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충전기로 이어진 친절한 여자

선의를 선의로 돌려받은 경험은 즐겁기만 하다

by 최초록별

나는 배우 이주영님을 좋아한다. 우연히 보게 된 셀카 사진에 반했고, 인스타그램에 적힌 맥딜리버리 알바기가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나도 오토바이를 너무 사고 싶었어서 자체 7일 근무(회사 5일+알바 2일)를 하던 터라 너무 멋있어 보였다. 나는 타려고 돈을 모았는데, 배우님은 타면서 돈을 모으고 있어! 심지어 잘 뽑지도 않는다던 여자 라이더로!


'처음 일을 하기도 전 2주 이상 버티는 여자 라이더가 없었다고 정말 할 수 있으시겠냐는 은근 성차별적인 도발과 주위의 만류가 괘씸하여 오기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네달 째다.'


하고 싶으면 일단 도전하고, 하게 됐으면 책임 지는 모습이 멋있지 않은가. 배우라는 꿈을 위해 다른 일을 하며 노력하는 모습도 좋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않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그 때부터 이주영 배우님을 마음 속에 저장했다.


그러다 이주영 배우님이 주연을 맡은 영화가 개봉했다. 영화 <메기>. 이건 꼭 봐야된다는 마음으로 퇴근 후 건대로 넘어 왔다. 시간이 꽤 남아 있어서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노트북을 키고 친구에게 카톡을 했다.


[나 영화 보려고 건대 왔어]

[오옹 영화 좋겠다. 누구랑 봐? 혼자?]

[혼자~]

[뭐 보러? 몇 시에 보는데?]

[메기. 8시 반 시작!]

[흠... 나도 그 때 애들이랑 헤어질 거 같은데. 나도 영화 볼까. 무슨 영환데?]

[헉, 보자! 보자! 기달 빠른 영화 설명해줌, 전화 함]


영화는 같이 보고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 나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어서 신나게 전화를 걸 준비를 했다. 그 때 건너편에서 이쪽을 살짝 보시던 여자 분이 다가오시더니, 혹시 충전기를 빌릴 수 있냐고 물어보셨다. 머쓱한 표정으로 자신의 폰이 꺼졌다고 했다. 헉, 핸드폰 꺼지면 완전 불편한데. 나도 핸드폰이 꺼지는 바람에 혼자 80년대 여행객처럼 도시를 돌아다닌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저랑 비슷한 종류의 사람이시군요... 이름 모를 상대분께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바로 빌려드렸다. 그리고 몇 분 후에 그 분이 밝은 얼굴로 충전기를 돌려주셨다.


"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썼어요!"


"아, 네! 근데 너무 적게 충전하신 거 아닌가요?"


"폰이 켜지기만 하면 됐어서요. 충분해요. 감사합니다."


그렇구나. 하고 돌려 받은 충전기를 돌돌 말고 있는데, 그 분께서 한 마디를 더 거셨다.


"그런데 제가 어쩌다보니 통화내용을 듣게 되었는데요... 혹시 영화 보러 가시나요? 그러면 제가 표 예매해드릴까요?"


"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내가 당황스러워하자 그 분은 침착하게 자신의 의향을 설명해주셨다.

본인이 통신사 VIP여서 영화 예매할 때 매 달 할인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본인은 영화를 잘 안 보는 편이라 이걸 주고싶다, 그런 말이었다. 나는 이미 예약했으니, 감사하지만 괜찮다고 답하려다가... 친구가 생각났다. 나는 아까 성공적인 설득으로 인해 친구도 같은 영화를 보기로 확답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혹시 같이 보기로 한 친구의 의향을 물어본 뒤에 부탁드려도 되는지 여쭤봤고, 그 분은 기다려주셨다.


[아까 통화 중에 충전기 빌리셨던 분이 영화 할인 해 줄 수 있다고 하는데]

[헉 받아받아]


아직 말이 끝나지도 않았건만... 친구의 난리난리에, 나는 곧바로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렸다.

그 분이 연락처를 받아가셨고, 2분이 지나지 않아 영화표가 나에게 문자로 전송되었다.


"잘 갔나요?"


"네! 잘 왔어요, 감사합니다. 그러면 제가 얼마 보내드리면 될까요?"


할인 표니까, 결제 금액이 있겠지 싶어 여쭤보았는데 그 분은 손을 저으면서 흔쾌히 말씀하셨다.


"괜찮아요. 아까 충전기 빌려주신 거 보답이에요!"


그 말을 끝으로 그 분은 곧바로 원래 자리로 돌아가셨다. 나는 재빨리 카톡을 보냈다. 헉! H! 너 공짜 표 받았어!


[넘 조으신분... ㅠㅠㅠㅠㅠㅠㅠ 여자 최고다...]

[감동이얏...]

[최고의 타이밍... 최고의 사람...(?]


영화는 기대한 만큼 재밌었다. 이야기 할 게 매우 많아서 집에 돌아가는 길에 계속 영화 이야기를 했다.

감사 인사는 바로 드릴까 하다가, 늦은 시간임을 깨닫고 다음날 일어나서 바로 휴대폰을 들었다.


감사하다는 인사와, 그 때 경황이 없어서 더 격하게 감사드리지 못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작은 초콜릿 기프티콘을 보냈다. 답장은 오지 않았고, 유효기간을 몇 번 연장했지만 끝까지 사용되지 않았다. 착한 사람은 왜 그렇게 멋있고 쿨하게 떠나버리는 거지? 영화를 잘 보지 않는 편이라던 그 분은 본인이 영화 주인공이라 영화를 보지 않는 것임이 분명했다.


살다보면 내가 미처 준비하지 못한 부분 때문에 상대방의 선의를 바라며 부탁해야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쩐지 겸언쩍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다. 부탁하느니 차라리 조금 더 불편하고 말지! 해버릴 때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모든 여자들이 무언가가 필요할 때 언제든지 거리낌 없이 부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서로가 더 선뜻 부탁할 수 있고, 흔쾌히 들어 줄 수 있는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매일 매일을 완벽하게 보낼 수 있게 각자 노력하는 것보다는 서로 모자란 부분을 도우며 사는 게 훨씬 편하고, 즐겁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조금 더 편하게 부탁하고, 즐겁게 보답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내가 보답할 게 있다면 바로 보답해보고, 그렇지 않다면 대신 다른 이에게 먼저 선의를 건네보는 것. 그렇게 선의를 선의로 돌려받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본다.


충전기.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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