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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담 Apr 26. 2024

경이로운 세계

제비의 귀환

자연 속에는 우리가 넘보지 못하는 세계가 끝없이 펼쳐지고 있다. 그저 놀라운 광경들 앞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할 뿐이다. 그들이 보여준 세계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 스스로의 자만으로는 결코 설명되지 않는다.


올해도 어김없이 날아왔다. 때가 되면 약속이나 한 듯 찾아온다. 잊고 있었는데 보란 듯이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존재를 알린다. 지난해 흔적이 남아있는 익숙한 집 추녀 밑에 둥지를 틀고 자리를 잡았다. 


제비 가족은 부지런하고 요란하다. 지저귀는 소리만으로도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새들도 다양한 말을 한다. 보통 운다고 하지만 자세히 들어 보면 상황에 맞춰 말을 하고 있다. 자기들만의 언어로 주고받는 대화에 단순한 인간이 끼어들 틈은 없다. 


어릴 적에도 봄이 되면 찾아오는 제비가 마냥 신기하고 반가웠다. 해마다 오는 제비를 보며 새끼 제비가 어른이 되어 다시 온다고 믿었다. 정확히 자신들이 살았던 곳으로 찾아오는 본능적 회귀의 궁금증은 어린아이의 수준에서는 더 이상 깊이를 더하지 못했다. 


제비들의 귀환은 헤어진 가족을 찾은 듯했다. 새로 집을 짓고 알을 낳아 새끼들이 부화해서 모습을 드러내는 광경을 매 순간 지켜보았다. 빨랫줄이나 전선에 앉아 있는 제비는 말을 안 해도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주는 친구 같았다. 부지런히 모이를 나르며 새끼들을 부양하는 어미 제비의 헌신은 눈물겨웠다. 네다섯 마리의 어린 제비들은 눈을 뜨지 못하면서도 어미가 물고 온 모이를 서로 달라며 아우성이었다. 있는 힘껏 입을 벌리고 소리를 지르며 경쟁하지만 어미의 선택은 냉정하고 정확하며 공평했다. 치우치지 않고 골고루 나눠주는 사랑이 뭔지를 보여줬다. 종족 번식을 위한 본능적 행위라고 치부하기엔 어미의 헌신이 눈물겨웠다.


도시 생활은 제비와 함께 했던 추억을 잊게 만들었다. 도시는 태생적으로 제비가 찾아올 수 없는 곳이다. 안전하지 않았고 집을 지을 진흙이 없다. 하루에도 수백 번을 들락거리며 새끼에게 줄 모이를 구할 수 없는 척박한 곳이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인정과 여유가 넉넉하지 않음을 객관적으로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제비는 인정 많고 편안하며 따뜻한 웃음이 넘치는 사람들의 집으로 날아든다. 제비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몇 해 전, 아는 분의 사무실 처마에 둥지를 튼 제비 가족을 만났다. 읍내에 위치해 있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논과 밭과 산이 펼쳐지는 곳이다. 그분들은 너그럽고 정이 많으신 분들이다. 제비 가족은 제법 당당하게 행세한다. 소리도 날갯짓도 거침이 없다. 기다림에 보답하는 제비가 더없이 고맙고 기특하다. 그 광경들을 그저 허허 웃으며 바라보신다. 굳이 박 씨를 물고 오지 않아도 제비는 환영받는다. 일정 기간 머물다 떠나기에 예정된 이별이지만 다시 돌아오리라는 믿음이 있기에 서운함도 아쉬움도 없다. 


강남 갔다 돌아온 다고 하는 데 강남이 어디인지 누구도 짐작할 수 없었다. 연구자들이 제비의 몸에 위치 추적 장치를 달았다. 다음 해 봄 제비가 정확히 그곳으로 날아왔다. 추적장치를 분석했다. 강남이 어디인지 뚜렷하게 나타났다. 육지의 제비들이 제주도를 지나 일본과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를 거쳐 호주까지 날아갔다. 다시 필리핀에서 한 겨울을 난 뒤 대만과 중국을 거쳐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나침반도 없는 몸무게 16g의 작은 생명이 날갯짓만으로 그 멀고 험한 길을 돌고 돌아 이동한다는 사실이 경이로울 뿐이다. 

그래서 더 반갑고 귀하고 사랑스러운 손님이다. 1년마다 찾아오는 가족이란 말이 더 어울릴 듯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는 제비가 찾아오지 않는다. 부족한 주인의 마음이 제비에게 닿지 않아 선택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인정을 베풀고 따뜻함이 넘치며 다정한 공간이 되면 언젠가는 제비 가족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혹여 여기가 아니더라도 어느 집 처마 밑에 작은 둥지 하나 마련한다면 그 또한 경이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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