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 무려 14년 차.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여 육아휴직 3개월을 제외하고는 일을 쉰 적이 없었다.
그 사이 두 번의 이직이 있었는데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지박령'이냐는 소리를 들을 만큼 이직이 적었던 케이스다.
이번 직장은 세 번째 보금자리로 가장 오래 근무하고 있다. 그만큼 나랑 잘 맞고 좋은 직장이다.
이곳에서 나는 주 3.5일을 일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레 발목골절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직장에 무기한 병가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의 일은 고스란히 고용주님이 떠맡아야 했다.
비자발적이지만 어쨌거나 휴식이 너무 오랜만이었던 터라 이렇게 오래 쉬다가 돌아갈 자리가 없으면 어쩌나 싶으면서도 쉬니까 개꿀(?)이구나 하는 두 가지 마음이 침대에 누워있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골절 4주 만에 직장으로 복귀하는 것이었다. 각질이 나오긴 해도 샤워가 가능했고 진통제를 더 이상 먹지 않아도 버틸 수 있을 만큼 통증이 감소했다.
이젠 출근을 해도 되겠다 싶었다.
출근은 일반인에게도 보통일이 아니므로 더욱 신중해야 한다.
골절러 출근의 애로사항 몇 가지를 짚어보자.
1. 자차 편도 50분+ 오른쪽 발목 부상의 환장 콜라보
운전이 불가능하다. 이 발목으로 지금 운전할 수 있냐는 질문에 주치의는 이론상 가능한 일이지만 위험을 자처하지 말라하셨다. 그런데 회사까지는 택시비가 왕복 35000원 정도 나오는 거리다.
내 일당에서 저만큼 까면 과연 이 출근이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 든다. 하지만 자리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덜 벌어도 일자리를 보전하기로 했다.
2. 화장실문제
노후된 건물이라 우리 층엔 장애인 화장실이 없다. 화장실에서 자빠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이 조금 된다. 최대한 화장실은 적게 가야겠다. 나머지는 폭풍 목발 연습으로 커버하기로 한다.
3. 발목 피쏠림과 부종
대표적인 발목수술 후유증으로 발을 아래로 내리면 퉁퉁 붓고 아프다. 그리고 금세 불타는 고구마색이 된다. 서서 일하는 직업은 아니지만 오래 앉아있어야 하는데 내 발이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발을 올려둘 수 있는 보조 의자를 부탁해야겠다.
4. 점심식사
코로나 이후로 쭉 사무실에서 배달음식을 먹었으니 특별히 문제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음식을 가져다주고 치우는 것은 다른 직원이 도와주어야 할 것 같으니 예의 없는 오만불손한 인간으로 비치지 않게 정중한 '감사합니다'를 연습한다.
5. 출근복장
원래는 하이힐에 롱스커트에 블라우스가 내 최애 복장이었다.
목발을 짚고, 보조의자에 발을 올려놓을 예정이니 훌러덩 속이 보이지 않게 바지 정장을 입어야 한다. 여름 정장 바지를 몇 장 사두어야겠다. 반깁스를 하고도 입고 벗기 편하게 와이드 팬츠 스타일에, 이왕이면 다리가 길어 보이는 하이웨이스트가 좋겠다. 아차, 바지에 어울리는 블라우스도 사야겠네? 어머, 신고 벗기 편한데 너무 후줄근하지도 않은 슬리퍼도 없잖아? 당장 사야지.
이상하게 갑자기 즐겁다.
이제 골절 4주 만의 재출근을 위한 만반의 준비가 되었다!
지금 와서 알았지만 엄마와 남편을 비롯한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말리지도 못하고 걱정 중이었다고들 한다.
복직 첫날.
마음 같아서는 조용히 들어가고 싶었으나 본의 아니게 굉장히 요란한 등장이 되어버렸다.
1층에서부터 주차아저씨, 경비아저씨, 카페 아주머니, 미용실 주인아주머니, 약국 약사님, 안경사님까지 쪼르르 다 만났기 때문이다. 그동안 인사성이 발랐던 것이 아주 아주 약간은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1층 지인들: 아니, 왜 이래 다리가? 어머머, 무슨 일이야?
나: 넘어졌어요, 하하.
1층 지인들: 아이고 고생이겠네, 여름에!
나: 그러게요, 하하. 걱정 감사해요.
때마침 경비아저씨께서 손수 눌어주신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겨우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곧장 사무실이 있는 5층으로 올라갔다.
탁, 쿵. 탁, 쿵. 탁, 쿵.
목발소리가 애처롭게 복도를 울린다.
그 소리에 회의준비를 하고 있던 동료 직원들이 우르르 나와서 위로와 걱정의 표정들로 나를 맞이해 주었다. 그리고 몸이 불편한 나를 위해 가방도 받아주고, 텀블러에 물도 떠다 주고, 다리에 괼 수 있는 의자와 쿠션도 가져다주었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아무나 부르라고 당부도 하고 갔다.
난 참 좋은 식구들을 곁에 뒀구나, 오래 일하길 잘했다 싶고, 참 고마웠다.
한 달 만이다 내 자리.
숨을 고르고 자리에 앉아보았다.
다리가 편한 각도로 자리를 정리하고 밀린 업무를 조금 확인하고 물도 조금 마시고 다시 업무를 조금 하고, 다리를 높이 들어 쉬었다가 또 업무를 하고.......
그렇게 금방 하루가 갔다.
할만했냐고?
글쎄다. 택시멀미인지 간만에 모니터를 봐서인지 속이 계속 울렁거렸고, 발목은 다음날까지도 퉁퉁 붓고 욱신댔다. 그래도 뭔가 사람답게 사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다음날, 고용주님은 목발 짚은 직원을 보니 악덕 사장이 된 느낌이었다며 당분간 주 2회만 나오는 게 어떨지 제안하셨다. 나는 그렇게 아주 가끔만 출근하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는 '해피엔딩'으로 출근 시리즈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