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발 이야기

by 최굴굴

어릴 적 목발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재밌어 보이기도 하고, 약간의 동정심도 유발할 수 있는 아이템이니 말이다. 어른도 한참 어른이 된 지금, 나는 발목골절로 목발을 득템 하여 몸소 개고생이 뭔지 체험 중이다.

그간의 목발 사용기를 풀어볼까 한다.


발목이 부러져 응급실을 방문한 날, 목발을 받았다.

길이를 대충 맞추고, 이 정도면 되겠네요, 하며 간호사가 목발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우선 두 목발을 겨드랑이에서 3cm 정도 아래쪽에 바짝 끼고, 동시에 번쩍 들어 올려서 전방 15cm 앞쪽 지면을 짚어 밀어내며 성한 다리를 내딛는다. 이 동작을 반복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생각보다 조작법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목발을 짚고 바로서는 순간 발목에 피쏠림 증상과 함께 강력한 통증이 동반되기 때문에 입원하는 동안에도 웬만하면 휠체어를 타고 다녔고, 집에 와서도 바퀴 달린 의자에 몸을 싣고 다녔다.


그러다 제주 여행을 앞두고 어쩔 수 없이 목발 연습을 하려는데, 어라? 목발이 너무 낮아 겨드랑이에 밀착이 잘 되지 않고 허리가 굽었다. 흔들흔들 휘청이다 마룻바닥에 '꽁' 하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분명 응급실에서 맞춰주신 건데 그새 키가 큰 건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하도 누워있어서 중력을 거스르는 현상이 일어났을 수도 있지 않은가?

문득 응급실 구석에 한껏 웅크리고 앉아 대기하던 내가 떠올랐다. 그때는 너무 아프고 걱정된 나머지 온몸이 쪼그라들어있었다. 그러고 있던 나는 간호사 눈에 얼마나 작아 보였을까.

결국 한 사이즈 큰 목발을 새로 사며 쓸데없이 목발부자가 되었다.




목발을 쓰면서 욕이 늘었다.

소지품이 든 크로스백을 소중히 목에 걸고, 양손으로 목발을 꼭 쥔 채 고르지 못한 보도블록 위를 위태위태 걸어가는 모습은 꽤나 안쓰럽다. 이 와중에 반대쪽에서 핸드폰을 쳐다보며 주의 없이 걸어오는 사람들도 요리조리 피해 가야 하다니!


목발로 가는 모든 곳이 쉽지 않다.

그중 가장 힘든 곳은 아무래도 계단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계단이 얼마나 많을까 싶지만 바로 우리 집이 엘리베이터 없는 저층아파트 3층이라는 사실.

계단은 내려가는 것도, 올라가는 것도 힘들다. 일단 계단을 보는 순간 '구르면 끝'이라는 생각에 심리적 압박이 매우 크다. 그리고 내 몸을 위아래로 올리고 내리는 것은 평지와 다른 차원이다. 내가 이렇게 무거운지 난생처음 알았다. 몸무게는 묻지 마시라. 나는 숙녀니까.


그다음으로 스트레스받는 것은 문이다.

너무 무거워서 잘 안 밀리는 문, 당겨야 하는 문, 경첩 복원력이 좋아 자꾸 닫혀버리는 문 등, 자동문이 아닌 이상 문은 최악이다. 고백하건대 회사 화장실 문 앞에서 입에 담지 못할 저주를 읊조린 적이 있다.


비 오는 날은 말할 것도 없다.

우산을 들 수도 없고 깁스한 발에 비를 맞힐 수도 없다. 특히 비 오는 날 넘어져 골절된 경우라 그런지 물만 보면 미끄러질 것 같은 공포에 몸이 떨린다. 그런데 올여름 한반도는 115년 만의 기록적 폭우를 맞닥뜨렸다지.


매 순간이 이리 버거우니 목발을 냅다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이 들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목발에 의지해 걷는 지금이 순간 이것만큼 간절한 것도 없어서 오늘도 애지중지 목발을 닦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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