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지만 가끔은 여행자가 되고 싶다_ 3. 통영에서 산책을 즐기다
“꽃게 잡으러 선창 가자.”
밤 산책하기 좋은 가을날이면, 남편은 늘 나와 아이를 데리고 근처 선창에 데려간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선창이라는 곳이 무얼 하는 곳인지 몰랐다. 익숙하지 않은 단어라서 바닷가 근처를 가리키는 통영 지역의 사투리인 줄 알았다. 나에게 선창이란 곳이 어떤 곳이며 무얼 하는 곳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시댁을 잠시 탈출(?)하는 게 좋았을 뿐. 시댁 근처에는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작은 선창이 있다. 그곳엔 고기잡이 배들이 몇 척 닿아있고, 굴 공장이 몇 개 들어서 있다. 우리는 주로 선창에서 물고기를 구경하는데, 유독 물고기가 많이 보이면 가을이 왔다는 걸 느끼곤 한다. 우리가 즐겨 가는 선창은 내만에 위치하고 있어서 물고기들을 잘 발견할 수 없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가을이 되면 정말 다양한 물고기들을 만날 수 있다. 해수면 위를 뛰어다니는 숭어부터 살이 올라 맛이 좋은 전갱이, 바다의 왕자라 불리는 감성돔, 생김새가 독특한 학꽁치, 배가 뽈록한 복어까지. 그래서 가을이 시작되면 낚시를 즐기는 남편을 따라 선창으로 모두 향한다.
올 가을에는 아이와 함께 서너 번 낚시를 즐겼는데, 꽤나 재밌었다. 아이도 네 살이 되더니 천방지축처럼 날뛰지 않아 나름 안전하게 낚시를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낚싯대에 감성돔과 전갱이 같은 생선들이 걸려들면서 낚시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추석에는 연휴 내내 낚싯대를 하나씩 짊어지고 선창으로 향했다. 일 년 중 이때 낚시가 가장 잘 된다는 남편은 틈만 나면 우리를 선창에 데려갔다.
“날 추워지면 낚시 못해. 지금 실컷 해 둬야지.”
남편 말처럼 낚싯대를 바다에 던지기만 하면 다양한 생선들이 잡혔다. 아이는 낚싯대로 잡은 물고기가 신기한지 이리저리 살펴보기도 하고 조심스레 만져보기도 했다. 우리는 복어, 숭어, 전갱이, 학꽁치, 감성돔 등 다양한 어종의 생선들을 잡았다. 복어는 위험에 처해지면 잔뜩 배를 부풀리는데, 살기 위해 하는 행동이긴 하나 상당히 귀여웠다. 또 숭어는 들어 올리는 게 무척 힘들 정도로 힘이 세서, 남편이 걸려들지 말라고 당부(?)를 해댔다. 전갱이는 내만에 위치한 선창에서 잘 잡히지 않은 물고기인데, 우연찮게 내가 던진 낚싯대에 걸려들었다.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감성돔은 낚싯대에 걸린 모습을 하도 많이 봐서 지겨울 정도였다. 남편은 낚시에서 잡힌 물고기들을 아이에게 보여주면서 이름과 생김새 등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아기 물고기(?)는 너무 작아 불쌍하다며 아이가 직접 바다로 돌려보낼 수 있게 이야기하였다.
물고기가 한창 잡히는 가을이 지나면 선창은 온통 굴 껍데기 냄새로 진동한다. 굴의 고장(?) 답게 시댁 주변에 굴 공장이 여럿 있는데, 굴 냄새와 맛은 좋으나 그 껍질 냄새는 정말 고약하다. 얼마나 고약한지 아이가 ‘똥냄새난다’고 미간을 찌푸리곤 한다. 하지만 난 그 냄새가 마냥 싫지만은 않다. 한때 시어머니께서 굴 공장에서 굴을 까는 일을 하셨는데, 굴을 까고 돌아오는 모습이 너무 지쳐 보여서 마음이 짠할 때가 많았다. 또 냄새는 고약해도 잘게 쪼개진 굴 껍데기가 비료로 쓰여서 시댁 텃밭의 먹거리에 훌륭한 영양분이 된다. 굴 껍데기를 보면 고약한 냄새가 떠오르면서도 동시에 굴을 까고 돌아오신 시어머니와 굴 껍데기 비료를 뿌리시는 시아버지가 생각난다.
올 겨울에도 시댁은 굴 껍데기 냄새가 진동할 것 같다. 냄새는 좀 고약하지만 시부모님의 이야기가 깃들여 있기에 무조건 미워할 수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그 맛과 향이 너무 좋아 껍질 냄새 정도야 가볍게 넘길 수 있다. 계란물을 입혀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굴전과 뚝배기에 한소끔 끓인 굴국밥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침이 고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