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이 부재한 자리
그가 조직을 맡은 후, 분위기는 바뀌었다.
누군가는 그를 ‘감정의 온도계’라고 불렀다.
조직을 움직이는 기준이 전략이 아니라
기분이기 때문이다.
업에 대한 이해는 깊지 않고,
숫자에 대한 감각도 애매하다.
하지만 문장을 정제하는 데에는 능하다.
보고서를 ‘윗선의 취향’에 맞게 조정하는 기술 하나로
그는 팀의 리더가 되었다.
그는 자주 화를 낸다.
특히 자신에게 반박하지 않을 것 같은,
조용하고 순한 사람을 골라서.
“내가 한 말 그대로 적어!”
“회사 다니기 싫어?!!!”
“언제 돼?, 아직도 이 부분이야?!!“
그 말투는 점점 사무실 전체를 감싼다.
회의실 밖으로도 새어나가는 언성,
옆 팀에 있는 동료도 무슨 일이냐며,
이번엔 누가 혼나는 거냐며 메신저만 깜빡인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다시 수정하는 실무자.
어느 순간부터 조직의 감정은
한 사람의 표정과 말투에 따라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이 조직 언제까지 이런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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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그의 기억력이다.
하루 전 지시한 내용을 하루 만에 뒤집고,
보고서의 방향을 수차례 바꾼다.
오전에 A안을 지시하고
오후에 B안을 요구하고
다음 날 “왜 A안으로 안 했냐”라고 소리 지른다.
그 때문에 우리는 같은 보고서를
다섯 번.. 아니 열번 넘게 다시 만든다.
누군가는 농담처럼 말한다.
“리더가 되려면 치매여야 해.”
웃기지만, 안 웃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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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팀장은 리더와 실무자 사이에서
점점 소진된다.
윗선의 불만은 팀장에게 전달되고,
팀장의 짜증은 아래로 흘러간다.
리더십이 없는 자리에 감정만 전염된다.
우리는 조직을 설계하는 게 아니라,
그의 기분을 예측하고 대응하는 법을 먼저 배운다.
언제 말하면 안 되는지,
언제는 그냥 참고 넘어가야 하는지를...
⸻
리더는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지만 이 조직에선
혼란이 가장 높은 자리에서부터 흘러내린다.
그리고 실무자는 매일,
그 혼란을 정리하며 하루를 버틴다.
문제는 그 위에도,
그리고 그 아래에도 리더십은 부재하다는 것이다.
중간 리더는 업무를 분명하게 나누지 않는다.
하나의 프로젝트에 두 명의 실무자를 동시에 배치하고,
‘공동 담당자’ 형태로 운용하지만
실제 책임은 늘 특정 한 명에게만 쏠린다.
마치 ‘누가 담당인지’ 애매하게 니들끼리 알아서 정해라고 한 채…
결과가 안 좋을 때는
**“그건 네가 메인이잖아”**라는 말로 책임을 넘긴다.
더욱이 이 역할 분담은
당사자 간 협의 없이 내려진 일방적 배치다.
누구도 자원한 적 없고,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그 역할을 맡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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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으로 일하던 실무자 중
더 책임감 있게 일하는 사람이 결국
질문에 대응하고, 일정에 쫓기고,
전사 보고를 앞둔 본사 실무자의 요청까지 떠맡게 된다.
상위 부서에서 날아오는 질문이나 요청을
중간 리더가 제대로 소화하지 못할 경우,
그 내용은 다시 실무자에게 전달된다.
(“네가 썼으니, 네가 책임져야지!!라는 말과 함께…)
보고서 문장이 틀리지 않았음에도, 사태 파악이 안된 리더는
“저희 팀원 XXX 이 작성해서요… ”는 말로
책임을 전가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구조 속에서
같은 업무를 나눠 맡은 실무자들 간 관계는
대부분 좋지 않게 끝난다.
누가 더 많이 떠안았는지, 누가 더 편하게 빠져나갔는지—
그 감정은 업무보다 더 오래 남는다.
이 조직에선 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을 ‘감당하는’ 사람이 독박을 쓴다.
책임은 위로 올라가지 않고,
보고는 아래로 내려온다.
그리고 팀 안의 관계는
리더의 무책임한 배분 아래에서 천천히 무너진다.
다시금 말하지만,
여긴 누구나 다 아는 이름을 가진 기업이다…
어쩌다 이 리더들은 이렇게 되었을까?
(그간 만난 리더는 늘 후배/팀원들의 우산이 되었는데,
어떤 모습이 잘못된 것인지, 가끔 헷갈린다…)
본능인 것인가, 조직에 특화되어
트레이닝을 받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