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문고리의 친절한 여자

공공의 적을 두고 친절과 다정으로 싸워나갔다

by 최초록별

나는 생리통이 매우 심한 편에 속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책상에 엎드려 끙끙거리는 내 모습은 친구 모두에게 유명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자체 휴강이 가능해 사정이 좀 더 나았지만 앓아야 했던 건 여전했다.


2017년의 가을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주말이었지만, 격 달로 오는 생리통에 한참을 끙끙거리며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생리통 약은 내성을 키운다는 근거 없는 속설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기 때문에 아침부터 극심한 고통을 몇 시간이고 생으로 버티고 있었다. (나는 항상 언젠가 이것보다 아플 때 약이 듣지 않을까봐 무서워했다) 그렇게 대 여섯시간을 견뎠을까. 이제 좀 견딜만한 고통이라 카톡을 켰다. 친구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아직도 아파?]

[이제 좀 덜 아파, 좀 나아지긴 했는데 컨디션은 안 좋음ㅠ]

[약은 먹었고?]

[아니, 나 기절할 정도 아니면 약은 안 먹잖아]

[좀 먹어라. 그러면 오늘 온종일 집에 있겠네?]

[응 아무래도 그럴 듯... 뭘 못한다]

[그렇군...]



그 얘기를 마지막으로 카톡이 끊겼다. 할 일을 하러 갔구나. 나는 배에 올려놓은 온열팩의 위치를 조정하면서 웹서핑을 이어 나갔다. 지속적인 아픔을 참는 데에는 원초적인 게 효과적이었다. 나는 복잡한 생각도 깊은 집중도 필요하지 않은 일로 내 주의를 돌렸다. 고양이 영상, 햄스터 사진, 다람쥐 영상... 한참 귀여움의 바닷속에서 서핑을 타고 있는데 카톡이 왔다.



[동생한테 부탁해서 문고리에 걸어놓은 거 먹어.]

[?]



일어나서 뒤뚱뒤뚱 걸어가 현관문을 열었더니 비닐봉지 하나가 문고리에 걸려있었다. 봉투 안에는 생리통 약이랑 내가 좋아하는 과자들이 봉지 가득 들어있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곤 전화를 걸었다.


“야! 왜 이런 걸 줘!”


전화 너머로 친구가 낄낄거렸다. 아니, 그냥. 너 항상 생리통 때문에 빌빌거리니까 눈에 밟혀서. 저번 주에 나도 스트레스 때문인지 없던 생리통이 심하게 왔는데, 유독 서러운 거 있지. 오늘 너 보니 그때 생각이 나더라고. 너는 항상 그런 고통을 겪었을까 싶고, 마침 나는 오늘 시간이 남고, 그래서 사 왔어. 친구는 별거 아니란 듯이 덤덤히 말했다. 별거 아니긴 뭐가 별 거 아닌지. 약 안 먹는다고 하니까 초콜릿 들어간 과자들로 이렇게 야무지게 챙겨왔는데. 다정함이 지금 내 손 안에 잡혀있었다. 나는 괜히 부끄러워져서 괜히 큰소리쳤다.


“야, 그래도 그렇지! 너 다음 생리 때 기대해라?”


아주 동네 떠들썩하게 생리 파티를 해주겠다고 이를 가는 나에게 친구가 엄청 웃었다. 우리는 그 뒤로 생리에 대한 앞담화를 열심히 이어 나가다가, 마지막엔 우리 존재 파이팅!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배 위에 온열팩을 올려 놓은 채로, 초콜릿 과자 몇 개를 까먹으면서 생각했다.


생리란 뭘까, 역시 지독한 놈이겠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니까. 수능 날이고 여행 날이고 중요한 날짜만 잡히면 턱 하니 걸려버리지 않나, 나한테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이고 불편함은 잔뜩 겪게 하는 놈이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축축해진 시트, 한참을 구르게 만드는 극심한 생리통, 24시간 신경 쓰이던 옷차림, 이런 걸 생각하면 역시 악당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공공의 적을 둔 덕에 모든 여성과 함께 유대를 쌓을 수 있다는 건 마음에 든다. 국적 불문 우리는 같은 생리 유머에 낄낄댈 수 있고, 서로를 배려하니까. 되받을 거라 기대하지 않아도 기꺼이 생리대를 빌려주고, 가디건을 벗어 바지를 가려주고, 생리통 완화를 위한 약을 서로를 위해 기쁘게 나눠준다. 우리는 그런 친절을 몇 번이고 주고받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생리가 마치 판도라의 상자 같다. 뚜껑을 열고 나니 온갖 재앙이 뛰쳐나왔지만, 상자 속에는 희망이 남아 있는 판도라의 상자. 이미 열린 거 어쩌겠는가. 희망과 친절과 다정으로 수많은 재앙에 맞서 싸울 수밖에.


생리통.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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