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홍대입구역 앞 거리에서.

by 최종신

클럽들이 시작하는 시간까지는 대여섯 시간이 더 남았다.


아직 금요일 한낮이지만 미리 도착해서 클럽데이가 열리는 시간까지 홍대 앞을 배회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눈에 띈다.

피시방 한 자리를 차지하고 게임이나 할까도 생각해 봤지만, 그러기에 날씨가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마신 술이 채 깨기도 전이라 아직은 머리가 무겁지만, 그래도 오늘은 금요일이니까 왠지 들뜬 기분을 지울 수 없다.


놀이터 근처에는 벌써 오후 시간대의 거리공연을 하기 위해 앰프며 드럼을 세팅하는 팀이 있다.
차림을 보니 록을 하는 밴드인 것 같은데, 드럼 세팅을 하는 여자아이가 눈에 띈다.
보통 밴드에서 드럼을 여자가 치는 경우가 많이 없어서 이 밴드에도 남자 팬들이 꽤 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해 본다.


대학생이 막되었을 때 나도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한창 빠져있었던 이탈리아 그룹의 아트록 때문에 그런 생각이 더 들었었다.
어릴 때 피아노를 잠깐 배웠던 것이 전부지만, 직접 무대 위에 서서 연주를 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궁금했었다.
그래서인지 학교 축제나 동아리 행사에 출연하는 아마추어 밴드를 보면 괜히 가슴이 뛰곤 했었다.

하지만 1학년이 막 시작하고 나서 그런 생각들이 모두 사치로 느껴졌다.

학교가 더는 가슴 뛰는 희망을 품고 다니는 낭만 가득한 공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머리를 짓눌렀기 때문이었다.


밴드의 악기가 모두 세팅이 되었는지 조금씩 음을 맞춰보기 시작한다.
합주가 시작되어도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혼자 서서 바라보고 있기가 멋쩍어서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컵라면을 사서 뜨거운 물을 붓고 창가 자리에서 밴드의 연습을 계속 지켜보기로 했다.
'오늘은 클럽에서 보는 공연 대신 저 밴드 연주나 들을까?'


요새는 가끔 금요일마다 홍대 거리에 혼자 오는 일이 잦아졌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는 친구들의 무리 속에 어울려 왔었다.
클럽이 생소했지만, 함께 어울리는 친구들과 어울려 자연스럽게 즐겼었던 것 같다.

적당히 어두운 실내에서 약간의 술기운과 함께 리듬감에 몸을 맡기며 무대의 공연에 폭 빠져있다 보면 어느덧 이른 새벽 시간이 되곤 했다.
어떨 때는 누군가와 약속 잡는 게 번거로워서라도 혼자 오기도 했다.
특히 한 달에 한 번 마지막 금요일 클럽데이는 일행이 있든지 혹은 없더라도 거의 빠지지 않고 오는 편이다.



해가 거의 건물에 가려 안보이기 시작하는 시간이 되자 거리에 사람들이 꽤 많아졌다.
거리공연이 시작되자 사람들도 몇몇 모이기 시작했다.

'4인조 밴드였구나.'
드럼을 치는 여자 외에 베이스와 리드기타, 그리고 모자를 거꾸로 쓴 보컬까지 3명의 남자 멤버가 더 있었다.
음악은 정체성을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웠지만 대충 모던락 정도로 부르면 될만한 음악이었다.
보컬의 성량이 크지 않아 나긋나긋하지만, 여자가 치는 드럼은 적절하게 힘이 실려있다.

첫 곡이 끝나고 모인 사람들이 박수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물론 나도 편의점에서 나와 무리 속에 같이 박수를 치고 있다.
드럼 치는 여자는 웃을 줄 모르는 사람처럼 관객들의 박수에도 무덤덤한 표정으로 다음 연주를 이어간다.

자작곡인지 두 번째 곡도 처음 들어보는데, 왠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모든 음악이 표절의 함정을 피해서 모두 달라야 한다지만, 어떤 음악은 이전에 들었던 다른 음악을 생각나게 하는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음악을 들으면서 언제였을지 모르는 과거의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 경우가 있다.

어떤 음악은 빗소리 가득한 여름이 생각나고, 또 어떤 음악은 가지만 앙상한 나무들 사이에 흰 눈이 수북이 쌓여있는 겨울 거리가 떠오르기도 한다.


드럼을 치는 여자와 잠깐 눈이 마주친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았다.

다만 같은 자리에서 공연이 시작될 때부터 마지막 곡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잠깐이라도 시선을 주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겠다 싶다.

어느덧 어둑한 밤이 되었지만, 거리는 점점 더 활기를 더하고 있다.

그런 들뜬 거리가 나에게 용기를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저, 공연 잘 봤습니다."

"고마워요. 아까부터 그쪽 계속 있는 거 봤어요."

"네?"

그나마 냈던 용기가 무색하리만큼 그녀의 일격에 가까운 대답에 얼굴이 빨개지는 걸 느꼈다.

"저를 보셨다고요?"

"네.."

빤히 쳐다보며 짧은 대답을 건네는 그녀가 웃는지 안 웃는지 모를 희미한 미소를 입가에 드리우며 마저 싸던 짐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저 제가 좀 도와드릴게요."

"그래요 그럼."

어느새 그녀와 함께 스내어 드럼을 케이스에 담고 있다.

왠지 내가 무대에서 막 공연을 마친 것처럼 가슴이 봅시 흥분되어 뛰고 있지만, 뭔가 비현실적인 이런 경우를 조금이라도 더 느껴보고 싶어 느릿느릿 짐을 쌌다.

"우리 공연 뒷풀이 할 건데 그 쪽도 같이 갈거죠?"

뭐라 대답을 하려는 순간, 듣지도 않고 획 돌라가는 그녀의 뒤를 몇개의 짐을 들고 따라가고 있었다.

어느 새 홍대거리를 둘러싼 소음이 모두 음소거라도 된 듯, 슬로우비디오 같이 찰랑거리는 그녀의 뒷모습을 홀린 듯 그렇게 따라가고 있다.


대학생 신입생 환영회 때였다.

처음부터 원하던 학교가 아니어서 시큰둥하게 참석했던 터라, 별로 말도 없이 술을 계속 들이켰던 것 같다.

처음부터 옆 자리에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새 친하기라도 한 오랜 친구처럼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는 녀석들에게 대충 맞장구를 쳐 주면서 시간이 가고 있었다.

"넌 뭐가 그리 심각하냐? 고민있으면 이야기 해봐 짜샤."

옆자리에 털퍼덕 앉은 긴머리의 여자 동기가 술잔을 부딪히며 취해서 발음도 엉성한 말을 건넨다.

"고민은, 뭐..그냥 재미가 별로 없어서..."

"그래? 그럼 우리 나가서 한잔 더 할까?"

"어? 난 그냥..."

대답을 끊으며 어깨를 툭 친 그녀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며,

"빨리 일어나 고민많은 친구~"


공연팀이 도착한 장소는 지하 1층의 주점으로 이미 만석이지만, 주인이 너댓명 자리를 미리 비워놓았는지 익숙하게 빈 자리에 앉았다.

"이 친구, 연경이 남자친구야?"

공연에서 노래를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 듯 부르던 보컬이 물었다.

'아, 이름이 연경이구나...'

궁금했던 그녀의 정체 중에서 첫번째 단서를 얻은 듯 했다.

"그건 아닌데, 우리 낮에 준비할 때부터 같이 했었어. 그래서 내가 오라고 했어. 짐 싸는 것도 도와줬고.."

그녀의 설명이 길 수록 더 짖궂어지는 팀 동료들의 질문 공세가 두어번 더 이어졌지만 기억이 없다.

간단한 통성명을 하고 연이어 건배를 하며 그렇게 자리가 이어졌다.


신입생환영회를 함께 나선 우리는 학교 앞 편의점에 들러 소주2병과 마른안주를 사서 들고는 학교로 다시 들어갔다.

"아까 신입생환영회 나도 좀 별로였어. 세상 더 산게 고작 몇년밖에 안된 주제에 선배랍시고 훈수를 두는게 참.."

"어.. 그랬어? 난 그냥 친절해 보이던데.."

"친절은, 개뿔. 친절한 게 아니라 우월해 보이고 싶은 거지.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생 왔다는 걸 지들이 즐기는 거지 뭐."

툴툴거리며 내뱉는 말이 조금 귀엽기도 했던 그녀가 사간 소주 2병을 거의 혼자 마시다시피 하고는 우리의 술자리가 끝났다.

"내일 강의 몇 시 부터야?" 그녀가 물었다.

"글쎄 내가 오후라는 건 기억나는데, 정확하게는 모르겠네. 2시던가? 아니 3시던가?"

"그럼 내일 과사무실 앞에서 오전 11시에 만나자, 같이 점심먹고 수업 들어가자. 먼저 간다 친구~"

그렇게 멋대로 시간 약속을 잡은 그녀가 살짝 비틀거리며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발을 뗄 수 있었다."

'서로 이름도 이야기 안 했는데..'


홍대 앞 거리를 연경과 같이 걷고 있다.

아까 뒷풀이 장소를 나와서 다른 친구들이 일부러 둘만 떼어 놓으려고 연경을 데려다 주라며 사라져 버린 때문이었다.

조금 앞서 걷는 그녀의 뒤를 나도 별 말 없이 터벅거리며 뒤따르고 있다.

아까 공연 준비를 할 때부터 연경에게 느낀 묘한 끌림이 월까라고 궁금했는데, 이제 조금은 선명하게 원인이 떠올라 씁쓸했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이었어..'


신입생 환영회 다음 날 아침 , 속이 조금 불편할 정도로 전날의 술자리에 몸이 반응하자 전날 헤어지면서 그녀가 일방적으로 말했던 약속이 생각났다.

부랴부랴 집을 나서 학교로 향하는 마을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도착한 과 사무실 앞에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어떻게 죽은 거래?"

"자세히는 모르는데 교통사고래. 어떻게 학기 시작하자마자 이런 일이 있냐?"

"신입생 환영회에서 술을 많이 먹여서 난 사고라고 해서 경찰이 학교로 찾아온 거래.."

"환영회 참석한 3,4학년 선배들은 모두 조사를 받았다더라.."

그만 다리 힘이 빠져 과사무실 복도 차가운 바닦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은 채로 한참이나 더 멍하니 있었다,

어제 그녀와 나눴던 시간에 대한 기억이 정확한 지조차 자신이 없을만큼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저 연경씨, 집이 어느 방향이시죠?"

앞서 걸어가고 있는 그녀가 돌아서며 말했다.

"우리 한잔 더 마실까요?"

이 비슷한 장면을 전에도 봤던 것이라는 생각에, 갑자기 온 몸에 전율을 느끼게 되었다.

"어, 그게...많이 마셨기도 했고..."
떨리는 목소리로 거절에 대한 변명거리를 생각하며 말을 내뱉었다.

하짐나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가 손을 잡아챈다.

'어! 손을 잡았네...'

나만 의식을 한 건지, 그녀는 무심하게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나를 길 저편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가슴이 심하게 도리질하며 다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절을 하기보다는 마지못해 그녀에게 이끌려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그 순간이 싫지는 않았다.

홍대 앞 밤거리는 일교차가 큰 날씨에 걸맞는 냉기를 뿜어대고 있지만, 그녀와 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때문에 더 없이 따뜻하게만 느껴졌다.


*작가's talk;
첫 만남의 순간이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 것 같습니다.
그 장소와 나눈 대화들, 온도와 습도 그리고 냄새와 분위기 까지도..
아마 그 좋은 기억은 온몸 깊숙한 세포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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