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에세이_11

by 최한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지 일 년이 다 되어간다.


나의 할아버지는 일 년 중 가장 달콤한 날에 세상을 떠났다. 올해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에 우리 가족은 달콤한 초콜릿 대신 눈물을 닦아낼 휴지를 주고받았다. 할아버지는 무뚝뚝하고 다정하지 않았는데 밸런타인데이에 떠난 덕분에 기일마다 달콤한 기분을 느낄 수 있겠다. 그래, 그렇게라도 따듯하셔야겠지.


나는 유년시절부터 할아버지와 함께 자라서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많다. 사실 대부분은 좋지 않은 기억이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고 초등학생인 나는 할아버지와 동생의 식사를 책임져야만 했다.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도 하교 후에 꼬박 식사를 챙겨드렸다.


할아버지는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했다. 주사가 엄청났는데, 그중 절대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있다.


여느 날처럼 잔뜩 취한 할아버지는 풀린 혀로 무엇을 가져오라는 명령을 했고 단어를 알아듣지 못한 나를 발로 밟고 머리를 수차례 가격했다. 부모님한테도 이렇게 폭력을 당한 적은 없었기에 상당히 충격이었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폭력을 당해내다가 불현듯 벌떡 일어나 스스로 몸을 때리며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당황한 할아버지는 물러나는 듯했으나 부엌의 온갖 접시와 식칼을 집어던졌다.


평소 같았으면 할아버지의 실수를 덮어주려 부모님이 귀가하기 전에 청소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여태껏 나에게 행했던 폭력을 부모님에게 말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먼저 귀가한 어머니가 상태를 보았고 얼굴이 잔뜩 부어 오른 나에게 상황을 묻고 아버지에게 전달했다.


나를 아무도 위로해 주지 않았다.

괜찮냐는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그때는 부모님에게 서운하다는 감정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이 얼굴로 등교해야 하는 내일이 걱정되었기 때문일까? 내일도 하교 후에 할아버지와 단 둘이 있어야 한다는 공포심 때문일까? 한 번도 나에게 따듯한 마음을 주지 않은 부모님에게 무뎌진 것일까?


할아버지가 좋았던 적도 있다. 어느 날 하교 후에 집에 오니 할아버지가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할아버지 앞에 앉아 할아버지의 안주를 뺏어먹었다. 적당히 취한 할아버지가 말문을 열었다. "네 엄마가 너처럼 예뻤어."


고등학교 3학년인 나는 대학을 가지 않고 돈을 벌고 싶었고, 어느 기업에 지원했다. 입사 시 필요한 서류 중에 가족관계증명서가 있었는데 그 서류에 적힌 모(母)의 이름이 내가 아는 엄마의 이름과 달랐다. 내가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여자의 딸이라고 적혀있었다. 서류를 처음 보았을 때 큰 충격을 받았지만 유년시절의 기억을 떠올려보니 따듯하지 못했던 엄마의 모습들에 대한 퍼즐이 맞춰진 것 같아 바로 받아들였다. 엄마의 친 딸이 아니어서 그동안 못되게 대했던 거구나.


취한 할아버지에게 친엄마에 대해 물었다. 그 여자는 나와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것, 옆 학교의 아빠를 만나 나를 임신했다는 것, 나를 키우고자 바로 보험회사에 취직했다는 것의 정보를 얻었다. 그때의 보험상품 판매는 가정 방문을 통해 이뤄졌다고 했다. 그 여자는 고객과 눈이 맞아 갓 태어난 신생아와 아빠를 버리고 집을 나갔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엄마의 젖을 물지 못하고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은 동네 아줌마들의 젖을 먹으며 자랐다. 젖동냥이라는 단어가 나에게 존재했을 줄은 몰랐다.


여자는 나를 키우고자 일을 시작했으면서, 결국엔 나를 버렸다. 모순 가득한 사람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여자를 미워하는 감정조차 들지 않았다. '그랬구나. 궁금했는데 알게 되니 속 시원하다.' 정도의 마음이었다.


나는 성인이 되자마자 자취를 시작했고 할아버지를 찾아뵙는 날은 손에 꼽았다. 일 년 중 10번을 찾아뵈었다면 그중 8번이 의무적인 방문이었다. 서른이 넘고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지금, 할아버지에 대한 좋은 추억을 더듬어 보아도 찾을 수 없다. 할아버지가 나에게 못했던 기억만 무수히 쏟아진다.


문득 운전하다 할아버지 생각에 서글퍼져 왈칵 눈물을 쏟을 때가 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던 날 임종을 만질 때 꼈던 비닐장갑이 운전석 도어에 놓여있다. 왜인지 버리지 못했다. 무슨 감정인지 정의 내릴 수가 없다. 분명히 사랑하지 않았던 할아버지인데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목이 멘다. 더 나이가 들면 알 수 있을까?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면 '사랑했던 할아버지'로 기억할 수 있을까?


할아버지는 내 꿈에 자주 나온다. 꿈속에서 할아버지는 항상 환하게 웃고 있다. 할아버지가 나를 따듯하게 쓰다듬어 주기를 기다린다. 때려서 미안했다고, 아팠냐고, 이제 너를 지켜주겠노라고 말해주길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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