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아'에서 '최은아작가'로
처음엔 그저 취미였다.
소소하게 시작한 취미가 어느새 마음 깊은 곳에 스며들었고, 조심스럽게 미술대전 첫 공모전에 도전장을 내밀던 그때, 나는 그냥 ‘최은아’였다.
미술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제대로 된 정식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는 내가, 미술대전 공모전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본상 수상에 대해서는 감히 욕심을 낸다거나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영역이었고, 입선조차 어려울 거란 생각에 주변에 말조차 꺼내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준비하던 날들...
나이가 들어 무언가에 새롭게 도전하거나 시작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더불어 깊은 고민과 불안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왔다.
계속해서 떠오르는 고민과 마음의 소리들을 스스로 다독이며 보내야 했던 시간들이었다.
심사 발표 전날 밤, 긴장감에 숨이 막힐 듯했다.
자다 깨다를 수차례 반복하다, 그렇게 아침을 맞이했다.
그리고 마침내, 발표의 순간.
시간이 멈춘 듯,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정말 내 이름이 맞는지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다.
그날 이후에도 며칠이나, 나는 틈날 때마다 또다시 확인하곤 했다.
혹시 꿈은 아닐까, 잘못 본 건 아닐까.
하지만 분명, 꿈이 아니었다.
그날의 벅찬 감정은 지금도 선명하다.
꿈만 같던 순간이, 현실이 되던 날이었으니까.
이후, 나의 호칭은 '최은아'에서 '최은아 작가'가 되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하지 못했던 호칭이었다.
사실 지금도 ‘작가’라는 호칭은 여전히 낯설고 조심스럽기만 하다.
그 말 안에 담긴 책임감과 무게를 매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 수상 당시에는 그저 감사하고 감사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상'을 받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얼마나 드문 기회인지 알기에.
이 상은 마치.. 하늘이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그럼에도 잘 버티고 살아왔다고,
내게 조용히 건네는 위로의 선물처럼 느껴졌다.
작가가 되었다는 것은 단지 누군가의 인정을 받았다는 의미를 넘어, 이제는 내가 만든 작품 속에 나의 이야기를 담아도 좋다는 작은 허락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