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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글루 Apr 09. 2023

저는 작년에도 영정사진을 찍었어요

무슨 색 팬티를 입고 죽을 것인지 생각해 봤나요?




 생(生)과 사(死)는 각각의 점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인생은 점과 점, 그 사이를 죽 연결한 선 같은 모양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혹시나 어느 순간에 툭, 하고 ‘죽음’이라는 마침표가 찍혀버리면 어떡하나, 삶과 죽음을 연결해 둔 선이 갑작스레 지워져 버리기라도 하면 그때는 또 어떡하지. 그러면 모든 것들이 다 끝나버리는 건 아닐까? 그런 고민을 했다. 

 불시에 땅이 꺼져서 이렇게 내 인생이 끝나버릴 까봐 주저앉아 울었던 열 살. 어린 시절의 어느 날부터. 아무렇지 않은 평범한 날에도 이따금씩. 갑자기 죽어버릴까 두려워 안절부절못하곤 했다. 그 죽음이 내 것이든, 당신의 죽음이든 간에. 


 언제, 어떻게 죽는지 전혀 예상할 수도 준비할 수도 없다는 것은 상상만으로 괴롭다. 불안을 감당할 수 없어서 밖으로 무작정 나와 걷다가 울고, 또 걷다가 울기를 반복했다. 달라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해도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것도, 알 수 있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그냥 무작정 밖으로 나와 걸어야만 했던 시간이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어떻게 죽게 되는지 알게 되더라도 불안했을 것이다. 다른 종류였겠지만.




-저는 작년에도 영정사진을 찍었어요. 


 매년 영정사진을 찍는다. 죽음에 대한 불안이 극대화됐을 때 시작된 루틴.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찍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영정사진 안에 ‘나 자신, 한 해를 잘 마무리했구나’ 하는 마음을 함께 곁들인다. 정말로 삶과 죽음의 결정체가 아닐 수 없다. 


-영정사진 찍는 삼십 대 처음 봐요. 

-죽음에 대해 준비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그날 무슨 팬티를 입을지도 내가 준비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창피한 팬티를 입고 있으면 안 되는데…. 아무튼, 그래도 남은 사람들한테 보여줄 사진 정도는 내가 준비해 보자. 싶더라고요. 

-아니, 그걸 왜 고민해 봤냐고요! 너무 웃겨요. 그 정도로 창피하면 살아서도 입지 마시라고요!! 


 맞네, 그렇네. 그 정도로 창피하면 살아서도 입지 말아야지, 암. 그렇고 말고. 고개를 끄덕여본다. 잘 죽으려면, 삶에 충실해야 한다. 막연히 불안해하고 울기만 하지 않기로 한다. 응, 그럼. 그럴 시간에 속옷을 하나 더 사고 말지…. 그나저나 저 사람은 무슨 팬티를 입고 있을까? 공상이 이어진다.    





 문득, 삶과 죽음이 단순 이분화 되는 구조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조적인 의문. 실상은 아무도 모르지 않나? 죽어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강이 시작하는 곳, 혹은 강의 하류에서 한 움큼 물을 집었을 때, 어느 곳에서 집어 들더라도 그것은 ‘강’이다. 


 삶이든, 죽음이든, 어제, 오늘, 지금. 어느 순간에도 그것은 ‘인생’ 일 것이다. 그러니까 슬프지만,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자. 사랑을 만나면 사랑하고, 이별을 만나면 이별을 하면서. 강이 자정능력을 잃지 않도록. 오염되거나 말라붙지 않도록. 

 천천히 때로는 빠르게, 흐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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