 쭈욱 찢어 먹을 때마다 저절로 눈은 감기고 마음은 어느새 고향 집 어귀에 닿아있다. 어릴 적 맛보았던 어머니의 김치 맛은 곁을 떠난 지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그대로다. 언제부턴가 어머니는 김치를 버무리실 때 그 속에 오묘한 맛을 내는 양념 몇 개를 더 넣으셨다. 남녘의 싱그러운 햇살과 살랑이는 바람도 들어가고 이웃 아주머니의 구수한 사투리도 뒤섞여 있다. 끼니마다 고향에 간 듯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뚜껑이 빨간 투명 원형통에 토하젓이 들어 있다. 토하젓은 밥도둑이다. 갓 지은 밥에 살짝 넣어 비벼 먹으면 맛이 일품이다. 톡톡 씹히는 토하에서는 고소하면서도 향긋한 흙 내음이 느껴진다. 토하는 마을 앞을 흐르는 냇가에서 잡으셨다. 토하는 1 급수의 맑은 물에서만 산다. 아직 오염되지 않은 고향의 물이 토하를 길러냈다. 오다가다 목마를 때면 벌컥벌컥 마시던 냇가의 물이 여전히 그대로의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놀라운 일이다. 물놀이하고 고기 잡던 그 시절의 동무들은 소식이 감감해도 고향의 시냇물은 여전히 그때의 순수와 배려를 간직하며 흐르고 있다.


쑥떡이 포장되어 왔다. 향긋한 쑥 내음이 사방에 퍼진다. 함께 씹히는 쌀알이 쑥떡의 맛을 배가 시킨다. 요즘은 농약과 제초제를 많이 뿌려 먹을 수 있는 쑥을 캐기가 싶지 않다. 어느 청정한 언덕배기에서 나온 쑥일까? 가만히 그려 보았다. 산 밑으로 돌아나가는 좁은 길가에 쑥이 많았다. 그곳이라면 여전히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쑥이 지천으로 널려 있을 것이다. 떡은 고향을 지키고 있는 후배가 운영하는 옆 동네 방앗간에서 만들었다. 꽤 많은 양의 쑥떡은 낱개로 포장하여 냉동실에 넣어 둔다. 일하다 허기질 때 간식으로 먹기 딱 좋다. 흔하지만 몸에 좋은 쑥을 캐러 다니던 때가 떠오른다. 소쿠리에 수북이 캐온 쑥으로 끓여 주신 된장국은 맛과 영양에서 최고였다.


택배 기사분이 묵직한 쌀 포대를 내려놓는다. 현미와 백미가 왔다. 요즘 고향 마을의 논들은 거의 묘목을 생산하는 밭으로 변했다. 벼농사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도 논을 팔거나 임대를 놓으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아버지는 꿈쩍도 안 하셨다. 그 논에서 친환경 우렁이 농법으로 안전하고 맛있는 쌀을 생산하신다. 객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쌀을 보내기 위해서다. 한 끼도 거르지 않고 밥을 먹어 쌀이 금방 떨어지지만 아버지 덕분에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다. 들에 나가는 것도 버거워지는 몸뚱이라며 한탄하시는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자주 들려온다. 아버지의 땀과 고향의 햇빛과 물이 길러낸 쌀을 언제까지 맛볼 수 있을까?


어느 날은 크기에 비해 가벼운 박스가 도착했다. 하얀 민들레 홀씨가 가득 담겨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에는 노란 민들레뿐이었다. 토종 하얀 민들레가 가득 피어난 고향의 둔덕이 생각났다.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많은 양의 민들레 홀씨를 훑어 보내주셨다. 솜털 같은 민들레 홀씨가 살랑이는 바람에 훌훌 날아가 버릴까 봐 조심스레 심었다. 지금 농장 주변엔 하얀 민들레가 지천이다. 옆 마을 어르신을 만났는데 집 주변에 안 보이던 하얀 민들레가 피었다며 좋아하셨다. 홀씨가 날아가 뿌리를 내린 듯하다. 봄에 피는 어느 꽃보다 반가운 게 하얀 민들레다. 고향에서 옮겨온 민들레가 전해주는 봄소식은 희망과 약속의 증표다. '


가을이면 단감 박스가 수시로 올라온다. 부모님과 동생이 함께 수확한 단감이다. 고향의 단감은 흔하게 맛볼 수 있는 품종이 아니다. 단맛이 강한 대신 저장이 어려워 시중에서는 맛보기 힘들다. 생산된 단감은 전량 직거래 택배로 판매된다. 늦가을이 되면 고향마을은 익어가는 단감으로 단풍이 든다. 온화한 기후 조건이 명품 단감 생산에 최적지이다. 뒷산 양지바른 감나무 밭에는 할머니가 심어 놓으신 60년도 더 된 단감나무들이 있다. 가끔 고향에 가면 늘 그대로인 듯 자리한 굵은 감나무들을 가만히 어루만진다. 그 옛날 어린 손자의 구원자이셨던 할머니의 숨결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단감은 오랜 기억의 시간들로 무르익어 배달된다.


‘남천’도 택배로 왔다. 고향마을에서는 남천을 대량으로 생산한다. 상품가치가 떨어진 하품이라며 보내주셨지만 심고 난 뒤 2~3년 만에 튼실하게 뿌리내렸다. 고향에서 자란 나무가 타향에서 고향 사람을 만나 마음이 놓였나 보다. 농장에 울타리로 심었는데 사시사철 변화하며 제멋을 뽐내는 조경수가 되었다. 무성하게 자라 보란 듯이 제 몫을 다하고 있다. 남천은 위로와 휴식을 주는 나무다. 고향처럼 늘 그 자리에서.


고향에서 택배가 오는 건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계셔야 고향이 있다. 택배로 부모님의 안부와 고향의 서정과 그리운 이름들이 배달되어 온다.

언젠가 택배는 뜸해지고 가벼워지다 멈출 것이다. 그날이 아직은 멀리 있기를 바라는 마음 담아 몸에 좋은 먹거리를 때맞춰 보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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