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과 불안을 달리기로, 그리고 글로 포장하는 하루키
글은 사람을 현혹시킨다.
이 책의 작가 하루키는 알다시피 대단한 문장가라 달리기에 대해 무척 매력적으로 기술해 놨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의 심신단련에 장거리 달리기 만한 게 없다며 성공과 루틴에 목마른 독자들을 단숨에 매료시켰다. 나 역시 왠지 달리고 싶어 져 러닝슈즈를 검색할 뻔했다.
하지만 읽을수록 그가 불안과 강박이 심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담담한 문체로 쓴다고 해서 그것을 가릴 수는 없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장거리를 달리게 하는 모습을 불쌍히 여기는 문단부터 그의 예민함을 눈치챘다.
사회성을 필요로 하는 단체 운동이나 승패를 가르는 운동이 아닌 자신과의 싸움인 달리기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승부욕의 끝을,
매일 거리와 시간을 꼼꼼히 기록하며 수개월에 걸쳐 마라톤을 준비하는 모습에서는 강박적 성향을 (특히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여 플랜 B까지 세워놓는 치밀함에 혀를 내둘렀다),
체력이 떨어져 힘 있는 글을 더 이상 쓰지 못하게 될 것을 경계해 달리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페이지에서는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될까 걱정하는 깊은 불안감을 읽을 수 있었다.
무슨 생각하며 달리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아무 생각 없이 달린다고 쓴 그의 손과 실제 그의 마음은 따로 노는 듯 보였다.
사실 정신이 건강한 사람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사람이다. 달리고 싶으면 달리고 쉬고 싶으면 쉰다. 다시 달리기를 시작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꼭 하지 않아도 문제 될 것이 없다.
하루키는 이런 보통의 사람이 아니다. 예민하고 불안한 마음을 '달리기'라는 보다 건전해 보이는 강박적 행위에 집착함으로써 극복해 나가는 사람이다.
연약한 멘탈을 커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지 원래부터 멘탈이 강한 사람은 아니란 거다.
물론 그의 이러한 예민함 덕에 우리가 좋은 글을 읽을 수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만약 본인이 불안이 높아 무언가에 몰두해야 마음이 달래질 것 같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그럴 필요가 없다면 굳이 읽지 않아도 될 개인사에 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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