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by 최종신

연경은 한눈에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드럼 세트를 나눠 들고 동료들과 막 홍대입구역 개찰구를 통과했다.


“연경아, 힘들면 내가 다 들게.”
“아냐 그 정도라도 나눠 들어줘서 별로 안 힘들어.”
밴드 내에서 유일한 여자 멤버라 평소에도 배려를 받는 데에 익숙하긴 하지만, 유독 드럼 세트를 옮길 때는 멤버들로부터 나약한 여자로 보이는 게 싫어서 무거운 짐을 들려고 한다.

거리엔 아직 인적이 드물었다.
밴드의 첫 거리공연을 위해 자리를 잡고 악기를 맞춰보기 위해서 서둘러 나온 턱에, 해가 쨍쨍한 금요일 거리에는 아직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았다.

첫 공연을 위해 몇 주 전에 리더를 맡은 베이시스트 오빠가 제안해서 새로 공연 레퍼토리에 집어넣은 곡들의 연습이 완벽하게 안 된 상태라 조금 더 긴장된다.

“자 한번 맞춰 볼까? 앰프 밸런스 맞춰봐 주고.”
리더의 말에 연경의 드럼 스틱이 서로 부딪치며 시작을 알린다.

원하지 않는 과로 전공을 잡아 입학한 소도시의 대학은 연경에게 한없이 답답함을 느끼게 하는 수도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경이 자란 곳도 그다지 큰 도시는 아니었지만, 대학가 특유의 활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조용한 소도시에 자리를 잡은 캠퍼스는 늘 동경하던 대학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너 대학 마치면 다시 집으로 내려와 아빠 일이나 도와라.”
“아빠, 저 그 이야기 다시 안 할 거라고 했죠? 분명히 싫다고 말씀드렸어요.”
연경이 대학에 입학을 앞두고 있을 무렵, 아버지와 벌이는 언쟁은 늘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자그마한 공장을 운영하는 아버지가 대학 입학을 위해 다른 도시로 떠나는 연경에서, 졸업 뒤에 집으로 돌아올 것을 종용하는 말은 마치 자신의 성장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말처럼 들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가 없는 집에 될 수 있으면 다시 돌아오기 싫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인지 더 삐딱하게 대답을 하곤 했었다.
“아빠는 제가 있거나 없거나 같잖아! 이제 나 신경 쓰지 않아서 더 좋을 텐데 왜 자꾸 돌아오라고만 해.”

연경의 엄마는 순종적인 사람이었다.
아빠가 하는 공장이 몇 번의 위기를 겪고 이사를 하는 일이 있어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연경에게 더 좋은 집으로 이사하는 거라며 이삿짐을 혼자 챙기곤 했었다.
조금도 자상하지 않은 아빠에게 늘 헌신적인 엄마의 모습이 연경은 늘 못마땅했다.
엄마는 스스로 행복하기 위한 그 어떤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고 3으로 올라갈 즈음, 엄마는 집에 없었다.
갑자기 발견된 병이 미처 손 쓸 틈을 안 주고 엄마를 중환자로 만들어서는 병원 신세를 지게 했기 때문이었다. 여름 방학이 지나 막 2학기로 접어들었을 때, 청천 날벼락과도 같이 엄마가 위중하다는 연락이 학교로 와서 수업을 듣다 말고 병원으로 뛰어갔을 때 이미 엄마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엄마의 죽음으로 아주 힘든 입시를 치르고 평소보다 한참 낮은 점수를 받아 입학한 연경의 대학은 그래서 애착을 갖기 어려운지도 몰랐다.

연경의 유일한 돌파구가 된 것은 뜻밖에 드럼이었다.
동아리 밴드 모집 공고가 붙어있는 것을 보게 된 연경이 거짓말처럼 이끌려 드럼 스틱을 잡게 된 모든 과정은 우연과 필연이 섞여 있는 결과였다.
그렇게 몇 달을 스틱만 잡고 연습을 하던 연경에게, 선배가 밴드와 함께하기를 권하고 첫 합주를 했을 때의 희열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가을이 가고 겨울을 지나 새로운 봄을 맞았다.

드럼을 연주하며 밴드의 음악으로 몰입하는 시간이 연경에게는 더없이 행복했다.
학교 내에 작은 행사 무대에도 서 봤다. 완벽하지는 않은 연주였지만, 관중 앞에서의 공연을 하는 순간은 마치 꿈만 같았다.
학과 수업은 적당히 따라가는 정도로는 맞춰가고 있지만, 어찌 되어도 별 상관은 없었다.
연경에게 전공은 대학생 신분으로 유지하면서 좋아하는 밴드의 드러머로 생활하기 위한 껍데기 같아 보였다.

그러던 중 벚꽃이 막 피던 지난달,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고 2시간이나 걸려서야 갈 수 있는 홍대 앞 거리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는 밴드 리더의 말을 듣고 뜬 눈으로 밤을 지세웠던 밤을 연경은 잊을 수가 없다.

정식 공연이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아까부터 모여 든 관중 사이로 그가 눈에 띄었다.
처음엔 밴드 앞에 서있다가 이내 안 보여 갔나보다 생각했는데, 좀 떨어진 편의점 창가 자리에 앉아 뭐가를 먹으면서도 계속 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공연은 두어 시간 뒤에나 시작할 예정인데도 계속 자리를 지키며 왠지 연경의 드럼 연주만 쳐다보는 것 같아 조금 신경이 쓰였다.

“아빠, 저 학교 밴드에서 드러머가 됐어요.”
수화기 너머로 말이 들리지 않은 채 수십 초가 지나갔다.
연경이 가끔 하는 안부전화로 아버지에게 밴드에 대해 이야기를 한 것은 불과 몇 주 전이었다. 방학에도 집에 안 오는 딸의 안부가 궁금했을 짐도 한데, 전화 한 통 없는 아빠에게 전화를 먼저 거는 것은 늘 연경이었다.

“드럼을 친다고, 네가?”
“네. 걱정하지 마세요. 동아리에서 하는 밴드로 다들 좋은 친구들과 함께 해요.”

“너 학교는 잘 다니는 거냐?”
이 소리는 학과 공부를 포기하고 밴드만 하는 건 아니냐는 말씀으로 해석이 되었다.
“네.. 과에서 1등은 아니어도 중간 이상은 잘 따라가고 있어요, 전공도..”
“그렇다면 알았다. 잠은 꼭 집에 가서 자라. 끊는다.”
(뚜..뚜..)
그 날 이후 연경의 마음이 훨씬 더 편해져서인지,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곡을 연주해도 더 신나기만 했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 가고 드디어 거리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멘트와 함께 첫 곡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연경은 대충 둘러 보아도 삼사십명은 족히 모였을 거리의 관객들을 한번 힐끗 쳐다보고는 내내 고개를 숙이며 드럼 스틱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두 곡이 끝날 때 쯤에서야 주위 광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클럽 데이가 있는 금요일이어서인지 커플들이 유독 눈에 많이 띄었다.

‘어 아까 그 사람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네...’
연경은 관객들 사이에 낮부터 편의점 창가 자리에 앉아있던 그를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첫 연주에 온통 신경을 쏟느라 잠시 잊었다가 발견해서인지 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이후 관중들 사이에 나무처럼 버티고 서서 자신을 계속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즐기며 나머지 곡들을 연주했다.

기타리스트가 몇 번 실수를 했지만 잘 넘어갔고, 연경도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홍대 앞이라는 상징적인 거리 무대에 첫 진출한 것 치고는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다.
특히 아무도 들어주지 않으면 어쩌냐라고 우려 섞인 농담을 주고 받던 멤버들에게 마지막 곡을 연주할 때 즈음 꽤 많은 사라들이 둘러서서 공연을 지켜봤다는 사실에 흥분이 되기도 했다.

한껏 들뜬 마음으로 밴드 멤버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자축의 말을 나누고 있는 연경에게 그가 다가오며 말을 건넸다.

"저, 공연 잘 봤습니다.“

어쩌면 공연 내내 자신만 바라보던 그가 왠지 말을 건네줄 것 같아 기다리고 있었다는 편이 더 맞을지도 몰랐다.
그래서인지 약간은 당돌하게 들릴 만큼 마치 준비된 대답처럼 연경이 말했다.

"고마워요. 아까부터 그쪽 계속 있는 거 봤어요."

"네?“

연경은 자신의 답변에 흠칫 놀라는 그를 보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저를 보셨다고요?"

‘아니, 그 쪽이 나를 계속 쳐다봤잖아요!’ 라고 말할까 생각했지만,

"네.." 하고 대답했다.


어찌어찌 연경이 들뜬 마음으로 평소보다 용기가 나서 몇 마디 건넨 덕에 밴드의 뒤풀이 장소까지 그가 동행하게 되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러지 못했을 텐데, 홍대 앞에서의 첫 공연을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한 흥분 탓일까 먼저 말을 건네온 건 그였지만 훨씬 더 리드하다시피 받아쳤던 건 연경 그녀 자신이었다.

연경의 대학생활은 일찍 시작해버린 밴드 동아리 때문에 다른 기억거리는 거의 없었다.
시큰둥하게 과수업을 듣고 몇몇 여자 친구들과 통성명을 한 턱에 공강 시간을 학생회관이나 구내식당에서 함께 한 것이 전부였다.
이내 드럼 스틱을 잡게 되면서 나머지 시간을 거의 동아리 합주실에서 보냈다.

그렇게 남자 친구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연경이었기 때문에 함께 하는 밴드 동아리 멤버들이 뒤풀이 장소에 남자를, 그것도 즉흥적으로 섭외해서 데리고 오는 연경의 모습은 낯설기만 했을 것이다.

"이 친구, 연경이 남자친구야?"
보컬을 맡은 동기가 물었다.

아까 관객으로 처음 만난 걸 뻔히 아는 녀석의 질문이 조금 얄미웠지만 선배들까지 대답을 기다리며 바라보는 턱에 뭐라도 설명을 해야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얼굴이 발그레 상기되어 부끄러워하는 그가 안쓰럽기도 했다.

"그건 아닌데, 우리 낮에 준비할 때부터 같이 했었어. 그래서 내가 오라고 했어. 짐 싸는 것도 도와줬고..“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놀리려고 작정한 선배 중 한명이 말을 가로채며 말했다.
”그럼 연경이도 저 친구 낮에 연습할 때부터 계속 신경 쓰고 있었던 거네?“
(‘푸하하하하’)

멤버들이 연경을 배려해서인지 그 정도의 짖궂은 말을 조금 더 하고는 화제를 돌려주었기에 이후에는 마치 오래 알았던 사람들처럼 즐거운 술자리가 이어졌다.

대부분 오늘 공연에 대한 이야기라 재미없을 것 같았지만, 자신도 밴드를 하고 싶었다며 분위기에 맞게 몇 마디 거드는 그를 보니 연경의 마음이 놓였다.

”엄마, 아빠 밉지 않아? 맨날 큰소리만 치고 고생시키면서 미안하다는 말도 안 하고..“
엄마가 하늘나라로 가기 몇 달 전 학교를 마치고 찾은 병실에서 이런 질문을 했었다.
”그래 보여, 아빠가? 그 건 표현이 서툴러서 그런 거고.. 아빠는 엄마한테 최고의 남편이야.“
”최고는 뭐.. 내가 엄마 맨날 그래서 답답한거야. 순 착하기만 하고.“
뻔한 대답을 하는 엄마가 조금 미웠다. 같이 아빠 흉이라도 보는 게 더 맞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고생만 하다가 병이 나서 집에도 못 오고 누워만 있는 엄마가 아빠 편을 드는 게 못마땅했다.
”연경아, 아빠는 늘 기댈 수 있는 나무같아.. 한 자리에 계속 서 있으면서. 아빠가 나랑 연경이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엄마가 하는 말 중에 알아들을 수 있는 거라고는 아빠가 ‘나무’같다는 말 뿐이었다.
”그래 아빠는 늘 똑같긴 하지.. 무뚝뚝하고 자기 멋대로고 큰소리만 치고.. 그래서 나무같다면 그렇긴 하지..”
연경의 말에 환하게 웃는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그나마도 아파서 더 환하게 웃지는 못했지만...

뒤따르던 그가 나에게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다른 멤버들이 서둘러 헤어지며 그에게 연경을 데려다 달라고 하기는 했지만, 왠지 연경은 짓궂은 마음에 아무 말 없이 앞서서 걷기만 했다.
다시 묻는 그를 향해 획하고 돌아서며 연경이 대답한다.

"우리 한잔 더 마실까요?“

연경은 그가 당황하는 모습이 재미있어 크게 웃으며, 이어서 뭐라고 하려는 그의 말을 자르고 손을 잡아끌고 경쾌하게 발을 내디디기 시작했다.
거리의 네온사인들이 아까보다 더욱더 환하게 빛을 내며 거리를 비추는 것 같이 느껴졌다.
상점에서 들려 나오는 음악 소리에 연경의 가슴이 비트에 맞춰 뛰기 시작했다.


*작가's talk;
첫 만남의 순간이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 것 같습니다.
그 장소와 나눈 대화들, 온도와 습도 그리고 냄새와 분위기 까지도..
아마 그 좋은 기억은 온몸 깊숙한 세포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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