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지만 가끔은 여행자가 되고 싶다_ 3. 통영에서 산책을 즐기다
시댁은 통영 시내에서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 그래 봤자 1시간 이내에 돌아다닐 수 있지만, 어쨌든 택시비 할증까지 붙는 곳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동네가 아주 조용하다. 통영에 젊은 예술가들과 귀촌, 귀농을 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던데, 이 동네에는 죄다 70대 이상인 듯하다. 시부모님께서 70세가 넘으셨는데, 마을회관에 어르신들 드시라고 음식을 드릴 정도다. 우리가 자주 가는 선창에도 마을 순찰을 하는 이장님만 계실 뿐, 사람들을 마주친 적은 손에 꼽힌다. 그런데 밤이 되면 형형색색 화려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바로 건너편에 ‘죽림’이라는 신도시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혼 때만 하더라도 몇몇 카페와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는데, 해가 거듭할수록 프랜차이즈 카페와 음식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점점 복잡하고 화려해지고 있다.
낮에는 주로 해안 산책길을 따라 가볍게 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카페에서 바다 뷰를 즐기는 사람들뿐이다. 한여름이 되면 수상레저를 즐기는 사람들도 조금 있긴 하지만, 규모가 크지 않아 요란스럽지 않다. 그런데 밤이 되면 화려한 도시로 바뀐다. 형형색색 조명들이 빛나는 길거리에 술 한 잔을 걸치려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통영에는 ‘다찌’라는 문화가 있는데, 죽림 곳곳에도 다찌집들이 꽤 있는 듯했다.
“예전부터 꼭 니 데리고 다찌집 가고 싶었는데, 상황이 안 되네.”
남편은 연애 때부터 나와 함께 다찌집에 가고 싶어 했다. 그때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지금은 남편과 술 한 잔 기울이고 싶은 곳으로 바뀌었다. 다찌는 통영 고유의 술상 문화다. 안주가 따로 없고, 주인이 그날그날 만든 음식을 주는 대로 먹어야 한다. 술을 주문할 때마다 근처 시장에서 나는 제철 재료로 안주가 만들어지는데, 제철마다 바뀌는 음식들을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통영 바다에서 구한 재료로 만들어지니, 안주 맛이야 꽤나 훌륭할 것이다. 다찌집에는 대체로 굴, 멍게, 전복 같은 해산물 요리는 기본이고, 구이, 찜, 회 등이 메인 요리로 등장한다고 한다. 그래서 애주가들도 찾지만, 해산물 요리를 좋아하는 미식가들도 다찌 음식을 즐긴다고 한다. 시어머니의 요리 솜씨가 워낙 좋아 굳이 다찌집을 가야 하나 생각했는데, 시어머니를 귀찮게(?) 하지 않고 통영의 식문화를 한상에 즐기기에 다찌집만 한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죽림의 밤은 술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로 화려하다. 우리는 시댁 마당 혹은 근처 선창에 앉아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건너편을 멍하니 감상하곤 한다. 풀벌레 소리와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조용하게 빛나는 화려함을 바라보는 건 의외로 흥미롭다. 마치 막이 열기 전과 걷힌 뒤의 연극 무대를 보는 것 같다. 그래서 해가 떠오른 뒤의 내일이 기대되곤 한다.
최근 시댁 근처에 2층짜리 카페가 생겼다. 시아버지께서 오픈 기념 겸 동네 친구들과 가보셨는데 나름 좋다고 하시길래 형님네 가족과 커피 한 잔 하러 갔다. 커피 값은 다소 비쌌지만 2층에서 내려다보는 바다 뷰와 건너편 죽림 시내는 예상했던 것만큼 좋았다. 우리야 시댁에서 흔히 감상할 수 있는 광경이었지만, 시댁이 없었다면 한 번쯤 이곳을 들러 고요한 바다를 즐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는 항상 사람들로 붐볐다. 낮이고 밤이고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시댁이 통영의 한 시골에 위치하고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굳이 카페를 찾지 않아도 마당에서 충분히 즐길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