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담 Feb 28. 2024

기다림은 희망이다

산다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다

봄 보다 꽃이 먼저 왔다. 봄을 기다리는데 아주 작은 꽃이 수줍은 듯 고개를 내밀었다.

해마다 제일 먼저 마주하는 '봄까치꽃'이다. 남녘에는 벌써 매화나 산수유가 지천이지만 이곳의 나무들은 아직 꽃망울을 터뜨리지 않았다.

기다리면 피어나리. 땅 속에서 기다림의 시간을 홀로 견뎌 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피어나는 들꽃들은 작고 가냘프다. 강하고 굳센 생명의 의지는 땅속에 감춰두고 수줍은 듯 손짓하는 여린 꽃들이 경이롭다.

작은 꽃으로 존재를 알리기까지는 어둠 속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했다. 기다리는 누군가를 믿고 피어난 들꽃은 희망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했다.

갓 태어난 아이를 빨리 걷게 하기 위해 억지로 일으켜 세우는 일은 없었다.

뒤집기를 하고 배밀이를 하다 어느 순간 기어 다닌다. 사방에 있는 의지할 만한 것들을 부여잡고 자기 몸을 힘겹게 일으켜 세우다 넘어지기를 반복했다. 스스로 일어서서 걷기까지 아이는 오롯이 혼자 힘으로 해냈다.

부모는 손뼉 치고 환호하며  안아주는 일이 전부였다.


어느 순간 아이의 성장과 발달 속에 기다림은 사라졌다. 때가 되지 않았지만 남보다 앞서가기를 닦달했다. 늘 누군가와 비교하며 더 빨리 달리라고 다그쳤다. 차근차근 자라나 꽃 피우기를 기다리는 것은 방관이거나 직무유기로 치부됐다. 기다림의 시간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 아이들은 어느 순간 선포한다. 이제부터라도 나의 길을 갈 테니 제발 간섭하지 말고 가만히 놔두라고. 그동안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이루려 했던 것들은 무용해지고 다시 기약 없는 기다림의 시간과 마주한다.

아이가 스스로 일어서듯 부모의 몫은 한결같은 기다림이면 되는 것이다.


모든 만남도 기다림이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시간은 쉽게 주어진 인연이 아니다. 수없이 많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어느 한 지점에 닿아야 만나게 되는 운명이요, 행운이다. 그 긴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기에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들, 친구와 이웃과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은 그 자체로 설레고 즐겁다. 집으로 돌아오는 가족을 기다리는 시간도 행복의 한 자락이다. 기다리는 만남은 모든 인연들을 소중하게 만든다.

오늘도 바람처럼 스쳐가는 시간들은 만날 수 없는 그리운 이들에 대한 기다림을 희망으로 채워가라 일러준다.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만나게 될 것이라고.

오지 않으면 내가 가고, 내가 못 가면 기꺼이 손 흔들며 다가올 것이라 말해 준다.     


삶은 기다림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이든 때가 되고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애면글면한다고 뜻대로 되지 않음을 배웠다. 안달복달하면 기다림의 시간은 더 길어지고 멀어진다. 기다림은 견디는 것이다. 기다림은 자신의 꿈을 향해 가는 것이다. 기다리면 올 것은 오고 될 일은 된다.      

모든 결과는 기다림의 산물이다. 기다림의 시간이 없다면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기다림은 스스로를 가꾸고 지켜내며 키워내기 위해 필요한 자양분이다.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다. 누구나 시작과 동시에 끝을 향해 달려간다. 그 시간을 기다리며 가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거나 주저 않지만 다른 누군가는 확신과 희망으로 나아간다. 한 사람의 현재가 빛을 발하는 것도, 터널 같은 시기를 지나온 것도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결실을 맛보기 위함이었다.

기다려준 많은 이들의 인내와 기도가 함께 닿아 현재의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모든 기다림은 희망이다. 가뭄 끝에 내릴 단비를 기다리는 간절함이다.

어딘가로 가기 위해 들어선 문 앞에서 다시 문밖으로 나서기까지 견뎌내는 시간과 힘도 희망이다.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다림의 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날들이 많아지기를 기다리는 오늘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농부와 먹거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