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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원 Oct 24. 2021

새벽과 오후를 여는 전통시장들

며느리지만 가끔은 여행자가 되고 싶다_ 2. 사람 이야기가 넘치는 곳

“따시게 입어래이. 날이 차다.”


대충 눈곱만 떼고 패딩을 입었다. 아이도 모자를 씌우고 두터운 점퍼를 입혀 문밖을 나왔다. 겨울이라 그런지 7시인데도 해가 뜨지 않았다. 몽롱한 정신으로 차에 탄 뒤, 히터로 조금 데워진 차 안에서 몸을 녹였다. 아침 일찍부터 길을 나선 이후는 서호시장에 가기 위해서다. 서호시장은 통영의 대표적인 시장 중 하나로, 새벽에 장이 열린다. 시어머니께서 아침메뉴로 매운탕을 끓이실 때, 싱싱한 생선을 사러 서호시장으로 가신다. 새벽시장이라고 해도 주차난이 항상 심해서 남편은 좋아하지 않지만, 시장 구경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잠도 깨울 겸 산책도 할 겸 생선도 구경할 겸 딱인 곳이다. 게다가 아이에게 살아 있는 생선을 보여주기에 좋아 웬만하면 같이 데리고 가려한다. 


아침 7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시장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서호시장 근처에서 회식당을 운영하신 시어머니께서는 시장 곳곳을 꿰뚫고 계신다. 그래서 시어머니의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녀야지만 시장에서 헤매지 않을 수 있다. 시어머니께서는 단골집을 돌아다니면서 생선과 각종 채소들을 구입하셨고, 그러는 동안 우리는 싱싱한 생선을 구경하였다. 아이를 데리고 돌아다니면 나름 시장 상인들의 주목을 받는데, 애가 예쁘다는 칭찬의 말부터 쓸데없이 찬바람 쐰다는 애정 어린(?) 말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시장 한 바퀴를 돈 뒤, 수제 어묵집을 들렀다. 새벽에 만들어 파는 어묵이라 신선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또 겨울철에는 언 몸을 녹이는 데에도 좋다. 무엇보다 맛이 정말 좋은데, 시아주버님께서는 통영에 내려올 때마다 이곳을 들러 어묵을 한 가득 사 가시곤 한다. 장을 보다 보니 8시가 훌쩍 넘었다. 조금 전의 북적거림이 다소 덜해지는 것 같았다. 서호시장은 새벽시장이라 새벽에 유난히 사람이 많고, 오전이 지나면 장을 보는 사람들도 물건을 파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 시장을 나오니 시락국 냄새가 풍겼다. 이곳 주변에 50년 동안 이어온 시락국 집이 있는데, 시장에 올 때마다 구수한 시락국 냄새가 나서 배가 고파지곤 한다. 


새벽부터 활기찬 서호시장


아침 일찍 서호시장을 가지 못한 날에는 중앙시장으로 향하면 된다. 중앙시장은 새벽 시장인 서호시장과 달리 오후 2시부터 활기를 띠는 시장이다. 서호시장보다 작긴 하지만, 해산물과 건어물이 매우 풍성해서 볼거리가 많다. 중앙시장 한가운데 생선을 파는 상인들이 줄 지어 있는데, 그 길을 지나가면 생선이 파닥파닥 뛰는 소리와 상인들의 호객(?) 소리, 손님들의 흥정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서호시장보다 좀 더 시끄럽고 유난스럽다. 중앙시장에서도 우린 시부모님의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녀야만 한다. 괜히 엄한 상인(?)한테 꾀였다가 덜 싱싱하고 비싼 생선을 사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부모님께서는 시장 입구에서부터 시장 끝까지 늘어선 생선들을 쭉 보시고는 돌아오시는 길에 생선을 사신다. 나름 생선 전문가(?)이시기에 시부모님을 따르기만 하면 맛 좋고 싱싱한 생선을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중앙시장을 처음 찾는 관광객들이라면 반드시 시장 끝까지 가 볼 것을 추천한다. 보통 입구에 사람들이 북적북적 많이 있는데, 시장 끝에도 싱싱한 생선들이 꽤 많기 때문이다. 또 늦은 오후가 되면 시장 끝 상인들이 떨이로 생선을 싸게 팔 때가 있다.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입구에서 서성이기보다 시장 안쪽까지 들어가는 것이 좋다. 


오후 2시부터 본격적으로 활기를 띠는 중앙시장


“형수가 충무김밥 좋아하니까 하나 사가자.”


시댁에 온 가족이 모일 때에는 충무김밥을 사 가는 일이 종종 있다. 남편의 형수, 그러니까 형님이 충무김밥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중앙시장에는 유난히 충무김밥 집이 많다. 충무김밥은 배를 타던 통영 사람들이 김밥을 상하지 않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탄생한 음식이다. 오이나 시금치 등이 들어가면 김밥이 쉬는데, 그냥 김에 돌돌 말아 양념 어묵이나 오징어, 섞박지를 곁들여 따로 먹으면 잘 쉬지 않기 때문이다. 뱃사람이 먹던 소박한 음식인데, 지금은 통영의 대표적이 음식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맛은 좋으나 가격이 비싼 것이 약간 아쉽긴 하지만, 한 끼 해결하기에 충분한 음식이다. 또 충무김밥을 먹은 뒤, 후식으로 통영의 대표적인 간식거리인 꿀빵을 먹으면 배부르게 통영을 즐길 수 있다.


지역 곳곳에 있는 시장들을 꽤 많이 가봤는데, 중앙시장과 서호시장은 다른 장과 달리 유난히 싱싱한 생선과 맛있는 먹을거리가 많다. 바다를 끼고 있는 지리적 특성이 어느 곳보다 잘 반영된 곳이다. 또 그 주위로 동피랑, 서피랑, 공방 등 볼거리가 많아 뚜벅이 관광객들이 여행하기에도 참 좋다. 관광객 모드가 아닌 며느리 모드(?)로 시장을 찾기 때문에 대체로 장을 보고 곧바로 시댁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시부모님 덕분에 헤매지 않고 시장 구경도 하고 싱싱한 먹거리도 구할 수 있어서 나름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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