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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담 Dec 14. 2023

집은 사는 게 아니라 짓는 것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은 천천히

아직 집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 살고 있는 곳이 내 집이 아니라는 것이다.

빈 집이었던 농가 주택을 직접 수리해서 저렴한 가격에 살고 있다. 결혼 후 여러 번 이사를 다녔는 데 가장 오래 살고 있는 집이다. 마을 한쪽, 살짝 높은 곳에 외따로 위치해 있다. 전망 좋고 독립성이 보장된 최고의 집이다.


도시를 떠나 자연과 벗 삼은 시골에서의 삶은 상상만으로도 설레는 일이다. 낭만을 위한 로망이 갈수록 커진다. 그 정점에 그림 같은 집이 있다.

귀농이나 귀촌을 꿈꾸는 사람들이 맨 먼저 떠올리는 것은 멋진 풍광에 둘러 쌓인 전원주택에서의 삶일 것이다. 도시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내려오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겨 바로 땅을 구입하고 집을 짓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농촌에 내려와 바로 집을 짓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일이다.


상대적으로 돈이 많아 여유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귀촌인들의 경우는 예외 일 수 있지만 그 또한 결코 좋은 선택은 아니다.


귀농은 삶의 터전을 도시에서 농촌으로 옮긴 쉽지 않은 결단이요, 도전이다. 어떤 작물, 어느 업종을 선택해도 자리 잡고 살아가는 데 최소 3년에서 5년 이상이 소요된다. 빨리 돈을 벌 수 있고 고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은 모두 사기다. 절대 그런 것은 없다.


집부터 짓지 말아야 할 첫 번 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집 짓는 비용은 여러 변수가 있지만 평균적으로 1억 2천에서 2억 정도 들어간다. 코로나 이후 자재값의 가파른 상승으로 부담은 더 커졌다.


문제는 거액의 돈이 투입된 집이란 곳이 치열하고 예측불허인 생존의 현장에서 안정적 정착을 위한 수입 창출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자립 가능한 소득을 올리기까지 필요한 여유자금과 투자금은 예상금액을 훨씬 넘어선다. 가지고 있는 돈을 아끼고 아껴야 하는 이유이다. 돈은 경제 활동을 위한 기반 조성과 지속적인 소득 창출을 위해 투자되어야 한다.


두 번째는 집을 지을 땅을 구입하는 문제다. 원하는 곳에 집을 지을 수 있는 안성맞춤의 땅은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덜컥 땅부터 마련하고 난 다음에 부딪치는 많은 문제들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허가가 나지 않을 수도 있고, 길이 없는 맹지일 수도 있으며, 일조량이 짧거나 오, 폐수가 흘러들고 악취가 나는 곳일 수도 있다. 땅은 아침에 볼 때 다르고 오후에 보거나 해가 저물 때도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계절마다 드러나는 주변 환경도 다르다. 주변에 언제, 어떤 혐오 시설이 들어올지 모른다.


몇 년 살아보고 지역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한 후 땅을 사는 게 정답이다.


세 번째는 제대로 시공할 수 있는 업체나 업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아는 사람, 심지어 가족에게 맡겨도 공사 기간이나 자재, 시공에서 문제점이 드러나고 하자가 발생하는 게 다반사다. 하물며 도시에서 막 내려온 사람에게는 오죽할까. 어떤 분은 친동생이 일하는 업체에 맡겼는데 입주 후 비가 새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어느 정도 시골 생활에 경험이 쌓이고 일에 익숙해졌을 때는 집을 짓는 지식과 요령, 형태나 구조들에 대한 안목이 생긴다. 직접 지을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 때, 그때가 낯선 곳에서 제대로 집을 지을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갖춘 것이다. 처음엔 못의 용도도 몰랐던 초보가 이젠 비가 새는 집의 지붕을 직접 수리하는 단계에 까지 도달했다. 집 짓는 전 과정을 꿰뚫고 있어 눈 뜨고 코 베이는 사기는 당하지 않을 듯.


 네 번째는 집 짓는 재료나 형태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후회를 불러오는 경우가 많다. 집을 짓는 재료는 흙, 나무, 철근콘크리트, H빔, 철골, 패널, 벽돌, 블록등 수도 없이 많다.

난방도 화목, 기름, 펠렛, 전기, 가스, 아궁이등 다양하다. 지붕자재도 각양각색이다.

어느 것이 생활환경과 지역의 여건에 가장 적합한지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집은 한 번 지으면 적어도 50년은 살 수 있어야 한다. 막연하게 그리던 집은 꿈같은 집일 수 있다. 자재를 고르고 선택하는 일은 많은 집들을 구경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의 경험담을 고루 듣는 게 중요하다.

각각의 재료와 구조 및 난방의 형태에 대한 최적화된 선택을 내릴 수 있는 것도 결국 시간이 필요하다.

농장 가는 길에서 발견한 정교하고 튼튼한  집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농촌생활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이다. 작은 일이야 쉽게 극복하고 해결할 수 있지만 돈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일들은 꿈에 그리던 전원생활의 치명적 걸림돌이 된다. 곳곳에 도사린 수많은 변수와 변화에 유기적이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길은 느리게 천천히 가는 것이다.


귀농해서 마주하는 많은 문제들은 성급함과 섣부른 믿음에 있다. 충분히 알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며 만들어 가야 한다.


이제 서서히 집 지을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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