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절러 와이프 vs. 수발놈 남편
부슬부슬 비 내리는 일요일 아침.
"아 오늘 대청소하기 좋은 날이네~." 하고 중얼대자 남편이 저걸 죽여, 살려, 하는 눈빛으로 째려본다.
이럴 땐 배시시 웃어줘야 한다.
침대에 누워 입만 나불대는 나는 지금 아주 얄미운 진상이니까.
지금은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우리 부부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아팠고 통증은 정신을 지배한다.
남편은 가정적인 사람이었다. 자취경력 덕분에 집안 일도 잘하고 요리 서너 가지는 뚝딱 해낼 수 있었다. 와이프와 마트를 돌며 도란도란 장 보는 게 신혼의 로망이었던 남편과 달리 나는 빨래도, 밥도 할 줄 아는 것이 없었고, 특히 장 보는 것을 제일 싫어했다.
이런 이유로 우리 부부의 공식적인 첫 싸움은 이마트 군만두 시식코너 아줌마 앞에서로 기록된다.
그로부터 2년 뒤, 아들이 태어났다. 요란스러운 입덧과 조산기로 입원까지 했던 힘든 출산이었다. 점점 더 가사는 멀어져 갔고, 이때부터 우리의 역할은 완벽히 나뉘게 된다. 청소, 빨래, 설거지, 요리는 남편의 영역, 육아는 나의 영역.
하지만 나의 발목골절 사고로 이러한 구분조차 이제 무의미해졌다. 거동이 불편한 나를 대신해 육아까지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졸지에 남편은 '수발놈' 신세가 되었다.
다음은 그의 살인적인 스케줄이다.
아침에 아이를 준비시켜 내가 있는 친정으로 데려다준다. 퇴근 후엔 하루종일 집 안에만 있었을 아들을 데리고 공원에 나가 한 시간 동안 운동을 시킨다. 들어와 개운하게 씻기고 책을 조금 읽어주다 재운다. 아이가 잠들면 돌려놨던 빨래를 널고 집 정리를 하고 쓰러져 잔다.
이 스케줄이 장장 두 달이나 반복되자 남편은 지쳐갔다. 아침에 나를 봐도 웃지 않았다. 잠들기 전 하루를 보고하는 전화 횟수도 줄어갔다.
서운했다. 내가 이렇게 아픈데, 해야 할 일만 따박따박하면 다인 건가?
어느 밤 형식적인 전화 말미에 서운함이 그만 터져 나왔다. 꾹꾹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내 마음도 돌봐달라고 개진상을 부렸다. 수화기 너머로 작은 한숨이 들렸다.
"나도 힘들어, 내일 얘기하자."
정신이 퍼뜩 돌아왔다. 내가 지금 뭘 한 거지?
아픈 아내 몫까지 해내느라 고생 중인 남편에게 이런 대우는 부당하다. 고작 발목 조금 아프다고 이렇게까지 이기적이 된 내 모습이 괴물처럼 느껴졌다.
미안함과 자책감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냥 그렇게 끊어진 전화를 붙들고 장문의 사과 문자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아침을 맞이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그 사과를 받아주었고, 내가 짐을 싸서 집에 돌아오던 날 (일거리가 늘었음에도) 누구보다 기뻐했다.
지금생각해 보면 우리 둘 다 각자의 사정으로 위로가 필요했던 것 같다. 힘들고 서운한 마음, 고맙고 미안한 마음들을 모두 털어놓고 나니 그제야 안정이 찾아왔다. 그러니 부부는 힘든 일이 있을수록 꼭 붙어있어야 한다. 옆에서 서로를 위로해 줄 수 있으니 말이다.
손이 많이 간다며 툴툴거리면서도 족욕물을 받아주고 계단은 꼭 업어주는 스윗가이, 이리도 짐스러운 나를 데리고 살아줘서 고마워. 우리 백년해로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