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_17
얼마 전 사고로 팔 뼈 정복술을 받았다. 후유증으로 어깨 힘줄이 늘어났고 뼈 근처 근육들이 찢어졌다고 했다. 통증이 얼마나 오래가는지 거의 4주가 되어가는데도 진통제를 먹으며 버티고 있다.
양말을 신는 사소한 일에도 팔 근육에 힘이 들어가 아팠다. 그때마다 네가 달려와 양말을 신겨주었고 바지를 올려 입혀주었다.
덩달아 고생하는 너에게 당연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너의 수고스러움을 덜어주려 혼자서 끙끙대며 옷을 갈아입었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했다. 어느샌가부터 나를 지긋이 보고 있던 네가 말했다.
"나는 네가 너무 혼자서 하려고 할 때 마음이 아파."
너의 말에 하던 일을 멈추고 생각에 빠졌다. 너의 손을 덜어주려고 행동했던 것이 오히려 너의 걱정을 키운 행동이라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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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첫째로 태어나 10살의 나이에 압력밥솥에 밥을 할 줄 알았다.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을 대신해 할아버지와 동생의 식사를 책임졌다. 늘 누군가를 챙겨야 하는 입장이었고 부모님께 약한 말을 한 적이 없었다.
힘들어도 참아냈다. 어려운 일에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고민을 나누지 않았다. 부모님이라는 단어가 존재했지만 쓰일 일이 없었다.
심지어 초등학생 때 배운 학습지의 이름도 재능교육인데 이 학습지의 홍보 노래는 이렇다.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 우리는 척척척! 스스로 어린이!'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도 '스스로 하자!'라는 정신이 박혀있다. 원체 남에게 폐를 끼치고는 못 사는 성격임에 더욱 그렇다. 도움을 청할 바엔 내가 하고 말지. 이 생각으로 살아왔다.
나는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지 못한다. 혼자서 끌어안고 끙끙 앓는다. 고민을 나누는 법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너에게 고민을 말하기 시작했다. 조언을 얻기도 한다. 걱정을 꺼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꼈다.
너와 걱정을 나누고 조언을 주고받으면서 우리는 더욱 끈끈한 사이가 되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의 상황을 얘기하고, 너의 상황을 듣는 것은 연인사이에 중요하고 필요한 대화임을 알았다.
너무 강한 모습만 보일 필요는 없겠다. 가끔은 말랑말랑한 모습을 보여야겠다.
힘들다고 말해야겠다. 도움이 필요하면 손을 내밀어야겠다. 부탁할 것이다. 마음을 활짝 열어둘 것이다. 사랑을 먼저 속삭일 것이다.
친구사이에서는 예쁜 우정의 모양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고, 연인사이에서는 예쁜 사랑의 모양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문득 든 생각인데
어쩌면 나는 이미 너라는 존재에 잔뜩 기대어 살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