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벌이다
종종 글감을 얻기 위해 동의보감(東醫寶鑑)을 뒤적인다.
동양 최고 의서로 꼽히는 이 책은 없는 병 없이 모조리 적혀있어 한의사들에겐 보배(寶)와도 같다.
하지만 허준 선생님은 후대 한의사가 본인이 편찬한 책으로 인해 어떤 화를 입을지 생각도 못하셨을 거다.
그날은 아침부터 허리가 불안했다.
날이 궂어 그랬을까?
안 되는 동작을 만드느라 애쓴 요가교실이 무리였을까?
아무튼 느낌이 좋지 않은 그런 날이었다.
평소처럼 글을 쓰러 책상 앞에 앉았고, 눈에 좋은 약재를 찾아보기 위해 책장에서 동의보감을 꺼내 들었는데...
억.
허리에 힘을 잃고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동의보감 번역서의 사양은 크기 200*260*100mm, 무게 약 2000g.
무기로 써도 손색이 없다.
한의대생 시절, 이 어마무시한 책을 형벌처럼 짊어지고 학교에 가다 길바닥에 버릴 뻔한 적이 있었는데
그래, 그때 버리고 왔어야 했다.
아, 내 허리.
한의원에 오는 많은 환자들이 요통을 호소한다. 그들이 말하는 허리 아픈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교통사고처럼 분명한 외상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오래 한 자세로 일하는 직업 때문에 고질병을 만들어 오기도 한다. 아이를 돌보거나, 무리한 운동을 하다 끔뻑 다치기도 하고, 나이가 지긋한 경우 골다공증으로 인해 요추가 혼자 내려앉는 날벼락같은 일도 허다하다. 너무 하찮게도 땅에 떨어진 볼펜을 줍다 허리를 삐끗해 치료를 받으러 온 환자까지 있었지만 ‘동의보감’을 꺼내다 허리가 나가 한의원에 온 사람은 내가 전무후무할 것이다.
훗날 한의학 책을 쓰게 된다면, 한 손에 쏙 들어올 만한 요약집을 쓸 거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후배 한의사들의 허리를 지켜줄 것이다.
#요통 #요통원인 #허리삐끗하는이유 #동의보감 #한의사 #아프냐나도아프다 #요통한의원 #허준 #동양최고의서 #형벌 #요추염좌 #허리 #좌섬요통 #사실어플이있다? #무거운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