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크리스마스

촛불 하나

by 최희규

2000년 12월 나는 군대에 입대했다. 육군훈련소에서 훈련병으로 입소했고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 정신없이 하루 하루를 버티던 시기였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다. 군대에 있어서 별 감흥도 없었다. 다만 그날 점호시간에 방송에서 중대장이 모든 부대원들에게 크리스마스에 가족들을 생각하며 힘을 내라고 노래 하나를 틀어줬다.


바로 지오디의 촛불하나 라는 노래였다. 당시 유행하던 노래였고, 가사도 좋아서 많은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힘들고 지칠 때 너의 뒤에, 언제나 니 곁에 서 있을께.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내가 너의 손 잡아줄께. 이 가사에 푹 빠진 나머지 최면에 걸렸던 것일까.


나는 이 노래를 틀어주면서 응원해준 중대장이 이런 따뜻한 사람일 것이라고 단정지어버렸고, 그를 향한 믿음이 충만해졌고, 그렇게 믿음은 행함이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나는 행동에 옮겼다. 무엇을?


청소시간이었다. 기간병(조교)의 방을 청소하면서, 기간병이 무심코 던져놓은 담배갑이 눈에 들어왔다. 같이 청소하던 훈련병 친구에게 눈짓을 하고는 담배2가치와 라이터를 훔쳤다. 나만의 촛불하나가 되어줄 담배 한가치에 나는 무한한 행복을 느끼며 그 친구와 함께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우리는 옥상 한 구석에서 조심스레 불을 붙이고 한모금을 힘껏 빨았다. 논산의 12월 겨울은 이미 오후5시에도 어둑어둑한 어둠을 주변에 흩뿌려주었고, 나와 동기는 서로 마주보고 있으면서도 얼굴이 확인도 안될 정도의 어둠 속에서 서로의 불빛만으로 존재를 확인하며 그렇게 촛불 하나를 불사르고 있었다.


이웃을 위해 자신의 한 몸을 불살라 내어주는 희생의 감동이란 이런 것일까? '타다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가는 담배 한 가치는 나의 몸과 마음을 위로해줬고, 그렇게 나는 여기가 몸 안인지, 몸 밖인지 알 수 없었지만, 하나님은 아셨을것이다. 바울도 3층천에 이렇게 갔지 싶다. 점점 타들어가는 담배는 왜 그리 야속하기만 한지, 행여나 조금이라도 그의 흔적을 놓칠새라 온몸으로 조심스럽게 영접하고 있을 그 때에 옥상 건너편에서 "끼이익" 이라는 비명소리와 함께, 녹슨 철문이 마치 지옥문이 개방되 듯, 그렇게 열리고 있었다.


그렇다. 너무 어두워서 확인을 미처 못했던 것이다. 우리가 올라왔던 통로만이 유일한 길인 줄 알았던 것이다. 내 주위를 둘러 쌓던 어둠. 나의 친구라 생각했던 그 암흑은 이미 나를 속이고 있었다. 저 반대쪽에도 입구가 있었다는 사실을 나에게서 가리웠던 것이다.


지옥의 문이 열리며, 담배피러 올라온 기간병들을 소환했다. 그리고 그들은 본 것이다. 이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열정적으로 불타고 있는 2개의 불꽃을 말이다.


모든 것을 삼킬 것 같은 너무 짙은 어둠속에선, 작은 빛 하나가 더욱 힘을 얻게된다는 진리를 깨닫기엔 우린 너무 어렸다.


그렇게 우리는 중대장실로 끌려갔다. 나에게 '촛불 하나'를 틀어줬던 중대장. 산타 할아버지 같았던 중대장이 계엄군 사령관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야 이 반란군 놈의 새끼야" 라는 외침과 함께 중대장은 기간병들 중에 가장 성질이 더러운 놈을 나에게 선물했고, 나는 2000년 12월 25일. 아주 추웠던 그 날 크리스마스 선물로 화장실에 끌려가서 벌거벗김을 당한 채, 두드려 맞았다. 찬물은 서비스였다. 그날 애인하고 꽁냥꽁냥 했던 모든 자들에게 저주를. 나는 나채로 화장실 여기 저기 도망다니며 구타를 당했고, 여기서 진짜 죽는 줄 알았다. 한 겨울에 찬물에 적신 수건으로 온 몸을 맞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몸에 멍 자국이 안 생기게 때리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많이 군인권이 좋아졌기에 상상하기 힘들 수 있겠지만, 내가 입대한 00년도에는 가능한 일이었다.


촛불하나를 틀어줬던 상냥하기만 할 줄 알았던 중대장의 촛불은 중세시대의 마녀를 태웠던 촛불이 되어 나를 활활 태웠다. (그 겨울의 찬물 구타를 다시 생각해보니 화형이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날 태우지 않는 촛불, 오히려 당신 스스로를 태우신 분. 그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드리며.


다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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