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는 힘들어
'살'이라는 게 정말 존재할까?
나에겐 도화살도 역마살도 아닌 원서리살(?)이 꼈다. 고등학교 때부터 사회인이 된 지금까지 아침저녁으로 한 시간 이상의 통학, 통근 시간에 시달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집 가까운 사람을 가장 부러워한다.
도어투 도어가 한 시간 반이 걸리던 대학교 통학거리. 이 정도 거리면 못해도 시험기간엔 학교 정문 앞 고시원에 나와서 공부하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보수적인 부모님 덕에 나는 무조건 통학을 해야 했다.
가뜩이나 몸이 약해 점점 야위어가는 나에게 부모님은 자취는 허락하지 않으셨지만 차키를 내어주셨다. 이를 시작으로 차 없이는 아무 데도 못 가는 오너드라이버가 되었다.
초보운전 딱지를 달고, 서울의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가는 여정을 매일 반복하다 보니 운전에 도가 트기 시작했다.
지금은 운전 경력 20년 차. 원샷 원킬 화려한 주차실력으로 주차아저씨의 애정을 한 몸에 받고 있으며 당연히 1시간 가까이 되는 출퇴근 길에도 빠삭하다. 단속 카메라의 위치와(매우 막히는 길이라 어차피 속도위반을 할 수도 없지만) 신호체계까지 좔좔 꿰고 있고 여기가 막히면 저기로, 저기가 막히면 요기로, 각종 루트를 뚫어놓았다.
하지만 오른쪽 (하필) 발목골절로 하루아침에 운전이 불가능해졌다. 그리하여 택시를 이용하게 되었는데 자차운전자로서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우선 콜택시를 호출하는 것부터가 출퇴근 시간엔 쉽지 않다. 워낙 막히는 길을 가다 보니 그런 것인지, 택시 이용자가 가장 많은 시간이라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서울에 내린 폭우로 올림픽대로가 폐쇄됐을 때는 출근할 방법이 없어 급히 연차를 내기도 했다.
운 좋게 금방 택시를 타더라도 내가 운전하는 차가 아니면 멀미를 심하게 하는 탓에 늘 속이 좋지 않았다. (묘한 택시 냄새도 한몫한다고 본다.) 특히 요리조리 차선을 자주 변경하는 기사님을 만나면 더욱 힘들었다. 어느 차선을 타건 막히는 건 뻔한데도 조금이라도 빨리 가주시려고(?)하는 기사님을 노고에는 감사드리지만 보통은 피하고 싶은 분들이다.
또 라디오나 오디오북을 들으며 나만의 시간이 되어주던 소중한 출퇴근 길은 더 이상 보장받을 수 없었다. 종종 대화를 좋아하는 기사님들이 계셨는데, 어쩌다 다리가 그렇게 되었는지부터 가볍게 시작하여 정치, 사회, 문화 이야기까지 좔좔 읊어주시는 기사님 말을 끊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왠지 모르게 적당한 추임새도 넣어야 할 것 같아 '아', '그렇구나', '어머' 같은 부장님 응대용 멘트를 반복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설령 조용히 가더라도 과속방지턱처럼 흔들리는 구간을 지나거나 급정거 시에는 깁스한 다리를 살짝 들어주어야 충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운행 내내 길을 주시해야 한다. 여유롭게 음악이나 듣고 있을 때가 아니다.
출퇴근 길만큼은 눈감고 갈 정도로 익숙한 나로선 뒷자리에 앉아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것이 그저 답답키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작은 철칙이 있다면 영업 중이신 택시기사님께 간단한 길안내 외에는 절대 훈수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전운전을 위해서는 손님이 느긋해야 한다. 느긋한 척이라도 해야 한다. 막히는 길로 진입하자마자 '이길 원래 이렇기 않은데, 앞에 사고가 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시며 내 눈치를 먼저 살피는 기사님도 계신다. 얼마나 볶이셨으면 그럴까 안쓰럽다.
비록 미터기가 올라가는 것이 쫄린다 하더라도 백싯드라이버(backseat driver) 만큼은 되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다 택시도 쉽지 않은 게 골절러의 운명이다. 하루빨리 회복해 운전대를 잡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래도 목발로 힘겹게 택시에 오르면 모두가 친절하게 맞아주셨고, 함께 걱정해 주셨고, 조심조심 다녀주셨으며, 꾸물거리며 내려도 재촉하지 않으셨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이 자리를 빌려 내가 만났던 모든 택시 기사님들께 감사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