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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원 Oct 24. 2021

조금은 쓸쓸한 해안 드라이브 길

며느리지만 가끔은 여행자가 되고 싶다_ 2. 사람 이야기가 넘치는 곳

시부모님을 모시고 산양일주도로를 달렸다. 산양일주도로는 통영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드라이브 코스다. 통영시 산양읍의 가장 큰 섬인 미륵도를 한 바퀴 휘감아 도는데, 주변으로 한쪽에는 드넓은 바다가, 다른 한쪽에는 푸른 숲이 펼쳐져 있어서 그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도 꼽힐 정도다. 그런데 오늘은 유독 마음이 무거웠다. 남편과 내가 시부모님을 모시고 이 길을 달린 이유는 시어머니의 여동생인 이모님 댁을 들르기 위해서다. 이모님 댁에 도착한 시부모님께서는 대문 밖에 잠시 머물고는 집안으로 들어가 몇몇 물건들을 챙겨 나오셨다. 평소 같으면 우리도 따라 들어가 차 한 잔 마셨을 텐데, 남편과 나는 이모님 댁에서 멀지 않은 선창에 가 별말 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인생이 허망하네. 그렇게 갈 줄 누가 알았겠노.”
“고생만 하고 저 세상으로 가네.”


이모님은 급성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시어머니의 여동생이라 나와는 먼 관계였지만, 이모님은 나에게 좋은 사람이었다. 결혼을 앞두고 친정 아빠가 건강검진을 받다 초기 폐암 진단을 받았고, 급작스레 수술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회사에 휴가를 쓰고 정신없이 대구로 내려와 수술을 마친 친정 아빠를 마주하였는데,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에게 걱정과 두려움 섞인 마음을 전했고, 그걸 또 시부모님께서 아시고는 위로의 전화를 주셨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정 엄마에게서 연락을 받았는데, 통영에서 전복을 한 가득 보내왔다고 했다. 전복은 시부모님과 이모님께서 친정 아빠의 기력 회복을 위해 보내신 것이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사이였는데 친정 아빠를 챙겨 주신 마음이 매우 고마웠고, 더욱이 나와는 별 관계가 아니었던 이모님께서 발 벗고 나서서 좋은 전복을 공수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빚진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결혼 후, 시댁에 가면 틈틈이 이모님 댁에 들러 인사를 드리곤 했다.


이모님은 대장부 같은 스타일로, 술과 담배를 너무 좋아해서 남편이 건강을 위해 제발 줄이라는 말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건넨 적이 많았다. 하지만 이모님은 그거라도 없으면 자기 인생이 너무 재미없다면서 기어코 술과 담배를 즐기셨다. 사실 이모님 삶이 팍팍하고 안쓰럽긴 했다. 배를 타는 남편은 몇 달이고, 몇 년이고 바다로 나가는 바람에 남편과 거의 떨어져 지냈고, 치매가 있는 친정 어머니를 손수 돌보셨으니 말이다. 이런 세월을 견디다 보니 대장부 같은 스타일로 바뀐 것인지도 모른다. 치매가 있는 친정어머니(남편의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 뒤로는 손주들 보면서 이제 좀 편안하게 사는가 했더니, 1년이 채 안 되어 급성 위암 판정을 받고 머지않아 생을 마무리하게 되셨다. 이모님과 함께 지낸 시간이 길지 않았지만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이를 임신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장례식장으로 곧장 향했다.


장례식장에 이미 도착해 있던 시어머니는 얼마나 우셨는지 지쳐 있었고, 애 품고 뭐하러 여기까지 왔냐는 걱정 어린 말을 건네며 간단히 인사만 하고 가라 하셨다. 남편이 분향을 하고 상주들과 맞절을 올리는 동안 나는 뒤에 서서 가볍게 목례를 하였다. 그러고는 저녁을 먹으면서 이모님과 있었던 일들을 나누며 좋은 곳으로 가시길 진심으로 바랐다. 이모님 댁으로 갈 일이 없어서 그런지 산양일주도로도 예전만큼 가지 않는다. 우리나라에게 손꼽히는 아름다운 길이라는데, 이모님의 서글픈 삶과 우리들의 슬픔이 묻어 있는 곳이라 마냥 아름답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일주도로 옆으로 드넓게 펼쳐진 바다에 흩어져 있는 섬들도 왠지 외롭게 느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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